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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이기적으로 일하는 사람

by 김민식pd 2019. 5. 10.

1992년에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직속 상사가 제게 했던 말이 있어요. 

"김민식 씨는 아메리칸 스타일이야."

그 회사는 미국계 기업이니, 미국식으로 일한다는 건 칭찬일 수도 있는데요. 선배는 그 말을 부정적 표현으로 썼어요. 이를테면, 제가 술을 마시다, '이제 그만 하겠습니다.' 하고 잔을 꺾을 때나, 회식에서 2차는 가지 않겠다며 먼저 일어날 때에요. 술을 마시는 일이나 2차로 단란주점을 가는 일이나, 회사 업무와는 관계가 없는데, 왜 굳이 퇴근 후 시간까지 상사의 명령을 따라야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저는 자기계발이 취미입니다. 공대를 다니면서 혼자 영어를 공부했듯이, 직장을 다니면서도 저녁에는 학원을 다니고, 주말에는 도서관에 나가 책을 읽었어요. 외판 사원으로 일하며, 진상 고객들과 갑질 상사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렸어요. 불쌍한 나 자신을 위해 뭐라도 하고 싶어 어학 공부를 하고 책을 읽었지요. 세상에 다 내주고 살 수는 없잖아요? 일도 열심히 했어요.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일수록, 내 할 일은 다 합니다. 다만 일과 삶의 경계를 분명히 할 뿐이지요.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 (유호현 / 스마트북스)라는 책을 읽었어요. 제목을 보고 '엥?'했는데요. 영문 제목을 보고 이해했어요. 

Self-motivated professionals make the best company

자기 동기 부여가 강한 전문가가 최고의 기업을 만든다. 

맞아요. 누가 시킨 일만 하거나, 상사 눈치만 보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은 효율이 떨어져요. 1980년대에는 그랬어요. 보스가 일을 시키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매뉴얼대로만 성실하게 일하는 조직. 지금은 21세기입니다. 그렇게 일하며 창의성을 키우기는 쉽지 않아요.

'단순 노동 제조업에서는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우리 기업문화는 그러한 제조업 시대의 문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이른바 '위계조직'이다. 위계조직은 맨 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아래에서는 결정된 사항을 빠르게 따른다. 하지만 이러한 위계조직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고 지금까지 없던 것을 시도하는 일에는 적합하지 않은 조직이다. (중략)

전문성이 뛰어난 직원들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면서도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체제를 위계조직과 대비되는 '역할조직'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위계조직은 가장 높은 사람에게 결정권이 집중되어 그의 역량에 의해 회사 전체가 좌우되지만, 역할조직은 각 역할을 맡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결정권을 갖고 자신의 일에 책임지며 일을 해나간다.'

(머리말에서)

융합형 인재가 필요한 시대라고 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저자인 유호현씨의 약력이 인상적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문과 출신 엔지니어'. 대학에서 영문학과 문헌정보학을 공부했고요, 미국 박사 유학 중 트위터에서 입사 제안을 받고 실리콘밸리로 갑니다. 나중에 에어비앤비로 옮기고요. 저자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실리콘밸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일은 하기 싫은 것이고, 삶은 일로부터의 해방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깨지고, 일은 삶의 목표를 완성시켜가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 커리어를 위해 동기부여가 된 직원들을 가진 회사가 어떠한 힘을 얻게 되는지, 그들을 어떻게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기업 성과를 낼 것인지, 나아가 국가경제의 성장동력으로 삼으려면 어떠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토론하고 싶어하는 문과 출신 엔지니어이다.'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 '너는 이기적이야.'라는 소리를 상사에게 많이 들었어요. 나는 조직 생활에는 맞지 않는가 싶어 프리랜서로 전향했어요. 영어 통역사가 되어 다양한 기업에 통역을 나갔는데요, 아예 입사하여 사내 통역사로 일해달라는 제안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 상사가 이상했던 거로구나.' 다시 기업에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기왕에 다시 회사에 들어간다면 좋은 회사로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찾은 곳이 MBC였지요. 저와 잘 맞는 직장/직업을 만난 덕에 23년째 행복하게 다니고 있어요. 

결국 취업도 연애랑 비슷한 게 아닐까요? 한번에 천생연분을 만나기는 쉽지 않으니, 여러번 선택을 거치면서 인연을 찾아갑니다. 현재의 공채 문화에서는 이게 쉽지 않지요, 저자는 과열 경쟁으로 치닫는 신입 공채보다는, 기업과 직원이 서로에게 더 잘 맞는 궁합을 찾아가는 수시 채용으로 인사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데요. 실리콘밸리 취업을 원하는 이들이나, 벤처 창업을 꿈꾸는 이들, 더 나은 조직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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