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독서 일기

위기의 시간, 리더의 역할

by 김민식pd 2020. 7. 10.

영화를 볼 때마다 참 결과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해요. 분명 최고의 제작진이 모여 거액을 들여 만든 영화인데, 의외의 망작이 나오기도 하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가 대박을 내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역시 문화 콘텐츠 산업은 운이 좌우하는 흥행 산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요즘 이런 믿음이 약간 흔들려요. 디즈니 때문이지요. 매번 홈런을 치고 있어요. 픽사, 마블, 스타워즈 등을 인수하며 만드는 영화마다 다 좋아요. 디즈니가 요즘 이렇게 잘 나가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궁금한 마음에 책을 펼쳤습니다. 

<디즈니만이 하는 것> (로버트 아이거 / 안진환 / 쌤앤파커스)

로버트 아이거는 24살이던 1974년에 ABC 방송사 스튜디오 말단 제작보조로 방송 일을 시작합니다. 배우 스탠바이 확인하고, 세트 점검하고, 테잎을 전달하는 일부터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승진을 거듭해 41세에 ABC 사장이 되고요. 1996년에 디즈니가 ABC를 인수하자, 디즈니에 합류해 2005년에는 디즈니 CEO에 취임합니다. 바닥에서 시작해 회장 자리까지 오르다니 정말 월급쟁이 신화로군요. 

로버트 아이거의 전임자는 마이클 아이즈너라는 불세출의 경영자였어요. 마이클의 지휘 아래 성장하던 디즈니 왕국은 911 테러로 직격탄을 맞습니다. 승객을 가득 실은 두 대의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을 들이받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몰아넣고요. 전세계적으로 관광업이 둔화되는 계기가 됩니다. 디즈니도 불과 며칠 사이에 시가총액의 1/4을 잃어요. 당시 경영자이던 아이즈너는 멘붕에 빠집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리더는 낙관주의를 잃어서는 안 된다. 특히 위기상황에서는 더더욱 필수요소다. 비관론은 편집증을 낳고, 그것은 다시 방어적인 태도를 불러오며, 그것은 다시 리스크 기피 성향을 유도한다.

반면에 낙관주의는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역학을 발동시킨다. 특히 어려운 순간에, 당신이 이끄는 사람들은, 방어적인 태도를 일삼거나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게 아니라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리더의 능력에 대해 신뢰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좋다고 말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는 신념을 전달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당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최상의 결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끝장이라는 느낌 따위를 전달하지 말라는 의미다. 리더인 당신이 설정하는 분위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누구도 비관론자를 따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173쪽)

맞아요.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때로는 '아, 이번 작품의 결과는 신통치 않겠구나...' 싶을 때도 있어요. 대진운이 좋지 않아 경쟁작의 그늘에 짓눌릴 때도 감독은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리더는 자신의 불안을 동료들에게 전파하는 사람이 아니라, 낙관의 근거를 찾고 변화를 일구는 사람이거든요.

3장의 제목이 와닿았어요.

"모르는 것은 배우고 행하는 것은 믿는다."

저는 이것이 리더의 자세라고 생각해요. 배우를 캐스팅할 때, 저는 최대한 경청합니다. 여러 사람의 조언을 듣고 결정을 하고요, 일단 섭외를 마친 후에는 돌아보지 않아요. 내가 선택한 배우를 믿고 끝까지 함께 갑니다. 여럿의 뜻을 모아 결정했지만, 선택한 후에는 오롯이 내 책임이 됩니다. 믿는 걸 행하는 게 아니라, 행하는 걸 믿는 사람, 그게 리더입니다. 

말단 사원에서 시작해 CEO가 된 남자. 디즈니 제국을 운영하는 최고결정권자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가 책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는, 사업체를 운영하든 팀을 관리하든 공동의 목표를 위해 누군가와 협력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만 경력을 쌓았지만, 내가 배운 원칙들은 다른 업계에서도 보편적으로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5가지의 바탕이 되는 원칙이다.

첫째, 리스크를 감수하고 창의성을 장려하는 것.

둘째, 신뢰의 문화를 구축하는 것.

셋째, 자신에 대한 깊고 지속적인 호기심을 배양해 주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것.

넷째,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

다섯째, 항상 정직하고 고결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 (그럼으로써 힘겨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 분명할 때조차도.)'

(29쪽)

추상적으로 보이는 원칙이지만 400쪽이 넘어가는 일대기를 통해 그는 이러한 원칙들을 어떻게 지켜왔고, 그 덕분에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었는지 여실하게 보여줍니다. 억세게 운 좋은 사람 이야기를 기대하고 책을 들었다가, 리더가 가진 철학의 힘을 실감했어요.

<디즈니만이 하는 것>, 꾸준히 배우고, 성심껏 이끈 원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