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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성공보다는 성장을 꿈꾸는 이유

by 김민식pd 2019. 6. 24.

MBC 입사하고 조연출 3년차 되던 해, 맡은 프로가 <뉴논스톱>입니다. 시청률이 잘 나와서, 조연출로 일하다 바로 연출로 입봉했어요. 그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을 받았지요. 오랜 시간 시트콤 마니아로 살아온 시간에 대해 보람을 느꼈어요. 다음에 기획한 시트콤은 '시간 여행' 시트콤이었어요. 조선 시대 양반과 종놈이 현대로 타임슬립하는 바람에 서로 신분이 바뀌는 이야기, <조선에서 왔소이다>. 제가 직접 만든 기획안을 들고 작가를 찾아다녔는데요. 만나는 작가들마다 고개를 흔들었어요. 

"감독님, 이야기가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작가를 구하지 못하면, 내가 직접 대본을 쓸 각오였는데요. 선배들이 말렸어요.

"민식아. 작가들이 아니라고 할 땐, 왜 아닌지 겸손하게 물어 봐."

당시엔 그런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자신감 백배였거든요. <조선에서 왔소이다>는 방송 시작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망했어요. 방송 4회만에 '저조한 시청률, 과다한 제작비, 광고 판매 부진'이라는 3대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후, 조기종영되었지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깨달았어요. <뉴논스톱>의 성공은 내 덕이 아니라 <남자 셋 여자 셋> 이후 평일 저녁 7시 시간대를 석권해온 MBC 청춘 시트콤이라는 시스템의 덕분에 가능했다는 걸. 한번도 시도한 적 없는 주간 시트콤, 타임 슬립 시트콤이라는 걸 해내기엔 제 역량이 너무 부족했다는 걸.    

나이 50이 넘은 저는, 이제 인생에서 성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성공은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좋은 목표는 성장입니다. 성장은 지속가능한 목표거든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공부를 통해 평생 성장하기를 꿈꿉니다. 그래서 읽은 책이 있어요.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존 헤네시 / 구세희 / 부키)

'어른은 어떻게 성공하는가?'가 아니에요. 성공 비결을 딱 집어내기 쉽지 않아요. 이 책을 쓴 저자, 존 헤네시는 우리 시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스탠퍼드대 교수로 일하다 2000년에 총장이 되어 16년간 역임합니다. 그가 스탠퍼드 총장으로 일하는 동안 스탠퍼드 인근 지역인 실리콘밸리가 미국 IT 기업 성장의 견인차가 되고요. 그는 실리콘밸리의 정신적 스승으로 존경을 받게 됩니다. 그 결과 지금 그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의 이사회 의장로 일하고 있어요. 

저자는, 자신의 목표가 조직원의 역량 강화라고 말합니다. 주주 이익 극대화도 아니고, 매출 극대화도 아니에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성장입니다. 즉, 좋은 리더란 타인의 성장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끌어내는 사람인 거죠. 

그가 말하는 리더십의 10가지 조건이 있어요. 

겸손, 진정성, 봉사, 공감, 용기, 협업, 혁신, 지적 호기심, 스토리텔링, 그리고 유산.

그는 겸손함을 리더의 첫번째 조건으로 꼽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그가 한없이 겸손한 사람인 걸 알 수 있어요. 교수로 살아오면서 터득한 지혜인가 봐요.

'학계의 일원이라는 사실 역시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이 학자 공동체에는, 아니 때로는 한 건물 안에도 어떤 주제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학생일 수도 있다)이 늘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겸손을 불러오는 시각이다. 한마디로 당신은 지금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당신이 주도하고 있는 프로젝트나 일의 성공은 팀 전체에 달려 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전문성과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팀원들이 알고 있는 것을 배우며, 겸손한 자세로 그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다.'

(위의 책 32쪽)


피디도 마찬가지에요. 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다 자신의 분야의 전문가에요. 작가, 촬영감독, 음악감독, 세트 디자이너. 제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의 전문성과 도움이 필요하죠. 드라마 감독이 되려는 사람이 가장 먼저 배워야할 품성은 겸손입니다.  

교수나 피디처럼 주위에 전문가들이 많은 환경을 만나야만 겸손을 배울 수 있을까요? 겸손을 배우는 가장 좋은 공간은 도서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가 사이를 걸을 때마다 저는 한없이 겸손해집니다. 헤네시가 협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건, 실리콘밸리에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타고난 팀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나를 헌신적인 협력자로 변하게 한 데는 과학과 기술의 공이 크다. 나는 과학과 기술의 연구 원칙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는 법을 배웠고, 시너지를 내는 다수의 생각이 대체로 한 사람의 생각보다 더 강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위의 책 139쪽)

이제 50대 어른은 다시 공부를 해야 합니다. 80년대 대학에서 배운 것은 더이상 의미가 없고요. 90년대 도서관에서 읽은 것도 적용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요즘같은 시대에는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책에서 배워야 하고, 같은 팀의 막내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겸손입니다. 

좋은 책을 만나면, 저는 블로그에 그 목차를 옮겨적어둡니다. 그리고 짬날 때마다 그 목차를 소리높여 낭송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공부라고 생각하니까요.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의 목차입니다.

1. Humility 고개를 숙일 때마다 성장한다

2. Authenticity 언제나 진정으로 대한다

3. Service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이해한다

4. Empathy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안다

5. Courage 조직을 위해 나설 때를 안다

6. Collaboration 혼자 일하지 않는다

7. Innovation 변화를 이용할 줄 안다

8. Curiosity 평생이 배움의 과정이다

9. Storytelling 비전을 스토리에 담아 전달한다

10. Legacy 마지막에 가장 소중한 것을 남긴다


새로운 일주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한 주도 하루하루 성장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패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어요. 

성공은 내게 자만심을 안겨주고, 실패는 내게 겸손을 가르쳐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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