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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이렇게 좔좔 읽히는 책이라니

by 김민식pd 2019. 11. 11.
중년의 새내기 유튜버입니다. <꼬꼬독>을 시작한 후, 유튜브의 새로운 기능도 여럿 발견했는데요. 그중 하나가 커뮤니티 기능입니다. 질문을 올리고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 있더군요. 꼬꼬독 커뮤니티에서 이벤트도 하는데요. 그중 독자가 책을 추천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고미숙 작가나 김동식 작가처럼 이미 꼬꼬독에서 녹화해둔 (그러나 당시로서는 아직 업로드 되지 않았던) 책이 나올 때는 속으로 '앗싸!'를 외치기도 했어요.

그중 '설레임'이라는 아이디를 쓰시는 분이 올려주신 글.

'충무로의 원석에서 다이아몬드로 거듭나고 있는 타짜의 주인공. 매력적인  배우 박정민의 '쓸 만한 인간' 을 추천합니다

PD님이 이책을 어떻게 소개해 주실지 벌써부터 궁금해 집니다^^

* 연예인이 쓴 책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한방에  날려줬던 배우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를 재밌게 읽었습니다. 재능이 많은 매력 넘치는 이 두배우... 도대체 못하는게 뭘까요?'

라는 글을 보고 서점에 달려갔어요. 

<쓸 만한 인간> (박정민 / 상상출판)

배우와 피디들이 쓰는 책을 읽으며 업계 사람들의 애환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연기를 해보겠다고 극단에 들어간 2005년, 극단 형과 함께 포스터를 붙이다가 가슴에 꽂히는 한마디를 듣게 됐다. 
"너같은 놈 많이 봤어. 발 좀 담그는 척하다가 다 없어져."

(18쪽)

96년에 MBC 면접을 봤을 때 어느 선배님은 제게 불합격 점수를 주셨대요. "공대 나와서 영업하다 2년만에 그만 두고, 다시 통역대학원 갔다가 2년만에 직업을 바꾼다는 친구니, 아마 진득하게 일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요. 뜨끔했어요. 저는 사실 싫증을 잘 내는 편이라, 마음에 안 들면 금방 그만두거든요. 그때 다른 심사위원들이 좋은 점수를 주신 덕에 운 좋게 입사했는데요. (똑같은 걸 보고 2가지 평가가 나올 수 있어요. '꾸준함이 없다 vs.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그 선배님은 저를 볼 때마다 "너 언제 그만둘 거야?"하시며 제 오기를 발동시켰지요. 속으로 그랬어요. '선배님보다 이 회사, 더 오래 다닐 겁니다.' 박정민 배우도 선배의 그 한마디가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하는군요. 박정민 배우는 평범해보이는 외모 탓에 굴욕을 겪기도 합니다.

'야외 촬영 중에 액션을 기다리며 집중하고 있는데 본인 앞으로 승용차 한 대가 살포시 정차하고 창문이 징 내려간다. 아주머니 왈,
"여기 이렇게 길을 막고 촬영하시면 안 되죠. 아저씨."
"네?"
"여기 사는 사람도 생각해주셔야죠. 왜 길을 막고 찍어요."
"그렇죠. 저 사람들 이상하죠. 저도 지금 그 생각하고 있었어요."
"스태프 아니구나. 죄송해용."
"아닙니다. 제가 경찰서에 신고할게용."

못하는 것도 없지만 잘하는 것도 딱히 없는, 잘생기지 않았는데 개성 있게 생겼다기엔 한 끗이 부족한, 못돼 처먹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걸 착하다고는 할 수 없는, 아주 애매한 선상에 위치한 인간, 이른바 과도기적 인간, 나쁘게 말하면 그냥 좀 찌질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66쪽)

책 읽다가 혼자 큭큭거리며 웃었어요. '배우의 이런 자학 개그, 좋아!' 옛날에 논스톱 촬영할 때, 그날 처음 나온 어느 배우의 코디가 제게 와서 "다음씬은 뭐 찍나요?"하고 물어보기에 친절히 설명해줬더니, "그런데 여기 감독님은 어디 계시죠?"라고 해서, 옆에 있던 조연출이 "아니, 그걸 왜 감독님한테 가서 물어보세요. 죄송합니다, 감독님."하고 황급히 데려갔던 적이...... ㅋㅋㅋ 그 코디는 아마 '촬영장에 왠 이주민 노동자가 다 있나?' 했을 지도... 

'영화를 참 좋아했다. 그래서 많은 영화를 보려고 노력했던 것도 같다.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나와 몰래 교실에서 비디오를 보기도 하고, 한자리에서 네다섯 편의 영화를 보기도 하고, 영화가 보고 싶어 영화제 자원봉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영화를 전공하게 되고 또 그러면서 연기를 하게 됐다. 그런데 참 웃기게도 영화가 전공이 되고 연기가 직업이 되다 보니, 영화를 즐기기보단 판단하고 평가하면서 보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모든 일이 다 그럴 것이다. 자신의 전공에 있어서는 관대한 시각을 갖기가 대부분 어렵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연스레 틈을 찾고 흠을 찾는다.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이건 이래서 좋다.'보다 '이건 이래서 별로다.'를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123쪽)

취미를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나봐요. 직업이 되는 순간, 순수하게 즐기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각인을 시킵니다. '나는 이걸 (드라마 연출, 책 쓰기, 강연) 전공하거나 직업으로 시작한 사람이 아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즐기는 편이 나아.'

영화 <변산>을 보며, '오, 저 배우 진짜 래퍼같애!'했는데요. 박정민 배우, 랩하듯이 글을 씁니다. 좔좔 읽힙니다. 술술 읽히는 게 아니라, 그냥 좔좔~~~ 글을 쓴 사람의 얼굴을 알고, 그의 목소리를 아니까, 머릿속에서 그의 이야기가 좔좔 흘러갑니다. 독서의 순수한 즐거움을 맛보게 해 준 책이었어요. 

추천해주신 '설레임'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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