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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나를 위로해 주는 책

by 김민식pd 2019. 10. 2.

꼬꼬독에 올라온 영상을 소개합니다. 대본은 아래에 있어요. 유튜브 앱으로 봐주시면 더 좋습니다. 시작할 때 나오는 광고도 딱 10초만 참고 봐주시고요. ^^  


살다가 힘들 때는 어떻게 할까요? 제 사무실 벽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몇 점 걸려있고요. 고흐의 그림을 모은 갤러리북도 있어요. 고흐의 그림을 보며 위로를 얻습니다. 피디 지망생들에게 강의를 할 때는 “반 고흐가 제 인생의 지표입니다.” 라고 말하면 “왜 하필 그렇게 불행하게 살다 간 사람을 롤 모델로 삼으시나요?” 하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반 고흐가 과연 불행한 사람이었을까요?
반 고흐가 평생 돈 받고 판 그림은 달랑 한 장이었지만, 생전에 그린 그림은 4천장이 넘는답니다. 그림을 열 장 스무 장을 그려도 팔리지 않아 불행했다면 고흐는 화가이기를 포기했을 겁니다. 그림이야 팔리건 말건 해바라기를 그리는 순간,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는 순간 매순간이 고흐에겐 행복이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빈센트 반 고흐가 존재하는 거죠.
“이번 영화는 무조건 5백만은 넘겨.” “이 대본은 시청률 10은 반드시 넘게 되어 있어.” 연출 경력 20년이 넘으니, 흥행 결과를 장담하는 이들은 대중문화를 모르거나 아니면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소비자의 취향을 가늠하기란 참으로 어렵기에 난 대중의 취향보다 자신의 취향을 더 고민합니다. 대본을 고를 때, 난 무조건 내가 좋아하는 장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선택합니다. 그래야 밤샘 촬영을 해도 힘들지가 않아요.
직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드라마나 영화의 흥행 여부를 점치기 어려운 만큼, 앞으로 잘나갈 직업을 점치기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취업의 불확실성이 크기에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직업의 선호도가 올라가는데, 세간의 평가로부터 자유롭다면, 누구나 즐거운 자신의 일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러빙 빈센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손으로 그린 유화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아주 독특한 영화입니다. 125명의 화가들이 동원되어 10년간에 걸쳐 고흐의 화풍을 그대로 재현해냈습니다. 이런 영화가 가능한 것은 고흐는 자신이 본 풍경, 만난 사람을 다 그림으로 남겼기 때문이죠. 고흐 그림 속 캐릭터가 영화 주인공이 되고 고흐의 풍경화가 영화의 배경이 됩니다. <별이 빛나는 밤>, <가셰 박사의 초상>, <우편 배달부 루랭>,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 고흐의 유명한 작품들을 영화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반고흐, 마지막 70일>이라는 책을 보면, 고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오베르에서 70일을 지내며 80장의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요. 그가 남긴 마지막 그림들을 보면 오베르 쉬르 우아즈라는 프랑스 시골 마을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있는 그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는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즐긴 사람입니다.
고흐는 워낙 많은 그림을 그렸기에 유럽 여행을 가면, 곳곳에서 고흐의 그림을 만납니다. 좋은 그림을 보면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미술관 기념품 샵에 가서 그림엽서나 프린트를 사고 싶은데 가격을 보면 감당이 안 됩니다. 또한 여행 중에 그림을 사면 들고 다니기도 애매하고 보관도 쉽지 않죠. 한국에 돌아와서 화가의 그림책을 살 때도 있는데, 번들번들한 종이에 인쇄된 탓에 그림의 맛이 떨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아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갤러리 북 - 빈센트 반 고흐> (김영숙 / 유화출판사) 

정말 신기한 책입니다. 종이 질이 다르고 인쇄 잉크 자체가 달라 책을 펼치면 마치 손으로 그린 유화가 펼쳐지는 기분이에요. '이거 그린 거 아냐?'하고 손가락으로 문질러 본 적도 있어요. 오리지널 유화를 소장한 기분이죠. 좋아하는 그림은 따로 떼어낼 수 있도록 제본한 것도 마음에 듭니다. 
고흐의 유명한 그림은 다 나옵니다. 67쪽의 <노란집>이나 71쪽의 <고흐의 방>이 낯익어요. 영화 <러빙 빈센트>에서 배경으로 쓰인 그림이거든요. 영화속 풍경으로 익숙한 그림을 소장하게 되어 횡재한 기분이에요. 
책을 읽다보면 고흐의 작업 스타일도 배웁니다. 56쪽의 '씨뿌리는 사람'이나 84쪽의 '낮잠'은 모작인데요. 평소 존경하는 화가가 있으면 그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걸 즐겼답니다. 고흐는 좋아하는 마음이 먼저고, 어떤 식으로든 그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던 사람인 것 같아요. 
저자 김영숙 님은 음악과 미술 애호가로 <손 안의 미술관> 시리즈를 내신 분이에요. 미술관에 가고 싶어지는 미술책, 미술관에서 읽는 그리스 신화 등. 그림을 보면 소장된 미술관 정보가 있는데요. 언젠가 이 책에 나오는 그림들을 찾아 유럽 미술관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어요.
19세기 예술가들이 동경하는 도시 파리에서 소위 화가로 행세하려면 살롱전이라 불리는 관전 입선이 지름길이었어요. 살롱전은 신화나 종교, 그리고 역사를 주제로 하는 ‘역사화’를 가장 우위에 놓습니다. 그리스 신화나 예수의 일생을 그린 그림이 많지요. 빈센트가 존경하는 화가들은 이런 살롱전에서 늘 고배를 마십니다. 풍경화를 주로 그렸기에 평범한 일상이 그려졌거든요. 특히 빈센트가 좋아하던 밀레는 신도 성자도 영웅도 아닌 한낱 농부를 그림의 주인공으로 삼았지요. 
1874년 살롱전에서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마시던, 시대를 앞서 나가는 화가들이 모여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그들은 사물이나 풍경을 보았을 때 그 순간 눈에 새겨지는 모습, 즉 인상을 그림에 담고자 했어요. 한 기자는 그걸 보고 조롱의 의미를 담아 “인상만 남았군!”했어요. 이후 그들은 인상파 화가라고 불립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파리에 와서 낡은 미술에 저항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화가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화풍을 만들어갑니다. 빈센트는 내 눈에 보이는 대로의 풍경을 담아내는 인상파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마음’이 보는 풍경을 그리고자 했어요. 
‘말하자면 그는 울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울고 싶은 혹은 울고 있는 ’마음‘의 흔적을 그린 것이다. 빈센트의 그림은 밖에 있는 풍경이 내 눈으로 (im) 들어와 찍히는 (press) 모습을 담은 인상주의(impressionism)를 벗어나, 내 안의 심정들이 밖으로 (ex) 나가 풍경과 사물들에 닿아 찍힌 (press) 색들을 담아 그리는 표현주의(expressionism)의 선구자가 되었다.   

책 서두에 나오는 고흐의 말이 있어요.
"난 나의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고흐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말 마음이 따듯해짐을 느낍니다. 집에 나만의 반 고흐 미술관을 소장하고 싶다면, 두 권의 갤러리 북을 찾아보세요. 내 삶이 힘든 순간, 치열하게 살다간 어느 화가의 삶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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