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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독자들이여, 다시 책으로

by 김민식pd 2019. 6. 21.

책을 읽으면서 가끔 이런 고민이 듭니다. '스마트폰만 열어도 재미난 게 이렇게 많은 시대에, 왜 나는 아직도 도서관 구석에 틀어박혀 사는 걸까. 혹 나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그러다 <다시, 책으로> (매리언 울프 / 전병근 / 어크로스)를 읽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래, 책을 읽어야 해!'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인지과학자인 메리언 울프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디지털 장치가 읽는 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봅니다. 

제가 요즘 고민하는 화두 중 하나는, '혐오'입니다. 우리 시대, 불특정 다수를 향한 혐오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진 결과, 엉뚱한 곳으로 분노가 향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어쩌면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부작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감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대다수가 몰랐던 불안한 현실입니다. 저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MIT의 셰리 터클 교수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새라 콘래스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널리 알렸습니다. 그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젊은이들의 공감 능력은 40퍼센트 감소했다고 합니다. 특히 지난 10년 사이에 말입니다. 터클 교수는 젊은이들이 온라인 세상을 항해하느라 현실 속의 대면 관계를 희생시킨 것이 공감 능력을 급감시켰다고 해석합니다. 기술이 사람들 간에 거리를 만든다는 거지요. 그 결과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개인적 정체성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생각까지 바뀌고 있습니다.'

(위의 책, 88쪽)


온라인 뉴스의 댓글을 보다 놀랄 때가 많아요. 기사의 내용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분노에 차 혐오를 쏟아내는 댓글도 있어요. 온라인 뉴스의 경우, 제목으로 클릭 낚시를 하는 기사도 많은데요. 자극적인 제목만 보고 '딱 걸렸어!' 하고, 댓글로 혐오를 쏟아냅니다. 기사의 결론은 훈훈한 미담인 경우도 있는데 말이지요. 그럴 때, 억울하게 욕을 먹는 사람은 어디가서 하소연해야 하나요? 사람들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건, 소수에게 국한된 문제일까요? 일시적인 현상일까요? 책을 보니, 이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 같아요.

저자가 <책 읽는 뇌>를 낸 후, 전국의 문학과 교수들에게 편지를 받는데요. 

'그들은 대학생들이 오래되고 밀도가 높은 미국 문학과 문장을 읽을 만큼의 인내심이 없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지요. (...) 그 교수들이 관찰한 가장 흔한 현상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밀도 높은 텍스트의 어려운 문장 구조를 이해하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도 학생들은 점점 그런 시간과 노력을 참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째, 학생들의 글쓰기 실력이 저하되고 있습니다.'

(위의 책, 145쪽)

스마트폰으로 활자를 접하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활자를 끈기있게 읽어내지 못하고 있어요. 종이책에 몰입하려면, 시간과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독서의 즐거움은 몰입에서 나오고, 몰입은 시간과 끈기라는 재료 위에 만들어집니다. 스마트폰으로 휙휙 화면을 내리며 읽는 것에 익숙해지면 인지적 끈기가 부족해집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글을 끝까지 참고 읽지 않아요. 요즘처럼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는, 깊이 읽고 잘 읽는 능력이 필요하고요. 그런 능력은 종이책 읽는 습관을 통해 기를 수 있습니다.   

책에 나오는 오바마가 한 말이 인상적이에요.

"이제 정보는 힘을 주는 도구도 해방의 도구도 아닌 주의분산과 기분전환, 일종의 오락이 되었다."

(121쪽)

저는 스마트폰의 발달이 단순히 책을 읽는 시간을 줄인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인터넷 상의 혐오를 부르는 원인일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어요.


'제가 늘 기억해온 아주 단순하고 아름다운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인생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 안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있단다. 늑대들은 그 사람의 젖을 먹고살면서 늘 전쟁을 벌이지. 첫 번째 늑대는 아주 호전적이고 폭력적인 데다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하단다. 두 번째 늑대는 평화를 좋아하고, 빛과 사랑으로 가득하지." 어린 소년은 걱정스레 묻습니다. 어느 늑대가 이기느냐고. 할아버지는 이렇게 답합니다. "네가 젖을 주는 늑대란다."  

(위의 책, 159쪽)


온라인 뉴스만 접하며 살면, 세상에는 흉흉한 소식이 너무나 많아요. 온라인 뉴스만 보지말고, 성찰과 성장을 이끌어내는 책도 함께 읽었으면 좋겠어요.

책에는 과학소설 작가인 에일리 건이 남긴 '아주 짧은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컴퓨터, 우리가 배터리를 가져왔던가?

컴퓨터.......'


Computer, did we bring batteries? Computer?


—Eileen Gunn


배터리가 나가서 대답 없는 컴퓨터에게 열심히 물어보는 게 너무 안타깝지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비슷한 안타까움을 느꼈어요. 이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정작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는 전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안타까움이요.

<다시, 책으로>

책을 안 읽는 사람에게는 책을 읽어야할 이유를,

책을 조금 읽는 사람에게는 더 많이 읽어야할 동기를,

책을 많이 읽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보람을 안겨줄 책입니다.


마침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렸습니다. 

주말에는 도서전 나들이를 통해 다시 종이책을 만나러 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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