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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딴따라 글쓰기 교실

존댓말로 글을 쓰는 이유

by 김민식pd 2020. 2. 13.

오랜 만에 질의응답 시간입니다. 방명록에 올라온 질문입니다.

'안녕하세요 :) 
유투브로 PD님 만나 블로그까지 넘어왔더니
보물창고가 따로 없네요 ! :D 감사합니다.

매일 글을 쓰고계시는데 읽으면서 궁금한 점이 생겼어요 !
피디님은 글을 다 존댓말로 쓰시는데, 
많은 독자들을 염두하셔서 그러신거겠죠?
그렇지만 상대방을 의식해서 글을 쓴다면
나의 생각이 덜 솔직하게 나타나지지는 않을까요?

저는 블로그 글이 약간 하루의 일기같아서
반성도 있고, 원망도 있고, 자랑도 있고.. 그런 편인데
그런 제 이야기를 공개적인 어투로 쓰기는 어딘가 모르게
민망스럽더라고요. 누가 읽게 된다는 것에 부끄럽고.

피디님 블로그 글들은 일기장같으면서도 존댓말이면서도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서 쓰시는 것 같아서 신기합니다-
앞으로도 솔직하고 유쾌한 글 쭉 부탁드립니다 :] '

고맙습니다. 보물창고를 찾은 것 같다고 하시니, 10년간 열심히 가꿔온 보람을 느낍니다. 처음부터 존댓말로 글을 쓴 건 아닙니다. 처음엔 저도 그냥 내키는 대로 막 썼어요. 2011년에 쓴 글은 이렇습니다.

'삶은, 소중하다. 당근이다. 그러나 너무 아끼지는 말라. 인생 너무 아끼다 외려 낭비하는 수가 있다.

시간을 함부로 쓰는 게 낭비인가? 아니, 오히려 전혀 쓰지 않는 게 낭비다. 무엇이든 막 해보면서 살아야 하는데 아무런 시도 없이 사는 게 죄악이다.

'무엇이 될까?' 그런 고민하지 말라. 그냥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가만 생각해라.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그냥 해라.

인생 별거 없다. 그냥 순간 순간 열심히 사는 게 최선이다.' 

2011/08/26 - [공짜로 즐기는 세상] - 인생, 아끼면 찌된다.

 

인생, 아끼면 찌된다.

삶은, 소중하다. 당근이다. 그러나 너무 아끼지는 말라. 인생 너무 아끼다 외려 낭비하는 수가 있다. 시간을 함부로 쓰는 게 낭비인가? 아니, 오히려 전혀 쓰지 않는 게 낭비다. 무엇이든 막 해보면서 살아야 하는..

free2world.tistory.com

 

이 글, <인생, 아끼면 찌된다>에 '좋아요'를 누른 건, 2020년 현재까지 딱 1명입니다. ^^ 그 시절에는 방문자수가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람들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막 했습니다. 질문하신 분은 이미 블로그의 핵심을 꿰뚫고 있어요. 원망 같고, 반성 같고, 자랑 같은 게 맞습니다. 저도 그래요. 다만 이걸 10년 가까이 하다보니, 이제 나름의 욕심이 생겼어요. 이 속에서 저는 성장하고 싶습니다. 2011년의 글을 보며, 이젠 조금 부끄러워요. '아이구, 글을 왜 이렇게 썼대?' 그래도 지우지는 않습니다. 2011년의 김민식도 긍정하고 싶어요. 

2012년에 낸 첫 책 <공짜로 즐기는 세상>은 잘 팔리지 않았어요. 다음 책을 고민할 때, 편집자님에게 여쭤봤어요. '제 글에서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요?' 글의 톤이 너무 단정적이어서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쭤보니 "피디님이 질의응답 시간에 쓰시는 글은 편안하게 잘 읽혀요. 아마 존댓말로 쓰셔서 그런가 봐요. 앞으로는 책의 원고를 존댓말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블로그에 질문을 올려주시는 분이 "어떻게 하면 될까요?"하고 물었는데, 답변에, "뭐뭐 하면 된다."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싸가지가 없으니까. ^^ 그럴 땐 저도 같이 높이는 거지요. "뭐뭐 하시면 어떨까요?"하고요. 편집자가 그런 경어체가 좋다고 하셔서 바꿨어요. 신문에 칼럼을 쓸 때, 다른 기사와 톤을 맞추려고 '했다'체로 쓰는데요. 이제는 이게 오히려 어색해요. ^^ 

'독자를 너무 의식하면 글이 나오지 않는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처음 글을 쓸 때는, 그냥 쓰고 싶은 걸 마음껏 쓰는 게 중요합니다. 블로그라는 매체가 참 좋은게요. 처음에 막 쓸 때는 사람이 별로 안 와요. 그러다 어느 순간, 글이 자리가 잡히면 그제야 방문자수가 늘지요. (뭐, 지금도 제 글이 그리 좋은 건 아니지만... ^^ 꾸준히 써서 10년 후의 제가 '어이구 2020년에는 이런 글을 썼네.'하고 부끄러워 하는 게 꿈입니다.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일 테니까요.) 중요한 건 글이 느는 것보다, 쓰는 내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고요. 그건 오로지 시간이 해결해주는 과정 같아요. 자신감은 꾸준한 반복을 통해 생기거든요.

페이스북에도 비슷한 질문이 올라왔어요.

'제가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작가님처럼 존댓말을 사용해야할지 반말을 사용해야할지 혼란이 올 때가 있거든요. PD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처음 글을 쓸 때는 평서문이 쉽습니다. "했다. 였다. 있다." 등 간단하게 끝이 나니까요. 경어체의 경우 "했습니다. 였으니까요. 이지 않을까요?" 등 글의 맺음이 다양해집니다. 어렵죠. 평서문으로 시작하는 편이 글쓰기가 수월합니다. 10년 동안 저는 제게 편한 글투를 찾아왔어요. 자신에게 맞는 문체를 찾는 것도 공부입니다.

글쓰기가 더욱 즐거워지기를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

10년간 매일 아침 글을 썼더니, 이제 글쓰기가 편안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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