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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왜 고전을 읽는가?

by 김민식pd 2020. 8. 24.

<논어>나 <금강경>같은 경전을 즐겨 읽습니다. 수천 년의 시간을 견디어낸 책이라면 인류가 가진 근본 문제에 대한 통찰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경전을 읽을 때, 우리와 다른 환경과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이의 말과 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고전을 현대의 언어로 재해석해주는 길잡이가 필요합니다. '칼럼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김영민 교수님이 쓴 논어 에세이가 있어요.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김영민 / 사회평론)

교수님은 동양 고전을 미끼로 만병통치약을 파는 건 경계하십니다. 고전의 지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논어>를 왜 읽는가? 고전을 왜 읽는가? 실로 고전 텍스트를 읽는다고 해서 노화를 막거나, 우울증을 해결하거나, 요로결석을 치유하거나, 서구 문명의 병폐를 극복하거나, 21세기 한국 정치의 대답을 찾거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거나, 현대인의 소외를 극복하거나,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길은 없다.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

(17쪽)

김영민 교수가 묘사하는 공자의 모습은 시대와 불화했던 당대의 힙스터입니다.

'평생의 종착점에서 마음이 욕망하는 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에 다다른 사람, 하지만 기적과는 인연이 멀었던 사람, 신이 아니라 인간에 불과했던 사람, 결핍을 느꼈기에 과잉을 꿈꾸었던 사람,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논어>는 그렇게 분투한 사람에 대한 재현이다.

사실 사람들은 때로 완벽하게 계산하고 행동하는 합리적 인간보다는 서투른 열정의 인간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끌리곤 하지 않던가. 누가 그랬던가, 완벽한 복근을 가진 사람보다는 쥘 수 있는 한 줌의 뱃살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더 끌리게 된다고.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매미 소리가 시끄럽다고 여기는 사람보다는 매미가 오래 살기를 바라며 흐느끼는 사람에게 매료된다고. 매료된 이들은 텍스트를 남기고, 남겨진 텍스트는 상대를 불멸케 한다.'

김영민 교수는 젊은 시절, 해외로 유학을 떠나 사상사 연구를 하는데요. 천재적이고 뛰어난 사상가들이 황무지에서 느닷없이 솟아난 존재가 아니라 당대의 지적 담론의 소산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맞습니다. 공자와 맹자와 노자가 나타난 것도 춘추전국시대라고 하는 중국의 혼란한 사회상 때문이지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간절하게 고민했던 시절인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책을 읽을 때, 좀 더 광범위한 독서가 필요하다고 말해요.

'어떤 사상사를 혜성처럼 나타난 성인으로 간주하거나 혹은 악의 근원처럼 간주하다 보면, 자칫 사상을 둘러싼 역사적 환경에 눈감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 사상은 자신이 발견하고 싶은 것만 발견하게 만드는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 숭배의 대상이든 혐오의 대상이든,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느닷없는 천재나 악마는 사실 드물다.'

(69쪽)

김영민 교수님은 <논어> 역시 역사 속의 텍스트라고 하십니다. 공자 또한 경천동지할 혜안을 가진 고독한 천재라기보다는 자신이 마주한 당대의 문제와 고투한 지성인이라는 거죠. <논어>를 오독하면, 서구중심주의에 대항하는 대안이 되기도 하고, 동양 사회가 가진 온갖 폐단의 근원이 되기도 하는데요. 고전은 선도 악도 아닙니다. 그럼 교수님이 간신히 희망하는 건 무엇일까요?

'나의 희망은 소박하다. <논어>를 매개로 해서 텍스트를 공들여 읽는 사람이 되어보자는 것이다. 무턱대고 살아있는 고전의 지혜 같은 것은 없다. 고전의 지혜가 살아있게 된다면, 그것은 고전 자체의 신비한 힘 때문이라기보다는 텍스트를 공들여 읽고 스스로 생각한 독자 덕분이다. 이 점을 확실히 할 때에야 비로소 <논어>는 독자에게 양질의 지적 자극을 주게 될 것이다.'

(272쪽) 

<논어>나 <도덕경>같은 고전은 양면성을 갖고 있어요. 일단 친절하지 않아요.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설명도 부족해요. 친절하지 않기에, 활자의 미로를 헤매는 느낌이 들지만, 어느 순간 깨달음이 왔을 때, 기쁨이 더 크지요. 현대의 에세이가 답이 빤히 보이는 객관식 퀴즈라면, 고전 읽기는 답을 스스로 궁리해야 하는 주관식 서술형 고사라고 할까요? 

믿음직한 길잡이의 손을 잡고, 미로 탐험을 시작합니다. 김영민 교수님의 논어 에세이, 다음 책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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