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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어디에서 살든 행복하기를

by 김민식pd 2019. 11. 27.
외대 통역대학원 후배인 아내는 결혼 후, 미국 와튼 스쿨로 MBA 유학을 떠났어요. 대학원을 다니며 미국 기업에 인턴으로 취업하기도 했고요. 어느날 아내가 제게 묻더군요. 
"미국에 이민 와서 살아볼 생각 없어?"
딱 잘라 싫다고 했어요. 당시 2000년 초반, 저는 MBC 예능국에서 아주 즐겁게 일하고 있었어요. 한국에서 살면 영어'도' 잘 하는 피디인데, 미국에 가면 그냥 이상한 억양을 가진 이주노동자 취급을 받지요. 저는 한국에서 사는 게 더 좋아요. 해외 여행을 좋아하지만 이민은 고려해본적이 없는데요. 좋아하는 후배가 이주를 선택한 걸 보고 궁금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가 뭘까?' 그래서 찾아본 책입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 (김병철, 안선희 / 위즈덤하우스) 

저자들은 독특한 세계일주 여행을 떠납니다. 세계여행을 하며 한국인 이민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어요. '이 정도 스케줄이면, 여행이 아니라 출장 아냐?' 싶어요.

한국을 떠난 이유나 타지가 좋은 이유를 물으면, 거기라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라는 말들을 일단 합니다. 타향살이가 어찌 쉽겠어요. 그것도 물설고 말설은 외국인데. 동유럽이고 독일이고 캐나다고, 한국인 이민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어요.

"여기는 야근이 없고 회식이 없어요."

독일로 이민 가서 치기공사와 치위생사로 일하는 부부가 있어요. 저자가 물었어요.

Q: "독일의 근무환경은 어떤가요?"
A: "저희 치과는 환자 치료가 퇴근시간 이후까지 이어지면 초과근로를 5분 단위로 계산해요. 초반에 환자 치료가 오후 5시 반에 끝나서 퇴근 시간인 6시까지 휴게실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원장에게 '왜 퇴근을 안 하냐'는 소리를 들었어요."

(64쪽)

원장이 남아서 문을 닫고 퇴근하고 일없는 위생사가 먼저 퇴근하는 문화가 낯설었다고 해요. 외국에서는 일없는 직원이 상사 눈치보느라 남는 경우가 없습니다. 캐나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어떤 이는 오후 3시 반에 퇴근한답니다. 한국에서 두산에서 일했는데 주류판매 기업이라 술을 많이 먹었다고요. 평일에는 저녁마다 회식을 하고 늦게까지 술을 먹으니 주말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게되고, 그러다보니 개인시간이 없었대요.    

이민 전에 퇴사를 먼저 한 이도 있어요. 관광학을 전공한 후 여행사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가신 분 이야기에요.

Q: "퇴사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A: 일도 일이지만 회식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원래 술을 잘 못하는 체질인데 회식 때 간혹 술 마시는 걸 강요하는 상사들이 있었어요. 그러다 하루는 상사가 "술을 안 마실 거면 퇴사해!"라고 하기에, 그 다음날 사표를 냈어요."

인종차별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게 상사 갑질인가 봐요. 1990년대, 첫 직장을 다닐 때, 직속 상사가 업무상 과로로 질병을 얻은걸 무용담처럼 얘기했어요. 너무 힘들게 일하는 게 싫어 사표를 냈더니 다들 그러더군요. "그나마 우리 회사는 외국계 기업이라 덜 힘든 거야. 한국 회사는 더 심해. 여기 나가면 다른데 못 가." 직장에 갈 생각 없이 평생 프리랜서 통역사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른들이 출생률 낮다는 걱정을 하는데요. 있는 사람 나라 밖으로 쫓아내지나 말았으면 좋겠어요. 책을 읽으며 반성했어요. '한국 기업에서는 내 또래 50대가 가장 문제구나...'

여기에 불만이 있어 떠나면, 거기 가서 새로운 불만이 생깁니다. 그래서 회피 동기보다 접근 동기가 더 중요해요. 기왕에 떠난다면, 여기가 싫어서 가는 게 아니라, 그곳이 더 좋아서 갔으면 좋겠어요. 

어디에서 살든 당신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이곳을 선택한 모든 이들이,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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