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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독서의 쾌감을 누리고 싶다면?

by 김민식pd 2019. 9. 27.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독>에서 정유정 작가의 <진이, 지니>를 소개했어요. 아래 대본도 공유합니다.

 

퇴사 하루 앞둔 사육사가 나무 위에서 깨어난 사연

영장류센터에서 침팬지 사육사로 일하던 진이가 마지막 근무하는 날 밤, 갑자기 119 구조대로부터 전화가 걸려옵니다. 별장에 불이 났는데 별장 속에 갇혀 있던 동물들이 도망 나왔고 그 중에는 침팬지도 한 마리 있다는 거죠. 소방대원들이 불을 끄는 동안 사육사 진이는 나무에 올라간 침팬지를 구조하는데요, 나무에 올라가서 보니 그건 보노보였어요. 정식으로 수입이 금지된 동물이라 소방대나 구조대에서는 맡으려 하지 않아요. 할 수 없이 보노보를 데리고 영장류 연구소로 급하게 돌아오다 늦은 밤 산 속에서 사고를 당합니다. 눈을 떠보니 나는 나무 위에 있어요. 내가 나무에 어떻게 올라온 거지? 마침 저 앞에 구급차가 와 있어요. 아, 사고 순간에 차창밖으로 튕겨나온 나를 찾고 있나보다. 하고 나무를 내려갔는데 구급차는 떠납니다. 마치 구조해야할 모든 사람을 다 차에 실은 듯. 어라? 나는 왜 안 데려가지? 열심히 구급차를 쫓아가는데, 내가 달리는 모습이 이상해요. 손과 발을 땅에 대고 네 발로 도로위를 달리고 있는 거죠. 어떻게 된 걸까요?  


정유정 작가의 신작, <진이, 지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독> 촬영을 위해 교보 문고에 갔을 때, 가장 먼저 고른 책입니다. 

저는 작가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요. 특히 <7년의 밤>처럼 재미난 소설을 쓴 작가의 경우, 신작이 나오면 찾아봅니다. 정유정 작가는 한국의 스티븐 킹입니다. 장르성이 강한 스릴러 소설을 쓰는데요, 이야기의 힘이 강합니다. 
사육사 진이는 교통사고로 보노보 지니와 한 몸이 됩니다. 사경을 헤매는 여주인공을 구해줄 남자 주인공이 등장해야할 시간이지요? 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이 남자, 사회로부터, 가족으로부터, 격리된 사람이에요. 노숙자처럼 사는데요. 그에게는 이런 사연이 있어요.

'내게도 가족이 있었다. 화곡동 귀퉁이에 위치한 방 세 개짜리 낡은 빌라에서 다섯 식구가 복작대며 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 민지, 남동생 은호, 장남인 나 김민주. 아버지는 나를 두고 '개처럼 놀고먹으며 부모 등골을 뽑는 자식'이라고 불렀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땐 간략하게 한 단어로 줄여 부르기도 했다. 개자식이라고.
상스럽기는 하나 억울한 호칭은 아니었다. 자라는 동안, 나는 내 의지로 뭘 해본 적이 없었다. '이리 와' 하면 이리 오고, '저리 가' 하면 저리 갔다. 초, 중학교는 교육청에서 지정해준 대로, 고등학교는 중학교 성적표가 정해준 곳으로, 대학은 수능 점수에 맞춰 행정구역상으로만 '인 서울'인 대학에 들어갔다. 
내 의지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었다. (...)
대학을 졸업한 후부터는 인생이 시험으로 도배됐다. 아버지가 원하던 언론사를 시작으로, 어머니가 바라던 대기업, 양친이 차선책으로 합의한 공기업...... 줄줄이 떨어진 다음 21세기 최고의 인기 직업이라는 공무원 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결과는 3년째 같았다. 아버지는 공부를 포기하라고 했다. 이유는 이랬다. 
"간장 종지에는 라면도 못 끓이는 법이다."

(36쪽)

인물 소개가 이렇게 흥미진진할 줄이야! 이건 딱 제 이야기거든요. 어려서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살았어요. 아버지의 의지대로 학과를 선택하니 성적이 안 나오더군요. 당연하죠. 내 의지가 없는데... 아버지는 의대에 못 간 저를 항상 의지박약이라고 구박하셨지요. 그 시절,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어요.

'인생에서 최악의 사건은 죽음이 아니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위의 책, 48쪽)

자살을 꿈꾸던 시절, 문득 생각해봤어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살다가, 불행하다고 죽으면, 아버지의 허수아비 하나가 죽은 거지, 김민식이 죽는 건 아니지 않을까? 아버지의 허수아비를 죽이면 되지, 굳이 나까지 죽을 필요가 있나?'
내 속에 있는 허수아비를 죽이는 건, 생각보다 간단하더군요. 그냥 아버지에게서 물리적으로 달아나는 거죠.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아버지와 멀어지니 제 의지대로 인생을 살 수 있었어요. 연애를 하고, 가정을 꾸렸어요.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침대에서 책을 읽고요. 딸들과 함께 보노보처럼 뒹굴며 놀아요. 역시 인생의 행복은 자기주도, 자발성에서 옵니다.
자, 살아야할 이유를 잃어버린 남자와, 간절하게 살고 싶은 여자 진이,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보노보 지니, 셋이 운명적으로 만납니다. 과연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진이, 지니>를 읽는 걸 보고 아내가 물었어요. 
"이 책은 무섭지 않아?"
제가 예전에 아내에게 <7년의 밤>을 추천해줬는데요. 그때는 읽다가 너무 무서워서 혼났다고 했거든요.   
정여울 작가님의 추천사를 보여줍니다. 

'이번에는 따스하고 다정하며 사랑이 넘치는 정유정이다. 놀라운 변화다. 뭉클하고, 그윽하고, 애잔해졌다. 그러나 정유정을 '작품'뿐 아니라 '인간'으로 알고 지낸 모든 사람들은 이런 정유정의 변신이 난데없는 일탈이 아니라 정유정의 '숨은 매력'임을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진이, 지니>, 정유정 작가님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고요. 이번 소설 역시 스토리텔러로서 작가의 공력이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다섯 권을 골랐는데, 가장 먼저 끝낸 건 역시 이 책이거든요. 뒤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가 없더라는.
날이 선선해지고 있지요. 책 한 권으로 재미난 이야기 속으로 푹 빠져보세요. 정유정의 <진이,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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