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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내가 독서법을 읽는 날이 오다니

by 김민식pd 2019. 7. 1.

가끔 저는 이런 고민을 합니다. 

'나는 책을 너무 많이 읽는 게 아닐까?' 

저는 욕심이 많아요. 하고 싶은 게 참 많습니다. 영화도 보고 싶고, 여행도 다니고 싶고, 사람도 만나고 싶고, 강연도 듣고 싶고, 가끔은 춤도 추고 싶어요. 그런데 시간이 없어 못해요. 넷플릭스에는 보고 싶은 영화가 쌓여있고, 서울만해도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고 (새로 생긴 서울식물원도 가야하는뎅...), 케이팝 댄스 추는 동아리도 가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못하고 있어요. 책읽는 시간을 빼앗길까봐서요. 책을 좀 덜 읽어야하나? 고민중인데요. 그런 제가 책읽기를 권하는 '독서법' 책을 읽게 될 줄은 몰랐어요. 

<공부머리 독서법> (최승필 / 책구루)

얼마 전, 부산에 강연을 갔다가 을숙도 걷기 여행을 갔습니다. 을숙도 생태공원을 돌아보며 천천히 걸었어요. 걷기 여행 초반에는 항상 주위의 새 소리,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걷습니다. 그러다 조금 지루해지면 스마트폰에서 '오디언' 어플을 켜요. 오디오북 어플이고요. 한 달에 5600원을 내면 오디오북을 무한정 들을 수 있어요. 추천 오디오북에 <공부머리 독서법>이라고 떴어요. 얼마전 신문에 실린 상반기 베스트셀러 리스트에서 본 책이에요. 독서법 책을 굳이 사지는 않아도, 공짜로 오디오북에서 들을 수 있다면 한번 시도해봅니다. 저자분이 직접 읽어주셨어요. 독서 특강 듣는 기분으로 듣다가 문득 서서 이마를 쳤어요. '강호에 새로운 고수가 나타났구나!' 오디오북을 듣고 나니, 종이책으로 읽고싶어졌어요. 책이 정말 재미있고, 유익했거든요. 서울로 돌아와 바로 주문했어요.

이분 아이들 대상으로 독서 교육을 하는 분인데요. 

'햇병아리 강사 시절, 수업에 들어갔더니 평균 90점은 우등생 축에도 끼지 못할 만큼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수두록했습니다. 초등학생인데 중학교 수학 문제를 풀고, 높은 레벨의 영어 수업을 듣고, 한국사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꿰고, 과학 상식도 풍부했지요. 일주일 스케줄을 학원으로 빽빽하게 채웠지만, 아이들은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학원을 좋아했습니다. 원어민 선생님과 레슬링을 하고, 학원 강사와 수다를 떨고,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활기찬 생활을 했지요.

'조기 교육, 사교육의 위력이 정말 대단하구나. 이 아이들을 누가 이길 수 있겠어?'

저는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라는 대치동에 발을 들인 저의 강렬한 첫인상이자 소감이었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었고, 저 역시 한국사, 세계사 강의를 전담하면서 중등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중학교 첫 시험을 쳤습니다. 저는 또 한번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들의 성적이 약속이나 한 듯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

(과학 교과서를) 한 문장 한 문장 함께 읽으며 아이들에게 그 뜻을 캐묻고 나서야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영어로 대화를 하고, 선행학습으로 몇 학년이나 앞선 수학 문제를 푸는 이 똑똑한 아이들이 정작 자기 학년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은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수 없었던 겁니다.'

(위의 책 5~7쪽)


저 역시 주위에서 숱하게 본 케이스입니다. 사교육을 많이 받은 아이들이 정작 문해력이 없어 시험을 보면 성적이 낮습니다. 저자는 읽기능력과 성적의 상관관계를 따져보기로 마음먹고 아이들을 상대로 평가지를 만들고 자료를 모읍니다. 그리고 가설을 세우지요. 

'가설 1. 읽기 능력이 높을수록 공부를 잘한다.'

'가설 2. 독서는 읽기능력을 끌어올린다.'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읽기능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뭘까요? <왜 사교육보다 자기주도학습이 중요한가?>라는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 보고서를 보면, 사교육의 효과는 초등학생 때만 제한적으로 나타납니다. 사교육을 받으면 읽고 이해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강사의 설명을 듣고 문제를 풉니다. 스스로 먼저 생각해보는 게 아니라 시키는대로 공부를 합니다.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건 혼자서 읽고 이해하는 것에 비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고, 효과도 적습니다. 초등 저학년 때는 이렇게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아요. 학습해야할 교과 지식의 양이 적기 때문이죠. 훗날 상급학교에 진학하면, 모든 과목을 학원에서 배우는 방식으로는 따라갈 수가 없어요. 특히 수능은 수학능력, 즉 혼자서 공부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거든요. 

학습의 비효율성을 키우는 게 사교육의 첫번째 문제라면, 또다른 치명적 결함은 '읽고 이해하는 경험'을 극단적으로 줄인다는 것입니다. 학원 뺑뺑이를 도는 아이들의 특징은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에 몰입한다는 겁니다. 학원 공부하랴, 숙제하랴, 스트레스가 많은 아이가 잠깐 짬이 나면 그 시간에 책을 펼치지는 않아요. 게임을 하지요. 부모도 못 말립니다. 미안하거든요. 초등학생이 하루 종일 영어 학원, 수학 선행학습하느라 놀지도 못하고 사는 걸 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스마트폰이 주는 달콤한 휴식을 허용합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독서는 뒷전이 되고요.

저는 명색이 드라마 피디인데 집에서는 TV를 일절 보지 않습니다. 독서는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즐길 수 있는 활동입니다. 스마트폰 게임은 5분만 해도 캔디크러시를 3판 이상 깨고 성취감을 느끼지만, 독서는 그렇지 않아요. 적어도 20분 이상 집중해서 책을 읽어야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하고, 이야기의 흐름에 빠져들고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양질의 독서를 위해서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저는 저녁 약속을 안 잡고, TV를 끄고, 독서에 집중합니다. 


'학원에 밀리고, 숙제에 밀리고, 스마트폰에 밀려 독서는 늘 뒷전입니다. 이렇게 터무니없이 독서량이 부족한데 공부마저 '듣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읽기능력을 훈련할 기회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중학생이 됩니다. 수업을 들으면 뭔가 알 것 같은데 교과서를 펼치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상태에 빠지는 거죠. 이것이 바로 초등 우등생 70~80%가 중학생이 되면서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위의 책 39쪽)


<공부머리 독서법>의 저자는 아이들을 사교육로 내모는 대신 도서관에 가서 자유롭게 책을 읽게 하라고 권합니다. 백번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저는 예전에 아내와 협정을 맺고 방학 중에는 학원을 보내지 않기로 한 적이 있어요. 방학은 아이가 책과 친해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에요. 마침 당시 저는 주야간 교대 근무로 일을 했기에 낮시간에 아이를 돌볼 수 있었어요. 아내에게 양해를 얻어 학원을 그만두고 방학 동안 매일 도서관에 가서 아이와 함께 책을 읽었어요. 저는 그 기간 동안 1년에 250권의 책을 읽고 리뷰를 블로그에 올렸고요. 둘째 민서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어요. "아빠, 세상에서 디즈니랜드 다음으로 재미있는 곳이 도서관이야." 하고 말했을 때는 정말 감동이었지요.

곧 여름방학이 옵니다. 방학 중 아이가 다닐 집중 영어 학습 과정을 알아보고 계시다면 먼저 이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사교육보다 도서관입니다. 학원은 돈이 들고요. 도서관은 돈이 안 들어요. 학원은 아이를 괴롭게 하고요. 도서관은 아이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무엇보다!

사교육에 중독된 아이는 독서의 즐거움을 모르고 언어 능력이 오르지 않아요. 성적이 떨어지면 자신의 지문 이해가 부족한 탓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학원이 약하고, 선생이 잘못 가르친 탓이라 생각하죠. 더 좋은 강사, 더 비싼 학원을 구하는데서 답을 찾습니다. 이건 공부의 자세가 아니에요. 공부란 내 안에서 답을 찾는 것이지, 그 책임을 바깥에서 찾는 게 아니에요. 

<공부머리 독서법>을 읽고 깨달았어요. 아이에게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육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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