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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내 인생의 책

by 김민식pd 2019. 4. 26.

도서관에서 저자 특강을 할 때, 자주 듣는 질문이 있어요. “작가님은 매년 200권 이상 책을 읽는다고 들었어요. 다독가로서 내 인생의 책 한 권을 고른다면 어떤 책을 추천하시겠습니까?” 답은 그때그때 달라요.

“좋은 책과 나쁜 책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은 다 좋아요. 다만 지금 이 순간, 내게 더 와 닿는 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어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달라요. 그러니 제 인생의 책을 알려드리기보다 지금 질문하신 분이 본인 인생의 책을 찾아가는 게 독서의 낙이라 생각합니다.”

답변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다르게 답할 때도 있어요.

“아직도 내 인생의 책을 찾지 못했어요. 내 인생의 책을 이미 읽었다면, 더 이상 책을 읽을 이유가 없을지도 모르죠. 지금 이 순간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어쩌면 내 인생의 책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매일 새로운 책을 찾습니다. 내 인생의 책을 평생 만나지 않는 게 소원입니다. 그래야 책 읽기가 죽을 때까지 즐거울 테니까요.”

여전히 아쉽습니다. 좀 더 고민해봤어요. 인생의 책이란 무엇일까?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일까요? 그렇다면 떠오르는 책이 한 권 있어요. 바로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입니다. 류비셰프라는 과학자가 시간을 관리하며 다양한 일상을 즐기는 이야기인데요. 20대에 이 책을 읽고 반해버렸어요. 그래서 저의 하루하루를 가계부로 정리했어요. 매일 24시간이 입금되고,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를 기록했지요. 영어 공부나 독서처럼 생산적인 일에 쓰인 시간을 수입으로 잡고, 게임이나 TV 시청처럼 소비활동에 쓰인 시간을 지출로 잡습니다. 정리하고 보니 하루 중 버리는 시간이 의외로 많더군요.

시간의 생산성을 증대하기 위해 시간의 지출을 소득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았어요. 이를테면 학교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20분이라면, 이전에 음악을 들으며 가던 것을, 영어 회화 테이프를 청취하면서 갔어요. 그럼 등교 시간에 지출한 20분이 영어 공부에 투자한 시간 20분이 되지요. 공대를 다니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영어책을 외웠습니다. 영어 공부는 앉아서 파는 학문이 아니라 하루 중 짬짬이 시간을 내어 반복으로 길러지는 습관이거든요. 하루하루 24시간의 수입과 지출을 관리했어요. 시간을 아껴 쓰는 습관이 몸에 배니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고 외국어를 공부하며 생산성을 키울 수 있었어요.

드라마 피디로 일하며 매년 한 권씩 책을 쓰고, 여행을 다니고, 강연을 다닙니다. 직장을 다니며 매년 200권의 책을 읽는 제게 ‘PD님의 시간 관리 방법이 궁금합니다.’ 하고 묻는 분도 많아요. 몇 해 전, 하루 24시간의 통계를 내보니 차로 출퇴근하며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은근히 많더군요. 차를 아내에게 주고 전철로 출근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갔어요. 하루 3시간 가까이 전철에서 책을 읽다보니 독서량이 늘었고요. 왕복 3시간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량이 늘었어요. 심지어 자전거 통근 길에 영문 오디오북을 들으니, 운동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독서도 하면서 출근하는 셈입니다. 결국 내 삶을 바꾸는 건 시간의 활용법입니다.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 류비셰프>를 읽고 깨달았어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원은 바로 시간입니다. 돈 한 푼 버는 건 쉽지 않지만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누구나 시간의 부자로 살 수는 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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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에세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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