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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지금 여기가 최고!

by 김민식pd 2019. 4. 29.

장수 시대를 맞아 건강과 의료에 대해 궁금한 게 많습니다. 앞으로 의학의 발전 정도에 따라 제 노후의 삶의 질이 바뀔 것이니까요. 미래를 알고 싶다면, 지나간 역사를 살펴봐야 합니다. 특히, 의학의 역사를 아는 것은 곧 인간의 역사를 아는 것인데요. 의학 역사에 대한 책은 많지만, 크게 사랑받은 책은 없었어요. 사람들이 의학의 역사에 관심이 없었다기보다, 재미있는 책이 없었던 탓이라고요. 그래서 본인이 직접 의학 세계사를 썼노라고 말씀하시는 저자가 있습니다. 바로 서민 선생님이십니다. 우리 시대, 가장 글을 재미나게 쓰는 작가라고 제가 생각하는 분입니다.

<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 (서민 / 생각정원)

서민 선생님, 존경합니다. 서두에서, 이렇게 대차게 질러놓고 시작하시다니, 읽는 제가 다 쫄립니다. 그런데요, 이 책 정말 재미있습니다. 저자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오는지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금세 알 수 있어요. 빙하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의 미이라 '외치'가 자신의 심장병을 고치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합니다. 인류 역사상 의학 발전에 이바지한 숱한 위인을 만납니다. 질병이 신의 저주이던 시절부터 과학이 된 현재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외치의 모험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타임머신을 타고온 외계인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 저자 자신의 외모를 이용한 자학개그까지 등장하는 걸 보고, 뿜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처럼 잘생긴 분이 왜 이런 외모 비하를 치시나?'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우뚱해야 하거늘!)    

기원전 2650년의 이집트에도 치과 의사가 있었대요.

'당시에는 곡식을 정제하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모래나 돌 같은 것을 제대로 골라내지 못했다. 그래서 치아가 쉽게 상했다. 설탕이 부족한 시대였기에 충치는 잘 안 생겼지만, 당분 섭취가 가능했던 왕과 귀족들은 그 와중에도 충치에 걸렸다.'

(위의 책 39쪽)

생각해보니 어릴 적에 밥을 먹다 돌을 씹은 적이 많아요. 어느 순간 그런 일이 사라졌지요. 막연하게 엄마의 밥짓는 기술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요. 도정 기술이 발달한 덕분인가 봐요.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의 건강 수명도 획기적으로 늘어납니다.

예전에는 아기를 낳다 산모가 죽는 경우가 참 많았지요.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빈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던 이그나즈 제멜바이스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당시엔 의사도 아이를 받고 조산사(우리가 산파라고 부르던 이들)도 아이를 받았는데요. 사람들의 통념과 반대로 조산사보다 의사들이 아이를 받을 때 산모의 사망률이 훨씬 더 높았대요. 전문가인 의사가 더 기술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두 집단을 세심하게 관찰한 결과 의사들은 죽은 시체를 부검한 뒤 손을 씻지도 않고 병실에 들어와 산모를 내진했대요. 이때 의사의 손에  묻은 병균이 산모에게 그대로 감염된 거죠. 조산사는 시체를 만질 일이 없으니 감염이 일어나지 않고요. 제멜바이스는 의사들에게 손을 씻으라고 조언했는데요.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대요. 성격이 유별난 제멜바이스는 의사들에게 "당신들은 살인자야!"하고 떠들어 댔기에 의료계에서 오히려 따돌림을 당했다고 하는군요. 서민 저자님은 무척 안타까워 하십니다. 제멜바이스가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그래서 의료계에서 그의 말에 더 빨리 귀기울였다면 숱한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은 옳은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요. 좋은 사람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잘난 인간이 겸손하기는 참 어려운데요. 겸손도 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교보문고 보라쇼 강연장에서 본 서민 교수님의 모습은 정말 겸손함의 극치였지요. 어려서부터 타고난 외모 덕분에 겸손하게 사는 모습이 몸에 밴 듯... ^^

책의 마지막에는 한국의 의료사에 대해서도 나옵니다.

'대한민국은 의료 수준에 비해 말도 안 되게 싼 의료천국이 됐다. 사람들은 병원에 가기 부담스러워하기는커녕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간다. 당연히 기대수명은 OECD 평균을 넘는다. 그럼에도 국민 한 사람이 쓰는 의료비는 OECD 평균보다 낮다.'

(위의 책 371쪽)

맞아요. 한국만큼 병원 문턱이 낮은 나라도 없어요. 요즘은 외국에서 의료 관광까지 오고 있으니 의료 선진국이기도 하고요. 

"이 나라에서 수술받는 건 행운입니다. 유럽은 국가가 다 돈을 내주는 무상의료를 실시하고 있죠. 하지만 그 나라들은 의사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입원해서 수술까지 하려면, 간단한 수술도 한 달가량 기다려야 해요. 반면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병원에 오자마자 일주일도 안 돼서 수술을 해준다고 하지요? 미흡한 점이 없진 않지만, 우리나라 의료는 세계 최고입니다."

(394쪽)


예전에 아내가 미국 유학 하던 시절, 아이가 열이 나고 기침을 해서 현지 병원에 데려 갔어요. 미국인 의사가 걱정스레 묻더군요.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필요하면 찍어야지요, 했는데 나중에 보니 진료비가 50만원이 넘게 나왔어요. 그냥 가벼운 감기라 약처방도 필요없었는데 말이지요. 한국 같으면 1만원도 안 나왔을 상황인데... 그제야 의사가 엑스레이를 찍을 때 미안해하던 표정이 떠올랐어요. 너무 비싼 의료수가 때문인거죠. 정말 한국의 건강보험은 최고의 복지 시스템입니다.

책을 읽고 느낀 점. 지금, 여기가 최고에요. 현대의 한국에서 태어나 사는 것에 감사하려고요. 옛날에는 장미 가시에 찔려도 죽고 (파상풍), 물을 잘못 마셔도 죽고 (콜레라), 아기를 낳다가도 죽었어요. (산욕열) 이제 우리는 장수 사회를 살고 있지요. 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의료 전문가들의 노력 위에 이뤄진 결과에요. 심지어 한국민은 세계에서도 의료비가 저렴하고 수준도 높은 의료 선진국에 살고 있어요. 이제 저는 마음 편하게 긴 노후를 즐기려고요.

대중들을 위해 이렇게 재미난 의학역사서를 써주신 서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덕분에, 지금 여기에 있다는 점에 더욱 감사하게 되었어요. 

외모보다 지성이 우선이라는 점을 일깨워주시는 선생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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