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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다시 생각해!

by 김민식pd 2019. 4. 25.

어려서부터 볼품 없는 외모 탓에 늘 없어 보였어요. 좀 있어 보이려면 책이라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도서관에서 공짜로 빌려 읽은 책으로 어디가서 폼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블로그에 독서 일기를 올리다보면 어느 순간, 폼나는 책만 읽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저, 이런 책도 읽었어요. 아이구, 이런 훌륭한 작가님이 쓰신 책에 이런 글귀가 있군요?'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면, 사는 게 재미없어져요. 독서의 순수한 재미는 오로지 읽고 싶은 책을 읽는데서 오는데 말이지요. '책을 읽는 게 즐거운 책벌레의 삶을 포기하지 맙시다. 폼나는 책만 골라 읽지는 맙시당~' 하고 스스로를 경계합니다. 


재미난 책을 읽고 싶을 때는 도서관에 가서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 봅니다. 오쿠다 히데오를 좋아하는데요, 문체가 가볍고 발랄하거든요. <공중그네>나 <남쪽으로 튀어>같은 소설을 좋아하지요. 검색해보니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네요. 

<쥰페이, 다시 생각해!> (오쿠다 히데오 / 이혁재 / 재인)


야쿠자 조직의 막내인 쥰페이, 어느날 오야붕에게 지령을 받습니다. 권총으로 경쟁 조직의 중간 보스를 해치우고 감옥에 다녀오라고. 10년 정도 옥살이를 하고 나면 야쿠자로서 자리를 잡게 될 거라고. 줄거리를 들으면 피비린내 풍기는 하드보일드 느와르 같은데요, 작가가 누굽니까. 개그 퍼레이드의 오쿠다 히데오입니다. 어리바리한 야쿠자 꼬붕에게 어이없는 일이 자꾸 일어나는데요. 그의 결행 계획을 들은 한 여자아이가 인터넷에 상담을 요청하는 바람에 온갖 사람들이 쥰페이를 말리는 댓글을 인터넷에 올립니다. 그래서 제목이 <쥰페이, 다시 생각해!>인가 봐요. 


300개가 넘는 댓글들이 하나같이 웃깁니다. 10년의 옥살이를 각오하고 결행하겠다는 쥰페이를 말리는 글중에 이런 글도 있어요. 


#157. 21세의 쥰페이 군이 앞으로 10년 동안 할 수 있는 것. 히치하이크로 세계 일주. 자전거로 세계 일주. 도보로 일본 일주. 선박 면허 따서 태평양 횡단. 등산가가 돼서 세계 3대 봉우리 등정. 권투 도장에 다녀서 프로가 되어 세계 챔피언 타이틀 따기. 좌익 활동가가 되어 혁명을 일으킨다. 책을 많이 읽어 작가가 된다. 극단에 들어가서 연기자가 된다. 예능 프로덕션 요시모토에 들어가 연예인이 된다. 포르노 배우가 돼서 1,000명의 여자와 섹스를 한다. 일식집에 들어가 초밥 장인이 된다. 중국집에 들어가 볶음밥의 명인이 된다. 목수가 되어 자신의 집을 짓는다. 연애를 하고 결혼해서 아이 둘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일군다..... 지금 생각을 바꾸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by 세계반점.

(위의 책 236쪽)


'책을 많이 읽어 작가가 된다.'라는 대목에서 빵 터졌어요. 어렸을 때 제가 했던 상상이거든요. 작가는 골방에 틀어박혀 글만 쓰면 되니까, 외모를 신경 쓸 일도 없을 테고..... ^^

'앞으로 내 인생 10년을 들여 무엇을 할 것인가?' 가끔 이런 상상을 하면 즐겁습니다. 인생의 계획을 세울 때, 너무 근엄진지해지면 안됩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꿈이 뭐야?'라고 물어보면, 진짜 꿈이 아닌 가짜 꿈을 이야기할 때가 많지요. 어른들이 좋아할만한 답을 하는 겁니다.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나 자신의 기준에 따라 사는 게 즐거운 인생의 시작입니다.

제게 10년이란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냥 지금처럼 살 겁니다. 서점과 도서관을 오가며 사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고, 수천권의 책을 읽을 거예요. 그중에는 즐거움을 주는 책도, 가르침을 주는 책도 있겠지요. 독서의 즐거움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어른이 되는 것, 그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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