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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무섭도록 재밌는 '개의 힘'

by 김민식pd 2019. 4. 24.
예전에 주조정실에 발령 났을 때, 저의 선임은 후배 교양 피디인 임채원 피디였어요. 제게 송출실 근무 요령을 가르쳐준 사수입니다. 요즘 그는 <PD 수첩>에 복귀해서 일하고 있는데요. 최근에 <4대강, 가짜뉴스 그리고 정치인>을 만들었어요.

얼마 전 점심을 먹으며 물어봤어요. 
"요즘은 뭐가 재미있니?"
사람을 만나면 늘 물어봅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의 즐거움이 항상 궁금해요.
"형, <개의 힘>이라는 소설 보셨어요?"
재미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직 읽지는 못했어요.
"보세요, 형. 죽여요. 한 2~3주는 책 속에 빠져 사실 겁니다."

찾아보니 한 권에 600쪽이 넘는 책인데, 총 2권이에요. 분량이 상당하네요. 저는 두꺼운 책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책 욕심이 많아, 읽고 싶은 책이 쌓여있거든요. 그래도 믿고 좋아하는 후배의 추천인지라 읽었어요. 책을 다 읽고난 소감. 앞으로는 이 친구가 추천하면 경국대전이라도 읽으려고요. 간만에 정말 재미난 범죄 소설을 읽었어요.

<개의 힘> (돈 윈슬로 / 김경숙 / 황금가지)

아트 켈러라는 미국 마약단속반 요원이 나오는데요. 엄마는 멕시코 계고, 아빠는 미국인이에요.멕시코 휴양지 놀러온 미국 청년이 현지에서 만난 어여쁜 소녀와 사랑에 빠져 혼혈 아들을 낳습니다. 미국으로 데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만, 끝내 이혼하게 됩니다. 그리곤 아들과 여자를 두고 떠납니다.

아트 켈러는 어려서 아빠의 지원 없이, 엄마와 단 둘이 가난한 멕시코 이민자 마을에서 큽니다. 그는 가난한 히스패닉 공동체를 파괴하는 마약의 해악을 실감합니다. 훗날 마약단속국 직원이 되어 멕시코 마피아들과 싸우지요. 그 와중에도 가정을 일구고 아이를 낳습니다.

'나쁜 아버지를 둔 사람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는 길은 좋은 아버지가 되는 길이다.'

(개의 힘 1권, 202쪽)

아트 켈러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소설 <대부>가 떠올랐어요. <대부>의 주인공, 마이클 콜레오네는 참전용사가 된 후, 떳떳한 직업을 구하려 합니다. 하지만 마피아 보스인 아버지가 암살 위기에 놓이자, 가족을 위해 복수에 나서게 됩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애쓰는 마약단속반원 아트 켈러와, 좋은 아들이 되려다 마피아가 되는 마이클 콜레오네, 왠지 데칼코마니 같아요. 

저는 어려서 빚 때문에 깨지는 가정을 많이 봤어요. 아내 모르게 도박빚을 진 남편이 가족을 두고 달아나는 것도 봤고, 남편 모르게 계를 하던 계주가 계가 깨지는 바람에 망하는 것도 봤어요. 그래서 저는 빚 지는 걸 극도로 싫어합니다. 무조건 소득 범위 안에서 소비하고 사는 습관 때문에 짠돌이가 되었어요. 빚지기가 싫어 집도 사지 않고, 그냥 전세를 사는데요. 아내는 이런 저 때문에 속상해 합니다.
 
소설 <개의 힘>을 읽다, 아내의 좌절과 분노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을 만났어요.

아일랜드계 킬러인 칼란이 사랑에 빠집니다. 그가 좋아하는 여자는 집을 꾸미고 세간을 들이는 걸 좋아해요. 동거하는 애인이 냄비, 프라이팬, 접시를 사는 걸 보고 의아해하지요. 밥은 나가서 사먹는 게 더 편한데 왜 조리기구를 사는 거지? 그때 마피아인 빅 피치가 칼란을 바로 잡습니다.

"남자는 현재에 살아. 지금 먹고, 지금 마시고, 지금 눕지. 남자는 다음 끼니도, 다음 술도, 다음 잠자리도 생각하지 않아. 그냥 '지금' 행복한 거지. 여자는 내일을 살아. 이 우둔한 아일랜드 놈아. 좀 알아둬. 여자는 늘 둥지를 짓고 있어. 하는 일마다 실제로 둥지를 짓기 위한 나뭇가지와 잎과 흙을 모는 일을 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 둥지는 너를 위한 것이 아니야. 여자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야. 둥지는 아기를 위한 것이지."

(<개의 힘> 1부 408쪽)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남녀간의 심리의 차이를 이렇게 풀 수도 있군요. 우린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하는데요, 어쩔 수 없이 자꾸 나쁜 일로 끌려가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가족을 위해 내린 선택이 어느 순간 가족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요. 자꾸만 악으로 끌려가는 힘을 '개의 힘'이라고 부릅니다.

분량이 만만치 않은 책인데, 이야기에 홀딱 빠져서 미친듯이 달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몇 쪽 안 남았어요. 끝나는 게 아쉬워 먼산을 보기도 하고, 가만히 인물들의 선택에 대해 고민하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시간도 끌어 봅니다. 무섭도록 재미난 책이네요. <나르코스> 시리즈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취향저격! 

2권 마지막에 나오는 기도문이 마음에 남습니다.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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