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대 통역대학원 재학 시절, 미국식 회화 표현을 공부하려고 시트콤 '프렌즈'를 열심히 봤습니다. 한번 봐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표현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아예 비디오로 녹화를 해놓고 안 들리는 대목은 되감기하면서 봤습니다. AFKN에서 하는 방송을 녹화하려고 시작 시간이 되면, 바깥에 있다가도 집으로 달려가 비디오의 녹화 버튼을 눌렀어요. 90년대 비디오 플레이어에도 예약 녹화 기능은 있었지만, 내 손으로 직접 버튼을 눌러야 마음이 편했어요. 덕질을 할 때의 마음은 그렇습니다. 정성을 다하지요. 그렇게 모은 시트콤 비디오가 100개가 넘은 순간, 깨달았어요. '회화 청취는 그냥 핑게구나. 나는 시트콤을 좋아하는 사람이로구나. 하루 종일 시트콤만 보면서 살아도 좋겠다. 이렇게 재미난 놀이, 직업으로 삼을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통역사 대신 시트콤 피디의 삶을 꿈꾸게 되었어요.

비디오로 녹화를 해두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은 보고 또 봤어요. 그 중 하나가 U2의 노래, 'With or Without You'가 흐르는 장면입니다. 

 

세상 참 좋아졌어요. 유튜브에 검색하면 이렇게 클립이 다 뜨는군요. 100개가 넘는 비디오 카세트를 다 버린 건, MBC 입사한 후입니다. DVD 자료실에 다 있더라고요. 미국 출장 가서 개인 소장용으로 사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제는 넷플릭스에서 '프렌즈' 전 시즌을 다 볼 수 있고요. 검색만 잘 하면 유튜브에서 어떤 장면이든 찾아낼 수 있어요. 인터넷 기술의 발전 덕에 덕질이 더 쉬워졌어요. 

(그래도 뉴욕에 신혼여행 갔다가 산 이 DVD는 안 버리고 있어요.)

바람 피웠다가 걸린 로스가 레이첼에게 용서를 구하며 라디오에 신청한 노래가 U2의 With or Without You고요. 이 감미로운 노래 덕분에 둘이 화해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전개에 배를 잡고 웃었어요. 제게는 신선한 이야기 전개였어요. 어려서 본 '코스비 가족'이나 '케빈은 열두살' 같은 시트콤은 항상 따듯한 엔딩으로 마무리를 했는데, '프렌즈'나 '사인펠드'에서는 의외의 반전이 시청자의 뒷통수를 치더군요.

20대의 저는, 속이 배배 꼬여 있었어요. 연애나, 취업이나, 항상 뜻대로 되지 않았기에 마냥 해피한 엔딩보다는, 주인공의 좌절이 더 와 닿았어요. 그 시절에는 데이트 신청도, 입사 지원도, 다 퇴짜를 맞았어요. 같이 가자고 손을 내밀지만, 아무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아 괴롭고 힘들 때, 저는 이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With or Without You, 

With or Without You,

With or Without You.

속으로는 다짐을 합니다. '네가 함께 하든, 말든, 나는 간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가는 것이거든요.

 

어려서부터 힘들 때 나를 위로해주던 U2의 노래,

그 노래를 라이브로 직접 들을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U2의 첫 내한 공연 소식이 들려왔어요. 와우!

   

1996년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 소식이 들려왔을 때, '나중에 또 오겠지?' 하고 그냥 넘겼다가 천추의 한이 되었어요. 인생에 다음은 없어요. 지금 이 순간 밖에 없어요. 하고 싶으면, 그때 해야 하더라고요.  

 

6월 12일, 예스 24 티켓 오픈!

그날 조신하게 모니터 앞에서 새로고침을 누르며 기다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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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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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수정 2019.06.05 0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티켓팅도 치열할 것 같은데 꼭 티켓팅 성공하셔서 공연 관람하시길 바랄께요!

  2. 섭섭이짱 2019.06.05 06: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U2 내한소식 듣고 진짜인지 놀랬었더라는 ^^
    이번 내한을 성공시킨 MBC..
    정말 큰일하셨어요. 짝짝짝~~👏👏👏
    예매 성공해서 꼬오오옥 보고 싶어요.

    소리질러 까아악~~~~~~~~

    p.s) 암표상들이요.. 쁘을리즈 제발..
    이번만큼은 조용히 있으시길~~~

  3. 꿈트리숲 2019.06.05 07: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꺄~~~~악@.@ 쿨럭-.-;;
    U2가 한국에 오나요?
    대박!!! MBC가 내한을 성공시켰다고요? 와~~ 더 대박!!^^

    with or without you 참 좋아라 하는 노래에요. 암울할때 꿀꿀할때 많이 들었는데 라이브로 들으면 심장 튀어나오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ㅋㅋ

    오늘 아침 노래는 U2의
    with or without you^^

  4. 제경어뭉 2019.06.05 0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신하게...너무 귀여우시잔아여~ ㅎㅎ 저도 한때는 미드광팬이었는데...csi이런쪽으로여ㅋ 근데 영어는ㅠㅠ
    요즘 배캠에서도 U2특집을하던데..저도 가고싶지만 조신하게 참아봅니다ㅠㅠ 공연장에서 신나하실 감독님모습이 그려지네여ㅎㅎ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여^^!!!

  5. 아리고 2019.06.05 0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마이클 잭슨 또 올 줄 알고 다음에 봐야지...했는데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U2...고척에서 PD님 찾으면 되는건가요? ^^

  6. 샘이깊은물 2019.06.05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생은 어차피 혼자 가는 것!
    The clock is ticking. It’s now or never. :)

  7. 아리아리짱 2019.06.05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pd님 아리아리!
    언제나 청춘 김피디님!
    고척돔에서의 청춘의 향연 응원할께요!

    피디님처럼 DVD 사서 자막없이 보려고 애썼던시절이 떠오릅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시대에 제네들 처리하려니 짠 합니다요^^

  8. 정현옥 2019.06.05 1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전 U2 잘 모릅니다.
    그러나 50 넘어서 가슴뛰는 공연을 기다리시는 PD님이 넘 귀엽습니다.
    글에서 20대의 첫사랑의 설렘처럼
    뜨겁게,,간절히 만나기를 원하는 가슴떨림이 느껴집니다.
    꼭,, U2를 공연장에서 만나서
    가슴떨린 생생 감동을 전달해주세요.
    U2의 노래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네요.. 오늘 할일이 생겼습니다.

  9. 민둘레 2019.06.05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 년 전에 프렌즈 다 봤는데 대사가 기억이 잘 안나네요..영어에 모지리라 레이첼이 전화로 무슨 말을 했는지 못 알아듣겠어요ㅠㅠ
    음악은 참 좋네요^^

  10. workroommnd 2019.06.05 1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어김없이 글이 있네요~
    덕질의 열정 본받고 싶어요~
    5일차 들어가요~

  11. 보리랑 2019.06.05 1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궁~ 중딩때 라디오 끼고 살아 이름은 들어봤지만 U2도 스킵~ 인생은 혼자 아닐지도요.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힘나고 아름다워요.

    부모에게서 사랑이 충족되지 않았으면 배우자에게서, 내가 눈에 콩깍지 씌여 선택한 배우자에게서 충족되지 않으면 친구에게서 또는 간증하시는 추종자들에게서 충족될듯요~

  12. UP피디 2019.06.05 15: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독 하고 갑니다
    제 피드도 놀러와 주세요~

  13. 오달자 2019.06.05 15: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이 극찬을 하신 프렌즈!
    꼭 찾아 보리라~하고 지낸지 몇달입니다. ㅎㅎ
    핑계겠지만~책 읽느라 프렌즈 찾아볼 시간이 읍슴다~~ㅠㅠ(믿거나말거나요.ㅋ)

    안그래도 U2 내한 소식을 접하고선 pc방에라도 가서 대기해야하나 고민중입니다.ㅎ
    홧팅요!

  14. 2019.06.05 2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5.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06.05 2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의 진정한 덕질 인생에서 한수 배웠습니다!
    저는 사실 말하기 조금 창피하기도 하지만.. 포켓몬스터 덕후랍니다..
    덕후들의 마음은 다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더욱 PD님의 글이 반가웠습니다. 감사합니다.^^~

  16. 반짝이는강 2019.06.06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주에도 U2가 온다고... 50+ 동료들이 콘서트 티켓 예약하며 엄청 신나하더라구요. 티켓 예매 성공하시길!

  17. 게리롭 2019.06.10 1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그 마이클잭슨 콘서트 다녀왔었어요 그때아니면 기회가 없을것같아서요 다녀오길 잘한것같아요 ㅎㅎ
    유투 내한공연 소식이 반가워서 가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젠 건강상 문제로 콘서트는 꿈도 못꾸게 되었네요
    역시 건강할때 하고싶은걸 다해야해요
    유투공연 제몫까지 잼나게 보고와주세요!

  18. luvholic 2019.06.10 2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with or without you'는 친구랑 와인바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듣고
    너무 좋아서 적어놨던 곡이었어요!
    내한소식도 기쁘고 ㅎㅎ 오랜만에 가사를 다시 살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