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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힘들 때, 어떻게 버틸까요?

by 김민식pd 2020. 2. 24.

어느 날 블로그에 올라온 질문이 있어요. 동료들이 따돌리고 상사가 괴롭혀서 직장생활이 너무 고된데 피디님은 회사생활이 힘들 때 어떻게 견디셨나요? 회사 생활이 힘들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역시 퇴사가 답일까요? 아니면 버티면서 싸워야 할까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고민하다 책 한 권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김민식 / 푸른숲)

 

회사 생활이 힘들 때, 버티고 싸워야 할까, 달아나야 할까, 둘을 구분하는 건 참 어렵습니다. 저에게 있어 선택의 기준은 ‘내 인생에 대한 예의’입니다. 

제 나이 스물다섯에 첫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어렵게 취업을 했기에 나를 뽑아준 회사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처음엔 부산지점으로 발령이 났는데, 업무 성과도 좋고 인사 평가도 잘 나와서 1년 만에 서울 본사로 왔어요. 그런데 서울에서 근무를 하며 직속 상사와 계속 부딪혔습니다. 서로 업무 스타일이 맞지 않았거든요.

저의 상사는 저를 보고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불렀어요. 미국계 회사라서 아메리칸 스타일이면 칭찬인줄 알았더니 욕이더라고요. 회식이나 야근보다 정시 퇴근하고, 영어 학원을 다니거나 도서관에 간다고요. 하루는 저보고 그러대요. “김민식 씨, 나랑 회사 옥상에 가서 권투 한 판 할까? 넥타이 풀고 사나이 대 사나이로 말이야.” 나보다 열 살 많은 직장 상사가 권투 시합을 하자는 이야기는 너 좀 맞아야겠다는 소리지요. 결국 입사 2년 만에 사표를 던지고 나왔습니다.

첫 직장에서 괴로움이 닥쳤을 때 저는 달아났습니다. 영업이라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심지어 상사 괴롭힘까지 견디며 사는 건 내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자, 사표를 낼 때 중요한 건 회피 동기가 아니라 접근 동기입니다. 회사가 싫어서 달아나면 다른 회사 가서 똑같은 놈 또 만납니다. 아니, 더 한 놈을 만나기도 해요. 그럼 또 달아나야 하나요? 그렇게 계속 도망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까지 몰리게 됩니다. 저는 회사가 싫어 달아난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영어 공부를 마음껏 하려고 퇴사했어요. 사표 내고 6개월 간 머리 싸매고 공부한 끝에 통역대학원에 진학했고요.

저의 당시 직장 상사는 회사 일을 정말 열심히 하는 분이었어요. 너무 열심히 일하다 과로사할 뻔 했거든요. 저는 영업이 적성에 맞지 않아 회사 생활보다는 퇴근 후 자기계발에 열중하던 사람이고요. 둘 중 하나가 회사를 그만둔다면 누가 그만 둬야 할까요? 제가 그만 둬야지요.

MBC 드라마 피디로 일하던 2012년, 노조부위원장으로 일할 때 170일 파업을 했어요. 이명박 정부 하에서 MBC가 망가지는 걸 보고 공영방송 살려내라고 파업을 했지요. 그때 검찰에서 제게 2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징역 2년형을 선고했어요. 제 죄목은 무엇일까요? 드라마 피디가 그냥 드라마만 만들면 되는데, 왜 뉴스의 공정성을 걱정하고, MBC의 공영성이 망가지는 걸 못 견뎠을까요? 회사를 너무 사랑한 겁니다. 그렇게 회사를 사랑한 죄로 정직 6개월을 받고 나중에 유배지로 좌천되기까지 합니다.

자, 제가 회사에서 고난의 시기를 보낼 때, 보도국 기자 중에서 정치부장으로 시작해,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내내 승승장구하다 사장까지 오른 분이 있어요. 그 분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오를수록 MBC 뉴스 시청률이나 신뢰도는 점점 추락했어요. 그분이 저를 너무 미워해서 ‘MBC 차기 사장이 가장 미워하는 직원 1호 김민식’이 제 별명이었어요. 그 분이 사장이 되었을 때 사표를 내려고 했어요. 더 이상 미련이 없다, 나가자, 하고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그 사장님과 나, 두 사람 중 MBC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공영방송을 정권에 헌납한 대가로 사장이 된 사람과, MBC를 지키자고 싸웠다가 제작 현장에서 쫓겨난 드라마 피디, 둘 중 MBC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드라마에서 가끔 그런 장면 나오잖아요. 한 여인을 두고 삼각관계에 빠진 두 남자가 만나 다투지요. “우리 둘 중 그녀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그녀 곁에 남기로 하자.” 네, 말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걸 왜 둘이서 따져요. 그 여자 분에게 선택권을 드려야지. 그런데 이때, “사랑하지만, 그녀의 행복을 위해 내가 포기하겠어.”라고 하는 주인공, 정말 밉상이지 않나요? 사랑한다면 끝까지 지켜줘야죠.

괜찮은 회사가 이상해지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이상한 사장이 와서 이상한 사람들을 부장이나 임원으로 뽑아요. 회사 분위기가 이상해질 때, 괜찮은 선배는 그냥 나가버리지요. 그럼 이상한 사람들만 남고, 나갈 선택권조차 없는 어린 후배들에게는 지옥이 펼쳐집니다. 조직이 이상해질 때, 괜찮은 사람이 나가면 더 이상해져요. 그럴 때 누군가는 버텨줘야 합니다. 나쁜 놈들의 세상이 되지 않도록 남아서 짖어대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짖을 자신이 없다면, 째려보기만 해도 됩니다. 누군가 남아서 눈 부라리고 있으면, 나쁜 놈들이 약자들에게 함부로 못하거든요. 째려볼 용기가 없잖아요? 그럼 그냥 웃고 다니세요. 저는 그 시절에 회사에서 부역자를 만나면 웃으며 인사를 건넸어요.

“부장님, 승진 축하드립니다!” 하고요. 제가 웃고 다니면 나쁜 놈들이 되게 기분 나빠 해요. 그게 저의 소심한 복수입니다. 회사를 나가는 건 나쁜 놈들이 바라는 바예요. 남아있는 사람들이 고립되는 길이고요. 버텨야 합니다. 웃으면서 회사를 다니세요. 나쁜 놈들 기분 나쁘라고.

싸워야 할 때 달아나는 건 내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싸움은 적들에게 나를 향한 존중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이런 거 알려주지 않으면 나쁜 놈들은 기어오릅니다. 따끔하게 본때를 보여줘야지요.

즐겁게 싸우는 방법을 책에 총정리 했습니다. 사장실 앞에서 ‘밥줄 끊는 해고 귀신 물러가라’ 외치며 액땜 굿을 한판 벌이고, 동료들과 함께 출연한 ‘떼창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려 조회수 30만을 기록하기도 하고, 1인시위를 대체해 ‘최선을 다해 꼴지를 거머쥐는 하프 마라톤’에 참가하고요. 심지어 ‘복도에서 소리 질렀다’는 이유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었을 때는 ‘경위서를 빙자한 다섯 시간짜리 자기자랑용 필리버스터’를 고안해 부역자들이 학을 떼게 만들었지요. 

블로그 방명록에 질문이 올라왔을 때, 올린 답변입니다. 

‘직장 생활이 힘들 때 나는 어떻게 하는가?

첫째, 회사일과 별개로 즐거운 취미를 찾아본다. 그것은 이미 잘하는 일일 수도 있고, 앞으로 잘하고 싶은 일일 수도 있다. 잘하는 일을 할 때는 자부심을 느끼고, 잘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성장하는 보람을 느낀다. 내 경우에는 첫 직장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저녁에 영어 학원을 다녔다. 학원을 다니면 학원비를 지원해주더라. 회사가 주는 괴로움이 크니까, 금전적 보상이라도 더 타내야 괴로움이 상쇄될 것 같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영어 수업을 들었다. 영어로 잘난 척하니, 우울감을 잊을 수 있었다. 영어는 이미 잘하는 것이었고, 못하지만 잘하고 싶은 건 수영이었다. 밤에는 영어 학원, 아침에는 수영 강습을 다녔다. 수영을 전혀 하지 못했는데, 조금씩 늘어가는 게 재밌었다. 괴로울 땐 조금이라도 즐거운 일을 찾아본다. 독서, 여행, 외국어 공부, 다 그렇게 찾아낸 취미다.

둘째, 직장 밖에서 사람을 만난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책을 읽고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의 강연을 쫓아다니고, 그가 출연한 팟캐스트를 찾아 듣는다. 좋아하지도 않는 직장 상사에게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좋아하는 가족과 친구에게 에너지를 쓴다. 나와 잘 맞는 사람과 재미난 취미를 같이 즐긴다. 괴로울 때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즐기거나, 딸과 여행을 다녔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내어준다. 회사에서 맺은 관계로만 하루를 채우지 않는다.

셋째, 조금 더 긴 시간의 관점에서 현재의 나, 현재의 회사를 바라본다. 나심 탈레브가 쓴 《안티프래질》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물리학자가 1993년 브로드웨이 쇼의 일람을 만들고 그 시점에서 가장 롱런한 쇼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그 예측은 95퍼센트 옳았단다. 그는 어린 시절 대피라미드(5,700년)와 베를린 장벽(12년)을 방문하고 피라미드가 더 오래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 예측 또한 적중했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이들이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마 사라지는 것도 금방이다. 입사하고 10년이 넘은 사람이라면, 앞으로도 10년 이상 버틸 공산이 크다. 지금 회사의 위기가 10년째 지속되고 있다면, 앞으로도 10년 이상 갈 수 있다. 하지만 생긴 지 얼마 안 된 문제라면, 사라지는 것도 금방일지 모른다. MBC 입사하고 즐겁게 일한 시간이 15년이고, 파업 후 삶이 괴로워진 시간은 겨우 7년이다. 만약 비정상의 시기가 15년이 된다면, 그때는 퇴사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것은 비정상이 정상이 되었다는 뜻이니까.

버틸 것인가, 싸울 것인가. 참 어려운 질문이다. 누구와 무엇을 하며 버틸 것인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맛난 것 먹고 즐거운 일을 하며 버틴다. 언제까지 버틸 것인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한, 버틴다.

만날 사람도 없고, 좋아하는 일을 찾을 기력도 없다면 어떻게 할까? 그럴 때면 그냥 혼자 걷는다. 양재천을 걷고, 뒷산을 걷고, 한강변을 걷는다.

힘든 시간, 조금이라도 즐겁게 버텼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 하루하루를 축제처럼 즐기고 싶었다. 꽃이 피면 벚꽃 축제장을 찾고, 여름이 오면 물놀이 축제에 가고, 가을이 오면 단풍 축제에 갔다. 징벌의 시간을 즐거움으로 채우며 살았다. 그 즐거움의 힘으로 언젠가 싸울 수 있기를! 스스로를 응원하면서.’ 

여러분의 직장 생활이 더욱 즐거워지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교보문고 http://bit.ly/37BSvWH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고분고분 참거나 순응하지 않은 덕에 즐거운 인생이 시작...

www.kyobobook.co.kr

예스24 http://bit.ly/2P5QSui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노련한 악당 앞에서도, 질 게 뻔한 싸움을 하면서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고 신나게 한 방 먹일 순 없을까? 강연장에서, 블로그 방명록에서, SNS 다이렉트 메시지로 사람들은 김민식 피디에게 물었다. ‘직장 내 어려움과 괴로움. 역시 퇴사가 답일까요?’, ‘버티기 힘들 때는 어떻게 하나요?’, ‘피디님은 그 많은 괴...

www.yes24.com

알라딘 http://bit.ly/37HP7cW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김민식 피디가 직장에서 받은 온갖 괴롭힘과 주변의 냉소, 이사진을 상대로 한 철옹성 같은 싸움을 버텨낸 7년의 투쟁을 담았다. 그 어떤 어려움 앞에서 도망가거나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맞선 김민식 피디와 동료...

www.aladin.co.kr

 

인터파크 http://bit.ly/2SE4Zcb

 

싸니까 믿으니까 인터파크도서

“싸워야 할 때 달아나지 않는 것은 인생에 대한 예의다”메가폰 든 자객, 김민식 피디로부터 배우는끝까지, 재미있게, 웃으면서 버티는 법 20만 독자를 사로잡은 대형 베스트셀러 저자, 한번 강연하면 멋진 스피치로 100만 조회수를 훌쩍 넘기는 인기 강연가, 시트콤 ‘뉴논스톱’부터 드라마 ‘내조의 여왕’까지 이른바 ‘대박 연출’을 줄줄이 이루어낸 스타 피디 등, 김민식 피디를 따라다니는 화려한 수식어는 많다. 그러나 그 역시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시청률 부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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