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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인생은 내맘대로 안됐어도

by 김민식pd 2019. 11. 14.
<그놈의 소속감>을 읽고 쓴 리뷰에, '후배들에게 점심 먹자고 먼저 연락하지 않아요. 후배가 부르면 그때 나갑니다.'라고 썼어요. 페북에 올린 글에 기자 후배가 '선배, 밥사주세요.'하고 댓글을 달았어요. 약속을 잡았어요. 후배들을 만나면 물어봅니다. 
"요즘 뭐가 재밌어?"
"요즘 뭐가 힘들어?"하고 묻지는 않아요. 고민이 있어도, 회사 선배인 내게 털어놓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충고랍시고 괜히 주제넘은 소리를 할 수도 있고요. 제가 애용하는 질문은 "요즘 뭐가 재밌어?"에요. 어린 30대 후배들의 취향에서 배우고 싶어요. 
"선배, 사기병 보셨어요?"
"응?"
속으로 '사기병? 사마천이 쓴 사기가 아니라 사기병?' 했어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웹툰인데요. 후배가 좋아하는 작품인데, 어느날 책으로 출간된 걸 보고 인터뷰를 했대요. 문화부 기자로 일하는 즐거움이지요. 좋아하는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 
"MBC 구내서점에 선배님 이름으로 주문해뒀으니 곧 연락이 갈 거예요."
그렇게 후배가 선물해준 책을 읽었어요.  

<사기병> (윤지회 / 웅진 지식하우스)

어느날 위암 4기 진단을 받은 작가가 인터넷에 정보를 검색하다 느낀 점. 의외로 많은 정보들이 암 환자에게 힘든 이야기를 담고 있더라는 거죠. 직접 항암 일기를 써서 작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대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기 쓰듯 진행되는 책, 3월의 첫글에서 '쿵'하고 내려 앉았어요.

'어제까지 두 돌도 안 된 아들과 씨름하며 
겨우 어린이집에 보내고 그 사이에
정신없이 일하다 저녁 반찬 걱정을 했는데,
오늘은 내 옆에 죽음이 찾아와 
기다리고 있다.'

구내 서점에서 책을 받은 날, 회사 점심 메뉴가 제가 좋아하는 회덮밥이었어요. 4천원에 회덮밥을 먹는 날이지요. 가성비 끝판왕입니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을 땐 혼자 갈 때가 많아요. 후배더러 밥 사준다고 하고, 짬밥을 사줄 수는 없잖아요. 혼밥이라도 괜찮아, 오늘은 책이 있으니까. 하면서 <사기병>을 식당에 가져 갔어요.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도 덜 민망하도록 분주한 시간을 피해 내려가 밥을 먹었어요. 책이 펼쳐지기 쉽게 제본했기에 밥 먹으면서도 읽을 수 있어요. 그런데 책을 읽다가 갑자기 눈물이 와락 쏟아졌어요. 회사 식당에서 혼자 회덮밥 먹다 울기 싫어 눈물을 참느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 중년의 아재는 호르몬 문제가 좀 있나 봐요...

저는 가벼운 성격이라 누군가를 위로하는 게 참 서툽니다. 그런 제가 보고 '아, 이건 알아둬야겠다.'싶었던 이야기가 있어요.

내게 힘이 된 말들
가볍게 꾸준히 보내 주는 안부 문자
"힘내지 않아도 돼."
"네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몰라서 미안해."
"멀리서나마 항상 응원하고 있어."

가끔 힘 빠지게 했던 말들
신앙 전도
"위암은 잘 낫는데."
(나보다 중증인 분이 해 주면 좋다.)
"억지로라도 먹고 힘내야지."
(억지로도 못 먹는데...)
"잘 지내고 있지?"
(못 지내는데...)
"요즘 암은 별거 아니래."
(내겐 큰일인데...)
"몇 기인지가 뭐가 중요해."
(많이 중요한데...)
(98쪽)


'인생은 마음대로 안 됐지만 투병은 내 맘대로'
윤작가님의 다음 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책은 제가 후배에게 선물하려고요.
끝으로 후배의 리포트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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