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같은 베이비부머는 3개의 시대를 동시에 살아갑니다. 부모님 세대는 대가족 중심의 농경 사회를 살아오셨고, 저는 4인 핵가족 중심의 산업화 사회를 살아왔고, 저의 아이들은 혼자 살아도 불편함이 없는 정보화 사회를 살아갑니다. 가족에 대한 생각이 판이하게 다른, 3세대가 동시에 살아갑니다. 서구 국가들은 농경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까지 200여년에 걸쳐 변화를 겪었는데, 우리는 30년 사이 압축 성장하느라 아직도 진통 중이에요.  

아버지는 큰 집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 기억 중 하나는, 명절에 큰집에 갔다가 본 아버지 형제들 사이 싸움입니다. 별로 유쾌한 기억은 아니에요. 갈 때마다 탈이 나지만, 아버지는 꼬박꼬박 큰 집에 가셨고, 저는 말렸어요. 굳이 좋은 일도 없는데 왜 가시느냐고. 그래서 요즘은 명절에 아버지를 모시고 여행을 다닙니다

언젠가는 연로하신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시겠지요. 가끔 고민이 부모님의 장례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든 일은, 직접 겪는 것보다 책으로 먼저 간접 체험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읽은 책입니다. 

<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만화 / 창비)

신문에 나온 새 책 소개 기사를 보고 읽고 싶었어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어느날 연을 끊고 지내던 아버지가 고독사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장례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데요. 끝이 워낙 비참했던 터라, 주인공은 빨리 아버지를 보내려고 2일장을 하려는데, 언니는 남들처럼 제대로 삼일장을 하기를 원합니다. 

'사실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었지만, 언니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으니, 언니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26쪽)


그렇죠. 망자를 보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은 이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요. 남은 이에게 후회나 여한이 없어야겠지요. 우리 나라의 장례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종교 의식을 따르느냐더군요. 저는 불교고, 동생은 기독교, 아버지는 무교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떤 방식을 택해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책을 보고 답을 내렸어요. 우리 셋 중 가장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건 동생이니 동생의 의견을 따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장례식 장면에서, 대가족 중심의 가치관에 익숙한 어르신들이 시대에 너무나 동떨어진 말을 하며 주인공을 힘들게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책을 보며 계속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현명한 작가님이 많은 고민끝에 쓴 작품 덕에 미리 예행연습을 해볼 수 있어 좋네요. 

농경 시대를 살아온 연로하신 어른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정보화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늘 고민하게 됩니다.



작가 '서늘한 여름밤'님이 쓰신 추천사로 책 소개를 마무리할게요.


'미워하던 부모가 고독사로 죽으면 어떤 기분일까? <기분이 없는 기분>은 슬픔 없는 애도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예상치 못한 죽음 앞에서 작가는 성급히 용서하지도, 죄책감에 휩싸이지도 않는다. 다만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돌본다. 갑자기 닥친 일에 어떤 마음을 느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단단하고도 섬세하게 마음을 살피는 혜진의 여정이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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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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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지 2019.05.22 0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기해요. 저도 그동안 별로 왕래가 없던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엄마 걱정만 좀 될 뿐 어떤 마음을 느껴야할지 혼동스러웠거든요. 스스로가 감정이 없나 생각도 했는데, 이 글을 보니 꼭 저만의 일은 아닌것 같네요. 이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2. 하늘은혜 2019.05.22 0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생이 깊은 감동을 하고 갑니다... 배려왕이셔요..

  3. 최수정 2019.05.22 0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신 분 들이라면 한번쯤 고민했을 내용 같아서 공감이 많이 갑니다.

  4. 아리아리짱 2019.05.22 06: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PD 님 아리아리!

    역시 독서의 고수답게 생활에서의 고민은 책에서 답을 구하시군요.
    이제 중년에 들어선 나이들인지라 주변의 부모님 상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 죽음들을 대할 때마다 살아있는 우리삶을 되돌아 보게 되구요.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돌본다.'
    작가의 이표현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살아남은 우리는 또 오늘 하루도 눈부시게 빛나는 삶이 되어야겠어요.

  5. 꿈트리숲 2019.05.22 0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농경사회와 산업화사회 그리고 정보화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살기에 문제도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압축 성장이 좋기는 한데, 단점도
    만만치 않다 싶네요. 압축 성장한 저력으로
    단점도 잘 커버하는 우리가 되면 더 좋을텐데 말이죠.

    사회가 빨리 변화하니까 죽음 이후의 절차를
    어떻게 할지도 미처 논의해볼 시간이 없었죠.
    작가님 말씀처럼 큰 일이 닥치기 전에 가족들과
    먼저 의논해놓으면 좋을 듯싶어요.

    요즘은 장례절차를 아예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남은 이가 충분히 애도하고 싶다면
    그에 맞게 장례를 치르는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고민조차 책으로 먼저 찾아보는 현명함,
    저도 본받고 미리미리 책을 봐둬야할 것 같아요.

  6. 솔나비 2019.05.22 0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세대를 동시에 살아내는 우리들 힘든 게 당연하겠네요.
    저를 포함 연로하신 부모님으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아요. 나를 먼저 돌보는 것을 이기적으로 여기면 안 되겠어요. 나와 내 가족, 주위를 위해...
    감사합니다!

  7. 오달자 2019.05.22 1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나... 어제 가까운 지인의 부친상 장례 미사를 마치고 왔는데 우연찮게 피디님께서 장례에 관한 책 소개를~~
    이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거라 하죠?...

    살아 생전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장례에 관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겠네요.

  8. 보리랑 2019.05.22 10: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마한 상처를 주신 아버지를 용서하고 주신 사랑을 깨닫고 여행으로 보답하시는 피디님 두엄지척~~ 어떤 경우라도 주신 사랑에 감사해야 내가 잘 된다고 요 얼마전 배웠어요. 첫번째 화살은 맞아도 두번째 화살은 피하는 용서라고요

    '300년을 30년에 산 우리가 정상일수 있을까' (?)
    라는 책을 본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피디님 같은 분들 많이 계셔서 한국도 정상궤도에 오르리라 봅니다

  9. 봄처녀 2019.05.22 1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추천하신 책이니 내용도 좋겠지만 만화라니^^:: 아직은 와닿지 않은 부모님의 죽음입니다.. 요새 걱정되고 두렵기도 하고.. 책을 통해 생각해보면 좋을듯합니다

  10. 오유석 2019.05.22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유시민 이사장이 모친의 장례에 대해 사람들에게 발표한 내용과 비슷한 내용이네요.
    이 포스팅 덕분에 연로하신 저의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저도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고마운 글

  11. 문희 티켓 2019.05.22 15: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봣습니다 다음에 시간나시면 재블러그도 놀러와주세요~

  12. parkbom8997 2019.05.22 2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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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섭섭이짱 2019.05.22 23: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네요..
    작가분 첫 책이라는데..
    주제가 묵직하네요.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서 바로 구매해야겠어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