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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시간을 정복한 사람

by 김민식pd 2019. 5. 13.

얼마 전, '내 인생의 책'이라는 글에서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 류비셰프>라는 책이 제 삶을 바꿨다고 했는데요. 정작 그 글에서 책 소개는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리뷰를 다시 쓰고 싶은 욕심에 책장에서 책을 찾았어요.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 이상원, 조금선 / 황소자리)

1990년대 제가 읽은 책은 한국어판 제목이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였는데, 2004년에 나온 책은 제목이 바뀌었어요. 류비셰프라는 러시아 과학자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능성의 최대치를 살고간 사람'이랍니다. 매일 8시간 이상을 자고 운동과 산책을 한가로이 즐겼으며 한 해 평균 60여 차례의 공연과 전시를 관람했던 사람. 그러면서도 8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때, 70권의 학술 서적과 총 1만 2,500장 (단행본 100권) 분량에 달하는 연구 논문과 학술 자료를 남긴 사람. 어떻게 이렇게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궁금해할 독자들에게 류비셰프의 비밀이 공개됩니다. 


'여기서 비밀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미리 말하건대, 이 책에는 아주 멋진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방법과 인생에 필요한 교훈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매우 독특한 생활 방법을 다루고 있다. 그 생활 방법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구절들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어떤 분야에 있는 사람이든,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방법!'

'최소의 노력과 능력으로 최고의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

'오랫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가치를 입증하였으며 이해하기 쉽고 효과적인, 그리고 매우 흥미로운 방법!'

'일과 연구에 있어서의 성공, 그리고 완성된 삶을 이루는 방법!'

(위의 책 17쪽)


류비셰프의 비밀은 시간을 소중한 자원으로 여긴 것입니다. 저자는 로마 시대 철학자 세네카의 입을 빌어 시간의 소중함을 역설합니다.


'오, 루칠리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로지 시간뿐 그 외는 모두 타인의 것이라오.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해준 것은 끊임없이 흘러가며 사라지고 마는 시간뿐이요. 하지만 이조차도 누구든 원한다면 나에게서 빼앗아갈 수 있소. 왜냐하면 인간들은 타인이 소유한 시간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요. 시간이라는 것은 아무리 원해도 절대로 되돌아오지 않는 유일한 재산인데 말이오. 그러면 당신은 과연 내가 스승으로서 시간 관리를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묻고 싶을 것이오.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철저히 관리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시간을 헤프게 쓰면서도 사용한 시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계산하고 있다오. 내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언제 어디서 왜 얼마나 낭비했었는지에 대해 늘 알고 있다오.'

(위의 책 48쪽)

스무살에 서울에 처음 올라온 제게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때로는 하숙비도 없어, 대학 동아리방에서 이불을 펴고 지내기도 했어요. 제 주위에는 돈많고 잘난 서울 사람들이 많았지만, 돈도 외모도 시간 앞에서 영원할 수는 없어요. 20대에 결심했어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나는 귀하게 여기며 살겠노라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생산적으로 활용해 인생의 최대치를 살고 싶다고요. 책의 주인공, 류비셰프는 시간 활용의 고수입니다. 그에게는 버려지는 시간이 없어요.


'류비셰프는 '자투리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매우 세세한 계획을 세웠다. 예를 들어 여행을 할 때에는 반드시 가벼운 책을 읽거나 외국어 학습을 하였다. 영어도 '자투리 시간'을 통해서 독학했다. 


'내가 소련식물보호연구소에서 일할 때에는 출장을 가야 하는 일이 매우 잦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책을 여러 권 가져갔으며 장기간의 출장이 될 경우에는 출장지에 미리 우편으로 책을 부쳤다. 몇 권을 가져갈지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책 종류나 독서 시간이 어떻게 짜여졌을지 궁금할 것이다. 먼저 아침에는 머리가 맑기 때문에 철학이나 수학 분야처럼 고도로 집중해야 하는 책들을 읽는다. 약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읽고 나면 조금 읽기 쉬운 역사나 생물학 방면의 책을 읽는다. 그리고 머리가 피곤해지면 가벼운 소설류를 본다.''

(68쪽)


책을 읽고, 저는 20대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영어를 공부했어요. 제가 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는 류비셰프에게 영향을 받은 결과입니다.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며 느꼈어요. '내가 이 책에 빚진 게 많았구나!'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삼겠다는 목표는, 자신의 인생을 지배하겠다는 것인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내 삶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결심이 서야 해요. 타인의 눈치를 살피다 우물쭈물 의미없이 보내는 시간도 많거든요.

류비셰프는 하루 24시간의 사용을 통계로 내어 매일 기록합니다. 1965년의 어느 여름날의 기록을 보시죠.

 

'- 소스노코르스크 시 방문 - 0.5

- 기본 과학 연구 : 도서색인 - 15분, 도브잔스키 저서 읽기 - 1시간 15분

- 곤충분류학 : 견학 - 2시간 30분, 두 개의 그물 설치 - 20분, 곤충 분석 - 1시간 55분

- 휴식 (처음으로 우흐타 마을에서 수영을 함)

- 의학신문 - 15분

- 호프만의 소설 <황금단지> - 1시간 30분

- 안드론에게 편지 - 15분

총계 6시간 15분'


여기서 총계란 하루 중 과학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업무에 쓴 시간을 말합니다. 매일 업무에 쓴 시간을 모아 월말에 통계를 냅니다.


'기초과학 연구 - 59시간 45분'

곤충분류학 - 20시간 55분

추가 업무 - 50시간 25분

곤충 조직 연구 - 5시간 40분

총계 - 136시간 45분'

(위의 책 72쪽)


20대에 저는 책을 읽고, 하루 24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어떤 일이든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군복무를 하면서도 자투리 시간을 모아 회화책을 외웠고요. 매일 학습량을 기록으로 남겼어요. 1997년에 제가 기록한 다이어리를 보면, 그 시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요. 

1996년, MBC에 입사하고, 처음엔 불안했어요. '공대를 나온 내가, 과연 영상 연출을 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새로운 도전할 때, 딱 한가지만 생각합니다. 시간을 내어 공부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고요. 영상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영화를 보고 즐기는 건 누구 못지않게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찾아간 곳이 MBC 8층 자료실이었습니다.

수천장의 레이저디스크 영화가 소장되어 있는 곳이지요. 피디들은 누구나 하루 3장씩 영상 자료를 대출할 수 있었어요.

입사하고 수습기간 6개월 동안, 이곳에서 매일 3편의 영화를 빌려 봤습니다. 점심 시간에 가서 보고, 퇴근하고 집에 가서 보고... 하루에 3편씩 보면서, 영화 일기를 썼어요. 좋은 영화에는 등급을 매겨 다시 봤습니다. 다이어리에 이렇게 기록을 남긴 건, 류비셰프에게 배운 겁니다. 

아마 지금 제가 MBC에 신입 피디로 입사한다면, 넷플릭스를 이런 식으로 봤겠지요. 매일 3편의 영화를 보고, 기록하면서 영상 문법을 공부했을 것 같습니다. 97년에는 수 천장의 영화 라이브러리에 접근하는 게 MBC 피디의 특권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어요.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 20대에 배운 교훈을 나이 50에 다시 되새겨봅니다.  

멋진 날씨에,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주도, 시간의 주인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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