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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슬픔이 없는 어떤 애도

by 김민식pd 2019. 5. 22.

저같은 베이비부머는 3개의 시대를 동시에 살아갑니다. 부모님 세대는 대가족 중심의 농경 사회를 살아오셨고, 저는 4인 핵가족 중심의 산업화 사회를 살아왔고, 저의 아이들은 혼자 살아도 불편함이 없는 정보화 사회를 살아갑니다. 가족에 대한 생각이 판이하게 다른, 3세대가 동시에 살아갑니다. 서구 국가들은 농경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까지 200여년에 걸쳐 변화를 겪었는데, 우리는 30년 사이 압축 성장하느라 아직도 진통 중이에요.  

아버지는 큰 집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 기억 중 하나는, 명절에 큰집에 갔다가 본 아버지 형제들 사이 싸움입니다. 별로 유쾌한 기억은 아니에요. 갈 때마다 탈이 나지만, 아버지는 꼬박꼬박 큰 집에 가셨고, 저는 말렸어요. 굳이 좋은 일도 없는데 왜 가시느냐고. 그래서 요즘은 명절에 아버지를 모시고 여행을 다닙니다

언젠가는 연로하신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시겠지요. 가끔 고민이 부모님의 장례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든 일은, 직접 겪는 것보다 책으로 먼저 간접 체험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읽은 책입니다. 

<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만화 / 창비)

신문에 나온 새 책 소개 기사를 보고 읽고 싶었어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어느날 연을 끊고 지내던 아버지가 고독사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장례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데요. 끝이 워낙 비참했던 터라, 주인공은 빨리 아버지를 보내려고 2일장을 하려는데, 언니는 남들처럼 제대로 삼일장을 하기를 원합니다. 

'사실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었지만, 언니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으니, 언니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26쪽)


그렇죠. 망자를 보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은 이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요. 남은 이에게 후회나 여한이 없어야겠지요. 우리 나라의 장례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종교 의식을 따르느냐더군요. 저는 불교고, 동생은 기독교, 아버지는 무교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떤 방식을 택해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책을 보고 답을 내렸어요. 우리 셋 중 가장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건 동생이니 동생의 의견을 따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장례식 장면에서, 대가족 중심의 가치관에 익숙한 어르신들이 시대에 너무나 동떨어진 말을 하며 주인공을 힘들게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책을 보며 계속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현명한 작가님이 많은 고민끝에 쓴 작품 덕에 미리 예행연습을 해볼 수 있어 좋네요. 

농경 시대를 살아온 연로하신 어른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정보화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늘 고민하게 됩니다.



작가 '서늘한 여름밤'님이 쓰신 추천사로 책 소개를 마무리할게요.


'미워하던 부모가 고독사로 죽으면 어떤 기분일까? <기분이 없는 기분>은 슬픔 없는 애도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예상치 못한 죽음 앞에서 작가는 성급히 용서하지도, 죄책감에 휩싸이지도 않는다. 다만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돌본다. 갑자기 닥친 일에 어떤 마음을 느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단단하고도 섬세하게 마음을 살피는 혜진의 여정이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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