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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어떤 세상을 남길 것인가

by 김민식pd 2019. 12. 2.
한동안 신문의 서평란을 뜨겁게 달군 책이 있어요.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 

<불평등의 세대> (이철승 / 문학과 지성사)

30년 주기로 한국 사회를 3개의 세대를 나눕니다. 1930년생 산업화 세대, 1960년생 386세대, 1990년 청년 세대. "산업화 세대가 첫 삽을 뜨고, 386세대가 완성한 한국형 위계 구조, 그 희생자는 바로 청년 세대다'라고요. 우리는 불평등 구조에 대해 분노하지만, 한편으로는 뒤처지지 않으려고 분투하며 삽니다. 불평등 구조의 희생자이자, 생산 주체라는 거죠. 저자는 불평등의 문제가 공동체의 생존과 안녕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합니다.
  
'왜 우리는 386세대와 함께 민주화 여정을 거쳤음에도, 우리의 아이들과 청년들은 더 끔찍한 입시 지옥과 취업 전쟁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고 있는가? 왜 민주주의는 공고화되었는데, 우리 사회의 위계 구조는 더 '잔인한 계층화와 착취의 기제'들을 발달시켜 왔는가? 왜 여성들은 여전히 입직과 승진, 임금에서 차별받는가? 왜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와 관용의 문화 및 정책이 뒤따르지 못하는가?'
  
(위의 책 79쪽)

책은 그 답이 '시장'에 있다고 말합니다. 386세대는 '시장'에서의 격화된 경쟁과 두 번의 금융 위기를 겪으며 세대 내부에서 엄청난 분화를 경험했어요. 386의 시작은 일단 운이 좋았어요. 앞선 산업화 세대에 비해 덜 힘들었지요. 식민지나 전쟁을 겪지도 않았고요. 사회 진출했을 때 IMF가 터지는데요. 이게 나름 불행 중 다행입니다. 1997년 금융 위기가 왔을 때, 직장 신입사원들이었어요. 비교적 임금이 싸기에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했죠. IMF 때 주로 희생된 사람들은 3,40대 중견급 사원, 즉 산업화 세대였어요. 윗 세대가 조직에서 밀려난 자리를 386들이 빠르게 차지합니다. 2000년대 세계화와 정보화와 함께 한국 기업들이 약진할 때, 운 좋게 그 흐름에 동승하고요. IMF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로 정규직이 사라집니다. 시장의 변화에 살아남은 세대이면서, 그 부조리한 구조를 공고화하는 게 386세대랍니다. 불평등 구조의 3가지 요인을 이렇게 지목합니다.

'노동시장에서 임금 불평등이 나타나는 세 요인은, 첫째 개별 노동자가 속해 있는 기업 조직이 대규모인가 아닌가, 둘째 고용 지위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 셋째 사업장에 노조가 존재하는가 여부다.' 
(99쪽)

저자는 시장을 새로운 한국형 위계 구조로 살펴봅니다.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가 일제 침략과 함께 끝이 났어요. 산업화가 시작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왔어요. 시장 만능주의의 시대, 유리한 위치를 먼저 차지한 사람들이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 있어요. 그 희생양은 누구일까요? 

'산업화 세대가 첫 삽을 뜨고, 386세대가 완성한 한국형 위계 구조인 '네트워크 위계'의 희생자는 누구인가? 청년과 여성이다. 이 교집합은 젊은 여성이다. 2010년대 후반 들어 급진화된 페미니즘이 부상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급진화된 페미니즘이 '미러링'을 하고 있는 젊은 남성 보수의 부상 또한 우연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악화일로에 있는 청년 노동시장의 상황은 한국형 위계 구조와 그에 기반한 발전 전략 전체가 재생산 위기에 봉착했다는 한 징표다.'
(227쪽)

이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저자는 386세대에게 요구합니다. 자리 욕심을 내려놓고 권력을 나누라고. 
다양한 세대와 성별의 리더들로 구성된 '무지개 리더십'으로 더 젊은, 더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조직과 사회에 불어넣으라고요. 젊은이들과 여성을 조직의 최상층으로 끌어올리면, 경직된 권위주의 문화와 386세대의 장기 집권으로 인한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어요. "386세대가 죄인이라고?" 
중간부터는 부끄러웠어요. "지금의 현실에 대해 386이 잘못이 많긴 하네..." 
책을 덮을 무렵에는 고민이 깊어졌어요. "그럼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지?"

386 세대가 만든 불평등의 구조를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이는 공동체 생존과 안녕에 직계되는 문제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책을 읽으며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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