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으면서 특히 마음에 와 닿았던 대목은 저자가 영화감독으로 겪은 바를 쓴 글입니다. 도보 여행에 대한 저자의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읽은 책에서 직업인으로서의 자세도 배울 수 있었어요. 대중을 상대로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내보여야하는 사람은 항상 두 가지 마음 사이를 오갑니다. 자신감과 불안감. 일단 자신감이 있어야 무언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없으면 ‘나 따위가 무슨 책을 쓴다고.’ ‘내 주제에 무슨 드라마 연출을 한다고.’ 하며 위축됩니다. 즉, 일에 앞서 필요한 마음가짐은 자신감이지요. 그러나 방송이 나가고 책이 출판된 다음에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내가 만든 / 쓴 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배우로, 영화감독으로, 화가로, 저자로, 다양한 일을 하는 하정우 씨는 어떻게 느낄까요?
'자신감이란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열심히 한 일을 신뢰하는 데서 나오는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스스로에 대해서라면 결코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확신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위의 책 223쪽)
어떤 드라마 대본을 보고 연출하고 싶다는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제게 필요한 건 자신감입니다. 자신감이 있어야 작업에 들어갑니다. 내게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는 배우에게 출연을 설득할 수 없거든요. 마찬가지로 스태프들에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설명할 수도 없고요.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일에 들어갑니다. 다만 대본의 색깔이나 작품의 방향에 대해 확신하지는 않아요. 촬영장에서 배우와 작업할 때 감독이 자신만의 확신에 가득 차 있으면 해석의 여지가 줄어듭니다. 내 머릿속에 있던 캐릭터와 배우가 가져온 캐릭터가 충돌할 때 자신감이 사라지지요. ‘어라? 내가 대본을 잘못 해석한 건가? 아니면 캐스팅을 잘못 한 건가? 대본 리딩 때 방향을 잘못 잡았나?’ 이런 생각이 들면, 촬영장 분위기는 망가집니다. 감독이 헤매는 걸 모두가 눈치채거든요. 그렇기에 저는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은 없는 상태로 일을 합니다. 배우가 색다른 해석을 가져오면 흥미롭게 지켜봅니다. ‘와우, 이 역할을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신선한대?’
오래 일을 해보고 깨달았어요. 배우나 스태프가 감독의 의중과 다른 방향을 제시할 때 감독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확신이 과도한 탓이고, 오히려 자신감이 부족한 탓이에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걸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거든요. 그게 다 협업의 과정인데 말이지요. 저는 나에 대한 확신은 없어요. 그게 없어야 작품에 다른 이들이 개입하고, 그들의 개성을 더할 여지가 생긴다고 믿습니다.
'나는 일할 때 막연한 느낌이나 주관에 치우치지 않도록 나 자신을 계속 점검한다. 누군가와 생각이 다를 때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현재 나의 기분이나 마음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 또 내가 그렇다면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시간을 쌓아가는 것뿐이다. 나는 내가 지나온 여정과 시간에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지만, 결코 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는다. 어쩌면 확신은 나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오만과 교만의 다른 말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위의 책 226쪽)
오늘 또 한 수 배웁니다. 배우라고 배우라더니 역시 하정우 배우는 잘 배운 사람인지라, 배울 게 많네요. 영화 속 배역으로만 만난 하정우, 그가 쓴 책을 통해 만나니 더욱 깊게 알게 된 느낌이고요. 그의 차기작을 볼 때, 더욱 친근할 것 같아요. 책은 이래서 좋아요. 읽고 나면 그 저자를 더욱 좋아하게 되거든요.
자신감과 불확실 사이를 오가며, 오늘도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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