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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국내여행

불광동에서 임진각까지 도보 순례

by 김민식pd 2019. 3. 5.

걷기를 좋아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게 꿈입니다. 퇴직하고 아이들이 다 크면 훌훌 떠나고 싶어요. 60이 넘은 나이에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는데요. 다행히 제게는 희망을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박보영 선생님입니다.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하신 후, 70이 넘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셨지요. 선생님이 얼마 전 연락해 오셨어요. 전국일주 국토 순례에 함께하지 않겠냐고. 아이 방학 기간이라 힘들 것 같다고 했더니, 한 구간이라도 꼭 같이 걷자고 하시더군요. 

선생님은 '탈핵 희망 국토 도보 순례'를 위해 제주도에서 임진각까지 걸으신대요. 그 연세에, 이 추운 겨울에, 이렇게 힘든 도보 순례를 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한 마음에 주말에 시간을 내어 선생님을 뵈러 갔습니다. 2월 23일 토요일 아침 8시, 불광동 성당에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도보 순례를 통해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하십니다. 

순례단원은 길을 걸으며 탈핵을 홍보하는 전단지를 돌렸어요. 예전에 파업 할 때, 거리 선전전에 자주 나갔어요. 전단지 나누기, 쉽지 않아요. 받아주는 사람이 잘 없어요. 무슨 거리에서 구걸하는 것 같아요. 관심을 구걸하고, 손길을 구걸하죠. 힘들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선히 전단지를 받아주시더군요. 추워서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가던 분도 손을 내밀어 받아주시는 모습에 놀랐어요. 왜 이렇게 잘 받아줄까? 국토 도보 순례단의 모습을 보시고 궁금한 거죠.

'저 사람들은 이 추운 겨울에 왜 저렇게 걷는 걸까?'

'저렇게 간절하게 바라는 건 도대체 뭘까?' 궁금한 마음에 이들이 돌리는 전단지를 받아듭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건 진심입니다. 그래서 다들 국토순례를 하고, 삼보일배를 하나봐요. 

강원대에 재직하시는 성원기 교수님은 삼척 원전 반대 운동을 하신 분입니다. 이후, 매년 여름과 겨울, 방학이 되면 걸어서 전국을 다니며 탈핵 운동을 하고 계십니다. 제가 함께 한 그날이 366일차였어요. 

걷다 보니, 불광동 성당에서 시작한 걸음이 어느새 서울 경계를 벗어납니다. 경기도 경계가 나타난 곳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하루 종일, 다른 분들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걸었더니, 어떤 분이 그러셨어요. 

"피디님도 할 얘기가 많으실 텐데, 어째 계속 듣기만 하고 웃기만 하시네요. 꼭 묵언수행 하시는 분 같아요." 

저는 그날 들을려고 갔거든요. 탈핵 원전이라는 깃발을 들고 제주에서 임진각까지 걸어서 국토 순례를 하는 이들은 어떤 분들일까. 어떤 사연을 가지고 길에 나선 걸까? 


'천명'이라는 분이 있는데요. 몇 년 전, 일본 원전 사고를 보고, 핵발전의 위험성을 절감하고 탈핵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대요. 국민들에게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알리려고 혼자 도보 순례라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는데요. 문득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면 이미 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매년 해마다 도보 순례를 다니는 분들이 있던 거죠. 모르는 사람들과 몇 달을 함께 생활하는 게 두렵기도 했는데요. 매일 밤 성당에서 잔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놓였다고 해요. 이 분들은 천주교 신자로서 성당에서 주무시며 전국을 걷습니다. 성당 학습실 같은 곳에 침낭 펴고 주무신대요. 한걸음 한걸음 기도하는 마음으로 걷는답니다.  


박보영 선생님이 보내주신 도보 순례 일정을 보고, 마지막 2구간이 서울을 지나가는 걸 보고 주말을 이용해 합류했습니다.

그날 점심에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에서 활동가분이 오셔서 뜨끈한 북어국을 끓여주셨어요. 시장하면 먹으라고 맛난 주먹밥까지 싸주셨어요. 용인 사시는 어떤 분은 탈핵 도보 순례단을 응원하려고 간식 사들고 파주까지 오시기도 했어요.  

문득, 세상 참 살만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 좋은 일에 뜻을 보태고 몸을 보태들이 많더라고요


오전 9시에 걷기 시작해 파주 금촌2동 성당에 도착하니 오후 5시였어요. 25킬로를 걸었네요. 전국 각지에서 오신 순례단원들은 성당에서 주무셨고요. 저는 전철을 타고 집에 왔다가 다음날 아침에 다시 갔어요. 다음날에는 파주에서 출발해 임진각까지 20킬로를 걸었지요. 

임진각 근처에 가다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탱크가 지나가더군요. 

도로를 질주하는 전차를 보며, 군사분계선이 멀지 않다는 걸 실감했어요. 

국토대장정 도보 순례의 종점, 임진각입니다. 저는 불광동에서 임진각까지 이틀만 걸었지만, 33일간 650킬로를 걸어 이곳에 도착한 분들은 얼마나 감개무량할까요. 


도보 순례를 마치고 마음 나누기를 할 때,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세상을 바꾸는 건 행동이라고 하지만, 액션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액션이 어려울 때는 리액션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누군가 나서서 행동을 할 때, 리액션으로 힘을 보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탈핵 운동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참고하셔도 좋아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또 길위에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facebook.com/nonukespilgri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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