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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다 행복하자고 하는 일

by 김민식pd 2019. 9. 9.

몇 년 전, 회사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친구들을 만나 맛난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게 낙이었어요. 그때 우리가 나눈 주제 중 하나가 행복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때 친구 중 하나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행복에 대해 책을 쓴 모든 심리학자를 만나 행복의 비결을 물어보면 어떨까?' 그 이야기를 듣고 반가웠어요. 오랜 세월 품어온 나의 고민을 대신 해결해줄 것 같았거든요. 기자 출신 김아리 작가는 심리학의 대가들을 만나 행복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인터뷰집을 냈어요. 그 결과물이 <올 어바웃 해피니스> (김아리/김영사)입니다. 공력이 심오한 고수의 무림비급은 한눈에 쏙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말로 표현된, 인터뷰의 언어들은 쉽게 술술 읽히지요. 

'Q: 인간의 삶은 고통과 시련의 연속인데, 고통과 시련 속에서 어떻게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을까요?
A: 인간의 삶이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 아니라, 고통과 시련도 있지만 행복과 즐거웠던 시간도 많습니다. 인생은 항상 고통과 시련과 행복과 즐거움이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죠. 인간의 뇌에서 기억센터가 감정센터 바로 옆에 있어요. 그래서 행복한 기억들은 금방 잊고 강력한 감정을 가진 고통과 시련에 대한 기억이 더 많이 떠올라요. 우리가 남편과 좋았던 기억은 다 잊어버리고 항상 연애 때부터 서운하게 한 것만 기억나는 건 그래서죠(웃음).'

(위의 책, 16쪽)

삶에서 항상 고통만 오는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소소한 즐거움도 꽤 있어요. 타인이 내게 준 고통에 집착하는 건, 결국 나를 괴롭히는 일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 성취감을 즐기며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김태형 심리학자를 만난 김아리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Q: 선생님의 저서 <트라우마 한국사회>에서 한국인들을 4가지 세대로 나누었는데요. 50년대에 출생한 좌절세대, 60년대 출생한 민주화세대, 70년대에 출생한 세계화세대, 80년대에 출생한 공포세대로. 그중에서 그나마 가장 행복했던 세대는 누구고, 가장 불행한 세대는 누구인가요?

A: 민주화세대와 세계화세대가 그나마 행복했습니다. 유년기에 놀았기 때문이죠. 유년기에 놀았다는 건 학대를 당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학대라는 건 부모의 통제와 공부하라는 정서적 압력을 말합니다. 좌절세대는 전쟁 직후라서 부모들의 정신상태가 좋지 않아서 놀지 못했죠. 60년대부터 4·19혁명으로 독재자를 끌어내리는 경험을 하고 경제성장이 시작되면서 부모들이 여유가 생겨서 자녀들을 놀게 했어요. 70년대까지 이어져서 더 많이 놀게 해줬죠. 그런데 80년대에 부모들은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서 자녀들에게 공부하라는 협박을 시작했습니다. 민주화, 세계화 세대만이 유일하게 어렸을 적에 자유를 좀 누렸던 세대입니다. 그래서 에너지가 있어요. 게다가 민주화세대는 젊었을 때 자기 손으로 정권을 끌어내렸잖아요. 세상을 바꾸는 경험과 6월 항쟁이라는 승리의 체험까지 더해져 잠재력이 풍부합니다. 그래서 장년기에도 심리적으로 가장 안정된 세대일 수 있습니다.

(40쪽)  

공포 세대는 어릴 때부터 '돈 없으면 거지 된다'는 압박에 시달리며 공부에 내몰린 세대랍니다. 어린 시절의 행복이 중요한데요. 아이들을 공포로 내몰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공포를 조장하는 건 어른도 마찬가지지요. 제가 노조 집행부로 일하는 걸 보고 걱정하는 이도 있었어요. '그러다 회사에서 잘리면 어떻게 할래?'하고요. 그런 불안에 위축되어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사는 게 더 불행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태형 선생님은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일제시대에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독립운동가이고, 독재시대에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밝은 미래를 향해서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위의 책 47쪽)

삶이 힘들 땐, 뭐라도 해야해요. 저는 괴로움이 닥쳐오면 새로운 외국어를 공부하고, 둘레길을 걷고, 책을 읽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공포와 불안이 엄습하지만 뭐라도 하고 있으면 성취감이 들어요. 다만 그럴 때, 괴로운 일을 억지로 하면 너무 힘들고요. 가급적 즐거운 공부를 찾아봅니다. 

이 책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 행복은 관계에서 얻을 수 있어요.

2장, 가족과의 관계가 힘든가요.

3장, 나 자신과의 관계를 들여다보세요.'

목차만 연결해도 책의 핵심 내용이 나옵니다. 책의 3줄 요약입니다.

행복은 관계에서 얻을 수 있어요. 가족과의 관계가 힘든가요? 나 자신과의 관계를 들여다보세요.

행복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과 잘 지내는 일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봅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가? 그 일을 찾아 꾸준히 반복합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입니다. 큰 불행이 왔을 때, 같은 크기의 행복으로만 상쇄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자극이 센 뭔가를 추구하게 되고, 알코올이나 도박, 마약 같은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강도보다는 빈도가 높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이 책의 저자는 모두가 궁금해 하는 질문을 독자를 대신해 묻습니다. 행복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반드시 행복해진다는 보장은 없어요. 하지만 저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즐거웠어요. 행복이란 어려운 게 아닙니다. 좋은 질문과 현명한 답으로 가득 찬 책 한 권을 읽는 게 바로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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