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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칭찬보다 험담이 솔깃한 이유

by 김민식pd 2019. 9. 4.
아내와 결혼한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외대 통역대학원 신입생 환영회에서 아내를 만난 지 벌써 23년이 되었구요. 학교 다닐 때부터 짝사랑한 아내와 결혼을 앞둔 무렵, 의외의 복병을 만났어요. 아내가 친구들을 만나 결혼 소식을 알리는 자리에서 누가 제 직업을 묻기에 예능 피디라고 했더니, "어머, 방송사 피디들은 바람을 많이 피운다던데..."라고 한 거죠. 순간 일동 분위기가 싸해졌는데, 아내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네가 그 선배 얼굴을 못 봐서 그래. 절대 바람 피울 외모는 아니야." 
ㅋㅋㅋㅋㅋ 아, 웃는데 왜 눈물이... ㅠㅠ

피디는 이혼을 많이 하네 어쩌네, 연예인은 이러네 저러네... 특정 직업에 대한 부정적 정보가 더 솔깃합니다. 왜 그럴까요? <진화한 마음> (전중환 / 휴머니스트)은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설계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요. 예전에 전중환 교수님의 <오래된 연장통>을 재미나게 읽은 적이 있어 이번책도 찾아읽었어요. 그 책이 '진화심리학'의 입문서라면, 이번 책은 본격 개론서에 해당합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새로운 도구입니다. 책에 이런 대목이 나와요.

'누군가에게 벌어진 사적인 일을 남에게 입소문을 통해 알릴 때도, 특히 나의 번식 성공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우선적으로 전파하리라 기대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자 프랜시스 맥앤드루는 잠재적인 경쟁상대나 사회적 지위가 매우 높은 인물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는 긍정적인 정보보다 더 잘 전파됨을 발견하였다. "나의 연적 갑돌이가 알고 보니 숨겨놓은 자식이 있다더라."라는 등의 부정적인 정보를 퍼뜨리면 경쟁상대의 평판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 나에게 유리하다. 반면에 "갑돌이가 그동안 수십억을 남몰래 기부했다더라." 등의 긍정적인 정보는 굳이 내가 나서서 퍼뜨릴 이유가 없다.'

(위의 책, 301쪽) 
  
몇 달 전, <법률가들>을 쓴 김두식 교수님의 도서관 강연에 갔어요. 그날 강연 제목이 <한국 엘리트의 빛과 그림자>였어요. 질의응답시간에 교수님께 여쭤봤죠. 
"지난 몇년 간, 눈에 띄는 큰 변화는 한국의 전문가 집단에 대한 신뢰도 하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사 기자들은 이제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고, 판검사들은 사법농단의 주역이 되어버렸어요. 사회라는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있어 중요한 축은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사법농단에 연루된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판사들은 정의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일을 합니다. 매일 판결을 위해 수백장의 기소문을 읽고, 수많은 사건을 심리하지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판사가 정의롭고 올바른 판결을 했다는 소식은 언론에 실리지 않습니다. 일부 소수의 판사가 잘못된 일에 연루되었을 때, 미디어를 타지요. 판사들의 99퍼센트는 선하고 공직에 충실한 사람들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소득층이 부의 재분배를 외치는 진보정당보다 부유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이유가 늘 궁금했는데요. 책에는 이런 대목도 나옵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후보에게 투표한다는 가정은 오늘날 구닥다리로 치부된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사람들이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는 않는다. (...)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는 대상에게 투표한다."라고 말했다. 레이코프가 보기에, 우리나라의 저소득층은 자신을 부유층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부유층의 구미에 맞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셈이다.'
  
(318쪽)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더니, 정말 그렇군요. <오래된 연장통>으로 한국 사회에 진화심리학을 소개한 후, 신문에 칼럼도 쓰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이 책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진화한 마음>은 진화심리학의 이론적 토대와 최신 연구 동향을 담은 대중서다. 나는 진화심리학을 들어보긴 했지만 정확히 뭘하는 학문인지 궁금하신 분, 진화심리학은 과학의 탈을 쓴 유전자 결정론 혹은 성차별주의라고 굳게 믿으시는 분, 진화심릭학을 좋아하는데 막상 책을 사 보면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서 실망하셨던 분들을 마음에 두고 이 책을 썼다.'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는 건 정말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아직도 저는 궁금해요. 아내는 어쩌다 나를 골랐을까? 동정심? 자비심? 측은지심? 사람의 마음은 정말 알 수가 없다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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