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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내 인생을 살려면

by 김민식pd 2019. 10. 15.

어린 시절 저의 꿈은 문학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었어요. 아버지는 제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어요. 저는 피를 보는 것도 질색이고, 의사라는 직업도 싫고, 무엇보다 성적도 좋지가 않았어요. 아버지는 항상 말하셨지요. "니가 내 집에서 내 돈 받고 살려면, 내 말을 들어야지." 저는 그 말씀이 지긋지긋해서, 대학에 올라가자 독립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돈을 모았어요. 아버지의 돈을 받으며 평생 아버지의 아바타로 사는 것보다, 가난해도 나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못다 이룬 문학도의 꿈이 있어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읽었습니다. 우리 시대 문학청년의 삶, 만만치가 않더군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따고 출신학교인 지방대학교에서 시간 강사로 일하는 저자가 어느 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행정조교로, 시간강사로, 연구원으로, 박사과정까지 대학에서 8년을 일했지만 아이를 위한 건강보험조차 들어주지 않아요. 은행 대출을 위해 필요한 재직 증명서 한 장, 대학에서는 떼어주지 않습니다. 그는 제대로 된 노동자도 못되니까요. '4대보험 가입'이라는 채용 공고를 보고 맥도날드를 찾아가 그곳에서 육체  노동을 합니다. 맥도날드에서 매달 정해진 근로시간을 채워 아이를 위한 건강보험을 가입하고, 아버지로서의 보람을 느끼지요. '대학이 어떻게 맥도날드보다 못하단 말인가?' 그의 질문은 지방대 시간 강사의 삶에 대한 르포로 이어지고, '309동 1201호'라는 필명으로 책을 냅니다. 저는 그 책을 읽고 이런 사람이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본 대학 동료들이 만나자고 연락해옵니다. '니가 '지방시'지?' 그들은 그에게 사과를 요구합니다. 지도교수님을 뵙고 잘못을 빌라는 이야기에 그는 학교를 그만둡니다. 그가 대학 강사 일을 그만뒀다는 소식에, 교수의 꿈을 포기했다는 얘기에 울적했습니다. 조직이 내부 고발자에게 어떤 대접을 하는지 저도 조금은 알거든요.

저자의 페이스북을 통해 그가 대리 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가도 카카오 드라이버에 콜이 뜨면 달려 나갑니다. 취객의 차를 몰면서 그는 3가지 통제를 경험합니다. 행위의 통제, 언어의 통제, 사유의 통제. 첫째, 행위의 통제, 브레이크와 엑셀 말고는 차량 내부 조작을 못합니다. 운전석의 위치나 에어컨 조작도 못하고 오직 차의 상태에 몸을 맞춥니다. 둘째, 언어의 통제, 손님이 말을 걸기 전에는 먼저 대화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손님이 어떤 의견을 내든 수긍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유의 통제, 주체적으로 행위하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사유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이지요. 그런데 이 3가지 통제, 어쩐지 익숙하지 않나요?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가 흔히 겪는 통제 아닌가요?

대리기사로 일하던 김민섭 작가가 내린 결론.

'나는 이 사회를 대리사회로 규정한다. 우리는 더 이상 온전한 나로서 현상을 바라보고 사유하지 않는다. 스스로 판단하고 질문하는 법을 점차 잊어가고 있다.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러한 통제에 익숙해진 대리인간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틀을 만들고, 스스로 사유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강요된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믿으며 타인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11쪽 프롤로그 중)

공부와 일과 놀이에서 주체가 되기 어렵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회사에 들어가서는 상사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늙어서는 사회가 정한 기준에 따라 욕망을 추구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가는 게 진짜 공부고, 좋아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노동이고, 그렇게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통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게 궁극의 놀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부터 김민섭 작가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김동식이라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졌어요. 김민섭 작가는 국문학을 전공했어요. 문학평론가란 등단한 작가의 소설을 읽고 대중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지요. 학교를 떠난 김민섭 작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독특한 글을 봅니다. 놀라운 건 그 독특한 글을 쓰는 작가가 보여주는 작업량입니다. 1년 반 동안, 340편의 단편소설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요. 작가를 찾아갑니다. 김동식 작가는 중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서울에 올라와 주물 공장을 다녔어요. 낮에는 뜨거운 주물 국자로 틀에 납을 붓는 일을 하고, 밤에는 인터넷 게시판에 올릴 글을 썼어요. 돈 한 푼 안 되는 일이지만 매일 매일 꾸준히 쓰지요. 김민섭 작가는 김동식 작가의 온라인 소설에서, 새로운 문학의 출현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김동식 작가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죠. 책은 나오고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김동식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공장에서 일할 때 나는 사회에서 빠져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 부품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 내가 주도적이 되고 기계에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엑스트라가 아닌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바라는 것도 별로 없다. 내 글을 읽고 사람들이 재밌어하면 좋겠다."

이게 인터넷 글쓰기의 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랬거든요. 송출실에 앉아 뉴스를 강제시청하면 저들의 노예가 된 것 같은데,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자유인이 된 것 같았어요. 내가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해 내가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만큼 쓸 수 있는 게 블로그 글쓰기거든요. 그렇게 쓴 글이 책으로 만들어지고, 그 책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위안이 된다고 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김동식 작가님의 소개글입니다.

1985년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할 수 있을 나이가 되었을 때, 바닥 타일 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구로 올라갔다. 2006년 독일월드컵이 열리던 해 서울로 상경, 성수동 한 주물 공장에서 10년가량 재직했다.

2016년 온라인 커뮤니티 공포 게시판에 창작 글을 올리기 시작해 3년 동안 500여 편을 집필했다. 2017년 12월, 『회색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를 동시출간하며 데뷔하였고, 또 다른 소설집으로 『양심 고백』,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나의 인류, 인류의 하나』, 『살인자의 정석』, 『성공한 인생』, 『텅 빈 거품』(공저)을 출간했다.

3년 동안 9권의 책을 내셨습니다. 대리 기사를 하며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전직 지방대 시간강사가 주물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를 작가로 만들었어요. 문학 연구자로서 김민섭의 불행이 김동식의 행운이 되었고, 김동식을 행복한 작가로 만들면서, 김민섭은 문학 전공자로서 보람을 되찾았지요. 이게 인생인 것 같아요. 지금은 알 수 없어요. 나중에 무엇이 되고 안 되고는 몰라요. 그럼에도 지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게 우리가 인생을 사는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꼬꼬독, 꼬꼬독! 작가에서 작가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독서,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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