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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서촌 옥상화가처럼 살고 싶다

by 김민식pd 2019. 10. 11.

나이 쉰이 넘어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을 합니다. 젊어서는 그냥 주위 눈치 살피며 살았다면, 노후에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싶어요. 요즘 제가 마음이 끌리는 책은 퇴직 후, 좋은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림 속에 너를 숨겨 놓았다> (김미경 / 한겨레출판)

27년간 직장 생활을 하고 2014년 퇴직한 저자는 남은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기로 결심합니다. 옥상에서, 길거리에서,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며 산지 5년째에요. ‘딱 일 년만이라도 그리고 싶은 그림 실컷 그리며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전시회도 여러 차례하고 그림과 글을 모아 낸 책도 여러 권이에요. 

책의 첫 글 제목이 ‘인생이 5년 남았다면?’입니다. 남은 시간이 한 달이라면 무엇을 할까요? 저는 아마 블로그를 할 겁니다. 지난 10년 동안, 하루하루 설레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살았고, 그 기록을 블로그에 남겼지요. 블로그 덕에 삶이 즐거워졌어요. 한 달이 남았다면, 여전히 블로그를 할 겁니다.

  
서촌 옥상화가 김미경님은 한 달이 남았다면, 그림을 그리고 싶대요. 그는 농사짓는 농부의 마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뙤약볕 길거리에 앉아 펜을 놀리며 몇 시간씩 그린다고요. 저는 글농사꾼입니다. 매일 꼬박꼬박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노후에 돈이 있어야한다고 믿지만, 저는 일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에요. 하지만 일이 있어야 삶의 보람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김미경 화가는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대요. 그렇다면 노후에 취미로 시작하는 화가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책의 곳곳에는 그림을 향한 작가의 발자욱이 남겨져 있어요. 

‘28년 전 회사 그림 동아리에서 그림 연습할 때였다. 일주일에 딱 하루, 점심시간마다 회사 근처 중국집에 모여 서로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렸다.’
(36쪽)


‘6년 전 <서울 드로잉> 수업에 스케치북을 들고 따라 나섰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선으로 뭘 그려낼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했던 그림 수업은 토요일마다 서울의 여러 동네를 찾아가 수채 물감으로 동네 풍경을 그렸다.’ 
(39쪽)

‘맨날 가느다란 펜으로 후벼 파듯 그리다 오른손과 팔에 탈이 났다. 벌써 세 번째다. 한참 늦은 오십이 넘어 시작한 그림이니 무조건 열심히 그리자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는 하루 10시간 이상씩 그렸다. ‘회사에서 매일 10시간 넘게 일했는데 좋아하는 그림 하루 종일 그리는 게 대수야?’ 하는 맘이었다. 일 년쯤 지났을까? 아침에 일어났는데 너무 아파 오른손으로 펜을 들 수 없었다. 그때 떠올린 게 ‘왼손으로 그리기’였다.’
(47쪽)

회사 동아리에서 일주일에 한 번 그리다, 일반인 대상 그림 수업을 주말마다 듣고, 그러다 회사를 그만 둔 후, 하루 10시간씩 그리다 팔에 탈이나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기까지 합니다. 아, 그래요, 이 정도는 해야 하는군요. 역시 미쳐야 미치는 법입니다.
책을 읽다 반가운 이름을 만났어요. 


‘주말이면 촛불 들고 시위대를 따라다니며 춤으로 세상의 해방을 꿈꾸는 ‘도시의 노마드’ 친구들과 함께 춤을 췄고, 주중에는 매일매일 옥상에 앉아 동네 풍경을 그렸다.’
(134쪽)

‘도시의 노마드’는 참여연대 느티나무 아카데미에서 하는 춤 워크숍인데요. 산 속 계곡에서도 춤을 추고, 거리 시위현장에서도 추고, 도시 곳곳을 춤판으로 바꾸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저도 예전에 워크숍을 들었는데요. 언젠가 퇴직하면 ‘도시의 노마드’와 함께 춤을 추며 살고 싶어요. <경찰차벽과 함께 춤을>이라는 그림을 보니, 그림 속에 낯익은 분들의 모습이 보이네요.

김미경 화가의 전시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옵니다. 그들은 김미경 화가를 부러움의 눈으로 보지요. 늦은 나이에 그림을 취미로 시작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했더니 밥벌이가 되고 직업이 되는 경지, 모두의 로망이잖아요? 많은 분들이 부러워하며 묻습니다.

“그림 그리고 싶어요. 잘 그리고 싶어요.” “선 긋는 것부터 시작해야지요?” “지금 나이에 시작한다고 될까요?” “그림 그리는 건 타고나야겠죠?” “저는 소질이 없어서 말이에요.” “소질이 있는 사람은 참 좋겠어요! 부러워 죽겠어요!”
그럴 때마다 말한다. “그림 좋아하는 마음, 그림 그리는 사람이 부러운 마음, 그림 그리고 싶은 마음이 바로 소질인 것 같아요. 30여 년 전 어른이 되어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저 정말 너무 못 그렸어요. 못 그린 게 아니라 제가 그려낸 그림들이 창피했어요. 그래도 그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서 자꾸자꾸 그렸어요. 소질은 혼자 자라진 않는 것 같아요. 그리는 게 소질이라는 나무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꾸 물주고 다듬어주다 보면 어느새 무럭무럭 자란 나무를 만날 거예요.”

(204쪽)

영어도 마찬가지에요. 영어 잘 하는 사람이 부러운 마음, 영어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바로 소질이에요. 30년 전 처음 영어를 시작했을 때, 영어 정말 못 했어요. 그래도 잘 하고 싶은 마음에 자꾸자꾸 했더니 늘었어요. 위 글에서 그림이라는 단어에 무엇을 대입해도 좋아요. 그 하나의 단어를 찾는 것이 퇴직 후 행복한 삶으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나이 50에 다시 즐거운 고민이 시작됩니다. 지금은 못 하지만, 언젠가 잘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그 일에 행복이 숨어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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