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를 하나둘 지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려서 저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어요. 그런 제가 책표지에 제 사진을 실을 날이 올지는 몰랐습니다. 저 사진을 보고 후배가 묻더군요.
"선배님, 저런 표정을 연기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네, 이런 표정을 짓는 비결... 이게 책 표지 사진이 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냥 친구들과 놀면서 재미삼아 이모티콘 실사 버전 하나 만들까? 해서 찍은 표정중에 하나에요. 책표지라고 생각했으면 부담스러워서 표정 연출이 힘들었을 거예요. 이 사진을 찍어주신 분은 박근정 사진작가님인데요. 저랑 10년 넘게 알고 지내는 사이에요.
사진 가장 오른쪽에 있는, 모자쓴 남자분이 박근정 작가님이고요. 그 옆에 앉은 분이 제 출판 에이전트, 10년 전, SF 번역을 하던 저를 보고 "피디님은 번역 말고 책을 쓰셔야해요."라고 했었지요. 모여서 보드게임도 하고, SF 영화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놀다가 친해진 친구들이랍니다.
이 사진도 박근정 작가님이 찍어주신 거예요. 예전엔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했어요. '턱에 난 흉터가 두드러져 보이면 어떡하지?' '눈가 자글자글한 주름이 돋보이면 어떡하지?' 그때마다 박근정 작가나 최지은 편집자님이 옆에서 추임새를 넣지요.
"아니, 피디님, 평소 웃는 표정 있잖아요. 우리랑 놀 때 나오는 그 개구장이 표정이요."
2년 전, 이모티콘용 사진을 찍을 때도, 온갖 표정을 다 주문하더니, 그 사진 중 하나를 표지에 쓸 줄은 미처 몰랐어요. 이번에 박근정 작가님이 새 책 소개 영상을 만들어주셨어요. 편집본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 장면을 어디서 찾았지?' 생각해보니, 두 분은 제가 페이스북 라이브할 때마다 응원 댓글을 달아주셨고요. 2017년 회사 앞에서 MBC 정상화 집회를 할 때도 찾아와 주셨어요.
'아, 두 사람은 10년 동안 나와 늘 함께 있었구나. 늘 나를 지켜보고 있었구나.'
이 영상을 찍을 때도 좀 어려웠어요. '내가 뭐라고 감히 사람들에게 싸우라고 할까.' 싸우는 건 힘들거든요. 그냥 도망가는 게 편할 수도 있거든요. 민망해하고 부끄러워 할 때마다 카메라 뒤에 선 두 친구가 말을 걸어왔어요. 저는 질문에 대답을 했고요.
놀이로 만난 인연이 일로 이어지고, 또 서로 공부가 되고 있어요. 살아가다 상처받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이런 귀한 인연을 만나 버틸 수 있어요.
최지은 대표님, 박근정 작가님, 새삼 고맙습니다!
(아래는 두 분이 만드신 책소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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