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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장강명 작가의 신작, <산 자들>

by 김민식pd 2019. 7. 8.

저는 장강명 작가님의 오랜 팬입니다. 작가님이 6월 25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어요. 

책 두 권을 동시에 냈습니다. ^^
민음사에서 나온 《산 자들》은 ‘2010년대 한국의 먹고사는 문제’를 주제로 한 연작소설집입니다. 해고, 구조조정, 파업, 자영업, 재건축, 면접, 취업준비, 혁신, 디지털경제, 내부고발 등등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 10편을 실었습니다. 취재를 바탕으로, 최대한 현실적으로 썼습니다.

아작에서 나온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에는 SF 중단편 10편을 실었습니다. 기술이 사람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다뤄봤어요. 저는 〈알래스카의 아이히만〉과 〈데이터 시대의 사랑〉이 마음에 드네요. 특히 〈데이터 시대의 사랑〉은 아내가 재미있다고 칭찬해줬습니다.

두 책 모두 소설이 10편씩 실려 있고, 380여 쪽으로 분량도 비슷하네요. 이란성 쌍둥이를 낳은 기분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반가운 소식에 두 권을 주문하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댓글에 작가님이 '좋아요'를 눌러주셨어요. 이 맛에 저는 작가 덕질을 합니다. 작가와 직접 소통하는 맛. 내가 조선시대에 살면서 문인을 좋아했다면 그를 직접 만나거나 서로 기별하기 참 어려웠을 겁니다. 너무 오래전 사람이거나(공자, 주자), 너무 먼 곳에 사는 사람이겠지요. (소동파, 이태백) 요즘은 소셜미디어 덕분에 작가와 직접 소통하고 저자 강연을 찾아가면 만날 수도 있어요. 작가 덕질하기 이렇게 편한 시절도 없어요. 

덕질을 할 때 보람은 내가 좋아하는 창작자가 부지런하게 새 작품을 낼 때 옵니다. 부지런한 장강명 작가님, 이번에는 2권의 책을 동시에 내셨군요. 오늘은 먼저 <산 자들> (장강명 / 민음사) 이야기부터 할게요.

이 책은 우리 시대, 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먹고 사는 일이 누구나 쉽지 않지요. 열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요. 3개의 파트로 나뉘어있어요. 1부, '자르기', 2부, '싸우기' 3부 '버티기'  

1부 첫 번째 수록작은 <알바생 자르기>인데요. 비정규직 직원을 자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느 정직원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주인공의 입장에 이입하게 되고요. 소설 막바지에 서늘해집니다.

 
두 번째 수록작은 <대기발령>입니다. 제목부터 팍 와 닿습니다. 제가 MBC 징계 그랜드슬램 달성자거든요. 대기발령, 교육발령, 정직 6개월. 어느날 대기발령이 났다기에 저게 뭐야? 했지요. 책에는 구조조정을 앞두고 특정 부서의 사람들을 대기발령한 장면이 나옵니다.   

‘지연은 아는 노무사에게 전화를 걸어 대기발령 상황에 대해 물었다고 했다.
“대기발령은 회사의 정식 인사 조치에 해당한대요. 직원이 동의하지 않아도 할 수 있고, 벽만 보고 앉아 있게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대요.”
“자기들도 다 알아보고 법적으로 문제 없을 조치를 했겠죠.”
“대신에 직원이 버티면 회사도 자를 수는 없대. 그러면 부당 해고가 된대.”
“그러면 버티면 되는 건가?”
“그거 쉽지 않대. 노무사가 하는 말이, 대기발령 한 달은 고사하고 일주일을 버티는 사람도 별로 없대.”

(57쪽)
  
제 전임 노조부위원장이 있는데요. 그도 똑같이 대기발령이며 정직이며 부당전보에 시달렸어요. 예능 피디인 그 선배는 제작부서에서 쫓겨나자 결국 사표를 쓰고 나갔어요. 피디는 나가서도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고민에 빠졌어요. 내 발로 나가기는 싫었거든요. 그렇다고 바로 싸우지도 않았어요. 저들에게 해고나 징계의 빌미를 주기도 싫어요. 그래서 그냥 즐겁게 지냈어요. 출근길에 책을 읽고 새벽에 일어나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언젠가 작가가 되는 꿈을 키웠지요. 역시 잘 사는 게 그냥 복수입니다. ^^


2부 '싸우기'의 첫 편인 <현수동 빵집 삼국지>에는 빵집을 운영하는 세 가족이 나옵니다.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는 모녀가 있어요. 근처 대형 마트 입구에도 자체 빵집이 있는데, 마트가 쉬는 날이면 매출이 30만 원씩 올랐대요. 마트가 리뉴얼하면서 빵집을 없애자 딸이 어머니에게 그러지요. “이제 우리 월 900씩 더 들어오겠네.”
매상이 느는 대신 경쟁이 늘어납니다. 제빵 경력 40년차 70대 노인이 옆에 골목 빵집을 냅니다.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남자와 아내가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빵집을 열고요. 그집 딸은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 갑자기 빵집에 나와 가게 일을 돕게 되지요. 자영업자의 현실을 거의 봉준호 감독 디테일 따라잡을 기세로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저는 영화 <기생충>을 보고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저 집 아이들만 살 궁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이들이 얻은 일자리가 참 좋았잖아요. 굳이 아빠 엄마까지 그 집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했요. 그런데 <산 자들>을 읽으며 깨달았어요. 그 또한 배부른 소리라는 걸. 죽기 살기로 아등바등 살 때는요. 기회가 오면 뭐라도 해야 하더라고요. 3개의 빵집이 하나의 상권을 놓고 싸우는 데, 셋 중 1등이 되면 된다는 각오로 밤늦게까지 영업을 합니다. 다른 빵집이 망할 때까지 버틴다는 각오로요. 출혈 경쟁을 하고, 문도 새벽같이 열고, 밤 늦게까지 가게를 지킵니다. 가족들이 잠도 못 자고 고생이 막심한데요. 어느날 깨달아요. 셋이서만 하는 경쟁이 아니라는 걸. 아침에 근처 전철역 앞에 다마스 타고 와서 1000원짜리 샌드위치 파는 부부도 생기고요. 바퀴 달린 장바구니에 김밥 담아 와서 파는 아주머니도 있고요. 생과일 주스 전문점에서 베이글을 팔고요. 편의점에서도 메론빵이랑 타르트를 팔아요. 빵집의 딸이 다른 집 딸을 찾아가 말합니다. 서로 합의해서 월수금 화목토 나눠서 저녁에 일찍 문을 닫고 쉴 시간을 확보하자고요.

“제가 보니까 답이 없더라고요, 이건. 손바닥만 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 노리고 이 골목에 너도 나도 들어와서 건물주들이랑 간판업자들 배만 불려 주다가 열에 아홉은 만신창이가 돼서 나가는 거예요. 밤에 몇 시까지 문을 열어 놓는다고 크게 달라질 게 없어요.”
“그 열에 아홉이 아니라 남은 하나가 되어 보겠다고 이렇게 애를 쓰는 거 아닌가요.”
“그게 정말 우리 손에 달린 일 맞아요? 전 잘 모르겠어요. 이건 저희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의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저희 집이나 이 집이나 장사 잘되면 어떻게 될 거 같으세요? 그러면 여기 장사 잘되는 곳이구나, 하고 옆에 빵집 또 생겨요. 틀림없어요. 저는 가게 망할지 안 망할지는 그냥 다 운인 거 같고요, 가게 문을 몇 시에 닫느냐, 그래서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느냐, 이건 저희가 정할 수 있는 문제 같아요.”

(149쪽)

드라마 피디로 일하면서 제가 가장 고민하는 대목이에요. 밤샘 촬영이 많고, 과로사가 빈번한 현장이에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기 위해, 내 앞에 있는 스태프들에게 과다 노동을 주문해야 할까, 이 문제가 참 어렵습니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산업의 논리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지점은 무엇일지 고민합니다. 
 
우리 시대,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서로의 노동을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장강명 작가는 ‘공감 없는 이해는 자주 잔인해지고, 이해가 결여된 공감은 종종 공허해진다'고 해요. 깊이 와닿는 말씀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서로의 삶에 공감과 이해를 더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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