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대 통역대학원 후배인 아내는 결혼 후, 미국 와튼 스쿨로 MBA 유학을 떠났어요. 대학원을 다니며 미국 기업에 인턴으로 취업하기도 했고요. 어느날 아내가 제게 묻더군요. 
"미국에 이민 와서 살아볼 생각 없어?"
딱 잘라 싫다고 했어요. 당시 2000년 초반, 저는 MBC 예능국에서 아주 즐겁게 일하고 있었어요. 한국에서 살면 영어'도' 잘 하는 피디인데, 미국에 가면 그냥 이상한 억양을 가진 이주노동자 취급을 받지요. 저는 한국에서 사는 게 더 좋아요. 해외 여행을 좋아하지만 이민은 고려해본적이 없는데요. 좋아하는 후배가 이주를 선택한 걸 보고 궁금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가 뭘까?' 그래서 찾아본 책입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 (김병철, 안선희 / 위즈덤하우스) 

저자들은 독특한 세계일주 여행을 떠납니다. 세계여행을 하며 한국인 이민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어요. '이 정도 스케줄이면, 여행이 아니라 출장 아냐?' 싶어요.

한국을 떠난 이유나 타지가 좋은 이유를 물으면, 거기라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라는 말들을 일단 합니다. 타향살이가 어찌 쉽겠어요. 그것도 물설고 말설은 외국인데. 동유럽이고 독일이고 캐나다고, 한국인 이민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어요.

"여기는 야근이 없고 회식이 없어요."

독일로 이민 가서 치기공사와 치위생사로 일하는 부부가 있어요. 저자가 물었어요.

Q: "독일의 근무환경은 어떤가요?"
A: "저희 치과는 환자 치료가 퇴근시간 이후까지 이어지면 초과근로를 5분 단위로 계산해요. 초반에 환자 치료가 오후 5시 반에 끝나서 퇴근 시간인 6시까지 휴게실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원장에게 '왜 퇴근을 안 하냐'는 소리를 들었어요."

(64쪽)

원장이 남아서 문을 닫고 퇴근하고 일없는 위생사가 먼저 퇴근하는 문화가 낯설었다고 해요. 외국에서는 일없는 직원이 상사 눈치보느라 남는 경우가 없습니다. 캐나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어떤 이는 오후 3시 반에 퇴근한답니다. 한국에서 두산에서 일했는데 주류판매 기업이라 술을 많이 먹었다고요. 평일에는 저녁마다 회식을 하고 늦게까지 술을 먹으니 주말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게되고, 그러다보니 개인시간이 없었대요.    

이민 전에 퇴사를 먼저 한 이도 있어요. 관광학을 전공한 후 여행사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가신 분 이야기에요.

Q: "퇴사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A: 일도 일이지만 회식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원래 술을 잘 못하는 체질인데 회식 때 간혹 술 마시는 걸 강요하는 상사들이 있었어요. 그러다 하루는 상사가 "술을 안 마실 거면 퇴사해!"라고 하기에, 그 다음날 사표를 냈어요."

인종차별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게 상사 갑질인가 봐요. 1990년대, 첫 직장을 다닐 때, 직속 상사가 업무상 과로로 질병을 얻은걸 무용담처럼 얘기했어요. 너무 힘들게 일하는 게 싫어 사표를 냈더니 다들 그러더군요. "그나마 우리 회사는 외국계 기업이라 덜 힘든 거야. 한국 회사는 더 심해. 여기 나가면 다른데 못 가." 직장에 갈 생각 없이 평생 프리랜서 통역사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른들이 출생률 낮다는 걱정을 하는데요. 있는 사람 나라 밖으로 쫓아내지나 말았으면 좋겠어요. 책을 읽으며 반성했어요. '한국 기업에서는 내 또래 50대가 가장 문제구나...'

여기에 불만이 있어 떠나면, 거기 가서 새로운 불만이 생깁니다. 그래서 회피 동기보다 접근 동기가 더 중요해요. 기왕에 떠난다면, 여기가 싫어서 가는 게 아니라, 그곳이 더 좋아서 갔으면 좋겠어요. 

어디에서 살든 당신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이곳을 선택한 모든 이들이,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Posted by 김민식pd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콩여사 2019.11.27 0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하루 생각과 댓글 이웃님 마주하며 생각시간 갖는 오전시간이 행복하여라

  3. 짜장 2019.11.27 0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가 싫어서 떠나는 것보다
    그곳이 더 좋아서 떠난다는 말이 참 와닿습니다.
    이민 뿐만 아니라
    내 생활에서 뭔가를 실행하거나 할때도
    이게 싫어서 저걸하자 보다
    저게 더 좋으니까 하는거 라는 생각을 들여야겠어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4. 섭섭이짱 2019.11.27 0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브런치에서 본 글 같은데..... 맞네요. 맞아..
    사람들이 워낙 많이 공유해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책으로 나왔군요. 호주 청소부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남는데..... 브런치 글의 댓글들 읽어보면 읽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양한거 같더라고요.

    회피 동기보다 접근동기가 중요하다는 말씀 맞아요. 하지만 기본적인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나라라 생각이 들면 떠나게 될 수 밖에 없는거 같아요. 특히 어이없는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에게는 더욱 더 그러신거 같아요.

    그래도 계속 외국의 좋은점은 받아들이고 나쁜점은 바꾸려고 하니 좋아질거라 생각합니다.


    p.s ) 책 이전에 이 저자분들 글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브런치를 참고하세요

    https://brunch.co.kr/@movemovemove#articles

  5. 책잇 2019.11.27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루하루 피디님 글 읽으면 뭔가 생각이 많아집니다.
    내 삶을 다시 돌아보고...
    뜨끔 하기도 합니다.
    늘 새벽글 감사합니다.

  6. 힘껏배워늘푸른나 2019.11.27 0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디에서 살든..
    행복은 선택의 문제인거 같아요~

    내가 있는 여기. 오늘 하루도.
    행복하기로 선택했기에 해피하게 시작합니다^^

    PD님도 행복을 선택하는 하루 되세요~*

  7. 제니스라이프 2019.11.27 0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국을 전전하며 사시는 분의 말씀이 "처음 1년 동안은 화난 상태로 산다"고 하네요.

    도저히 못살겠다 싶다가도 이 곳에서만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하니 천국이 되는 걸 보니
    어디에 가든지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므로 회피동기보다 접근 동기가 더 중요하다는 말! 백 번 공감합니다!!!

  8. 파푸리카(papu) 2019.11.27 0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시는군요 ㅠㅠㅠ
    사실 도피성이민에 낙원이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걸생각하면 한국을 떠나고싶은지 않은데
    워라밸을 챙길 수 없는 생활을 몇년이나 할 생각을 하면
    막막하기만해요 ㅜㅜ

    •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11.28 09: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말이에요.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 치고, 일 잘하는 사람 없다라는 말이 있어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근을 하면 수면의 질이 낮아지고,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매일이 피곤하고, 그러면서 점차 삶의 질도 낮아지고요. 진짜 유능한 사람은 제 생활 리듬을 꾸준하고, 규칙적으로 잘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9. boderless Nomad_MK 2019.11.27 09: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중년(맞으시죠??)에도 불구하고
    세대차이가 어색하지 않은 젊은이들의 고민과 아픔을 공감하시는 이 글을 보고
    다양한 나이대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공중파 피디로 성공하신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오늘 하루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 workroommnd 2019.11.27 1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회피동기보다 접근동기..
    회피하고 싶어도 접근할데가 없어서 고민인 요즘이요~
    끈기가 있어야 뭐든 할텐데..ㅠ

  11. Mr. Gru (미스터그루) 2019.11.27 1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의 글과는 관련없지만

    매일매일 틈날 때마다 읽으러 오는 습관을 만든

    나 자신에게 칭찬으로 오늘을 시작합니다.

    재밌고 유익한 글을 무료로 제공해주시는 pd님께도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12. silahmom 2019.11.27 1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0을 바라보는 40대 직장인입니다.
    야근을 싫고 , 그래도 마음에 맞는 직원들끼리의 회식은 좋으니
    전 벌써 너무 한국 직장인 문화가 몸속에 새겨졌나 봅니다.
    후배들에게 절대 회식하자고 말하면 안되겠다고
    이글 보고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13. 나겸맘 리하 2019.11.27 1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출생률 낮다 걱정 말고
    있는 사람 밖으로 쫓아내지만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씀...
    읽다가 웃음 터졌어요.^^
    스스로 돌아보기가 잘 되는 어른들이 많아지면
    지금보다는 훨씬 살기좋아질텐데 말이죠.
    피디님은 이미 좋은 어른이시니 반성에서는 열외십니다~
    편안한 저녁되시길요~~

  14. 가평댁 2019.11.27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가 싫어서 가는 게 아니라, 그곳이 더 좋아서 갔으면 좋겠어요.

    ---작가님 말씀에 우리의 지난날이 생각났어요.
    신랑이 팀장으로 승진하고 나서.. 퇴사를 결정한건.. 피디님이 말씀하신 것과 비슷했어요.
    내가 여기서 몇년 지나면 저 자리로 가고... 몇년 지나면 저 자리로 올라가고..
    퇴근은 더 늦고.. 가족들과의 시간은 없고....?? 계속 이렇게 사는 이유가 뭐지??
    그래서 저희는 도시에서의 삶이 싫어서 귀촌을 한건데요.
    도시가 싫어서 왔는데... 다행히 이 곳이 더 좋아졌어요.. 아주 다행히도요^^

    가평에 와서.. 작가님 강의도 눈앞에서 봤잖아요^^

    강의후 느낀 점이 많아요. 블로그에도 썼는데.. 놀러오세요^^

    https://sopia0sck.blog.me/221720223820


    매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15. 오달자 2019.11.27 2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한 동생이 미국에 사는데요~~
    한국에 오고싶어 안달입니다...

    아이들에게나 자유로운학교 생활이지.
    엄마에걱는 픽업과 도시락싸는 문제 뿐만 아니라.
    그 동생왈~
    한국처럼 아줌마가 살기 좋은 곳은 없다고 합니다.
    그럼...역으로 아저씨들이 힘든 한국인가...잠시 생각해보아요.

    피디님 말씀저럼 더이상 젊은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16. 봄처녀 2019.11.27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이러튼 저러튼 한국은 누가 지키나 그런 생각이^^;;

  17. 김주이 2019.11.28 0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업무환경도 문화도 모두 점점 더 좋아지면 좋겠어요.
    지금도 어느 시점 보다는 더 좋아진 것도 같은데 아직도 갈 길이 남은 것 같네요.

    오늘도 원치않는 야근과 회식에 힘들어하는 직장인 모두 화이팅입니다.

  18. 한국대장 2019.11.29 0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완전 팬이에요! 타향 살이가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꼬꼬독 보면서 독서하면서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 하고 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19. 기댈언덕 2019.11.29 0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0대 직장인들의 청년시절과 지금이 다름을 쿨하게 인정하기 배울수있는 학원같은거 있으면 좋겠어요..군대처럼 꼭 가야하는 곳으로 ㅋㅋ아님 변해라 얍 하면 변하는 마법이 있거나요
    그럼 회사가 가고싶고 힘든일도 견딜만할것같은데말이죵~~40인 저부터 변해야죵..얍!

  20. 오뚝이 루크 2019.11.29 09: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생각이 드네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