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과 관련해 <한겨레 21>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오늘은 그 기사를 공유합니다.>
Q : 80년대 학번인데 당시 학내 분위기에서는 드물게 영어 공부하고 춤추러 클럽 다니는 학생이었다. 학생운동에 무관심했던 이유는 뭔가.
A : 내 10대 시절이 너무 엄혹했다. 고교 시절 급우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경상도에서 교사로 일하시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 때문에 괴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대에는 인생을 재미있게 살고 싶었다. 당시 대학생들은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는데, 나는 이미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런 부채의식이 없었다.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문과 지망생이었는데 아버지의 강압으로 공대 광산학과에 들어가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지’ 혼란스러웠다.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이고 민주와 민족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웃음)
Q : 2017년 혼자 MBC 복도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라고 외치면서 공영방송 정상화에 다시 불을 지폈다. 혼자 복도에서 외치는 방식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A : 그것을 통해 ‘MBC 정상화’라는 목표를 이룰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만 생각한다. 2012년 노조집행부로 활동하면서 최장기 파업을 주도했는데 패배했다. 잘리거나 핍박받는 조합원을 볼 때마다 모두 다 내가 잘못 싸웠기 때문인 듯해서 마음이 힘들었다. 김장겸 사장이 남은 임기를 다 채우고 나가면 나 자신의 열패감이 너무 클 거 같아서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복도에서 혼자 외치기 시작했는데, 회사에서 나를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출근정지 15일의 징계를 내렸다.
나는 재심을 신청했다. 보통 사람들은 인사위에 나가는 일이 고통스러워 결과를 받아들이는데, 내가 재심을 신청하니 오히려 그들이 괴로워했다. 재심에서도 그들을 즐겁게 공격하고 그 과정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중계했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목표로 하면 그 과정에서 잘못될 수 있는 변수가 너무 많고 그러면 사람이 위축된다. 나는 그때그때 즐겁게 할 수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했다. 궁지에 몰린 쥐는, 한발 한발 나아가는 걸음이 다 승리고 진보다. 저들이 나를 워낙 궁지에 몰아넣었기에 뭐라도 할 때마다 쾌감을 느꼈다.
영어공부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동시통역사가 되겠다는 목표는 없었다. 그냥 하루에 영어문장 열 개를 외우자는 목표로 시작했다. 그러면 내일은 오늘보다 열 문장을 더 알게 되니까. 그렇게 하다 동시통역사까지 도전하게 된 거다. 이게 인생을 사는 가장 즐거운 방법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룰 수 있는 목표치만 도전한다.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상처와 좌절이 너무 크니까. 하지만 나는 20대에 좌절과 상처가 너무 많았다. 안 됐던 게 너무 많았다. 어차피 바닥이니까 여기서 안 되더라도 상처가 없다고 생각했다.
Q : 공대 출신이 어학연수도 한 번 없이 동시통역사에 도전하고, 영업사원 출신의 동시통역사 이력으로 언론사 준비도 없이 방송사 피디에 도전하고, 예능 피디로 잘나가다가 드라마 피디에 도전했다. 또 아무도 움직이지 않을 때 혼자서 “사장 물러가라”고 외쳤다.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강한 걸까.
A : 내 자신감은 내 인생이 바닥이라는 인식에서 시작한다. 바닥이라면 뭐라도 시도해야 한다. 자신감은 성취가 아니라 도전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반드시 성공의 근거가 있어야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위축되기 쉽다. 내가 뭐라고 감히 이런 일을 할까라는 생각이 드니까. 나는 반대다. 시도하면서 자존감을 높인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시도하고 실패하는 편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
Q : 뭐든 결과를 개의치 않고 즐겁게 도전해 ‘긍정의 화신’으로 불린다.
사람들이 위에서 시작해서 점점 내려가면 부정적이 된다. 바닥에서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긍정적이 된다. 나는 완전히 바닥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사람이 됐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항상 얘기한다. 신문방송학과를 나와서 피디가 된 사람은 피디라는 직업에 대해 고마움을 모를 것이다. 나는 공대를 나와서 영업사원을 하다가 피디가 되었기 때문에 피디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매우 감사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성실하다고 하는데, 그 성실함은 인생이 운이라고 믿기 때문에 나왔다. 자신의 성취가 성실함에서 나왔다고 믿으면 괴물이 되기 쉽다. 그러면 남들이 노력하지 않고 이루는 것에 분노가 생긴다. 그런데 운이 좋아서 이뤘다고 생각하면 그 성과를 남들과 나누고 싶어진다. 나는 운이 좋아서 동시통역사가 되었고 운이 좋아서 MBC 피디가 되었다. 그래서 영어공부 비결을 남들과 나누고 싶어서 책을 썼고, MBC 피디가 된 운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노조 활동을 했다. 무엇보다 나는 책벌레가 된 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 행운을 남들과 나누고 싶어서 블로그에 독서일기를 남기는 거다.
Q : 인생에서 재미와 의미의 비중이 어떻게 되나.
A : 재미가 8, 의미가 2다. 20대부터 어떤 일을 선택할 때 일관된 선택 기준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의미를 고려하는 순간, 어깨가 너무 무거워진다. ‘김장겸 물러나라’고 복도에서 외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면 시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그걸 할 때마다 너무 재미있고 통쾌했다. 그때도 사람들이 “네가 그렇게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걸로 무슨 변화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때 내 대답은 이거였다. “난 의미 생각하지 않아, 나는 이게 재미있어서 하는 거야”라고.
Q :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태도는 무엇인가.
A : 웃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잘 찾아보면 재미난 부분이 있고, 이걸 찾아내는 게 또 재미다. 우리가 고난 앞에서도 웃음과 재미를 찾을 수 있다면 인생에서 겁이 없어진다.
인터뷰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2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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