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국내여행

느리지만 멈출 수 있는 자전거 여행

by 김민식pd 2018. 11. 6.

2018 자전거 전국일주 9일차 여행기 


아침 일찍 일어나 바다를 향해 달립니다. 삼척항을 지나며 보니 여기에도 바닷가 걷기 여행 코스가 있네요. 이름이 이사부길이랍니다. '독도는 우리땅' 노래에 나오는 분이지요.

언젠가 퇴직하면 전국의 걷기 여행 코스만 찾아다녀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동해안을 자전거로 달리는 게 이번이 세번째입니다. 1987년 자전거 전국일주 당시 가장 아름다웠던 구간이에요. 동해안 7번 국도. 그때 딱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바닷가에 군경계용 철조망이 높이 있어 항상 바다 전망을 막았던 점이에요. 이번에 여행하면서 보니 높은 철망이 거의 제거되었군요.

'새천년 해안도로는 삼척 해수욕장과 삼척항을 잇는 약 4.7km의 해안 드라이브 코스이다. 

삼척시는 2014년에 이 해안도로를 따라 보행데크를 설치하였으며, 2017년 12월에 미 개통으로 남았던 약 800m 구간의 군경계 철책을 철거하고 보행 데크를 완전히 개통하였다. 이를 기념하여 이곳을 삼척시 해안 길의 시작점으로 정하고 원덕읍까지 약 104.5km에 이르는 해안선을 연결하는 명품 해안길 조성사업을 추진한다. 그리고 이 길의 이름을 동해왕 이사부 장군의 해양개쳑 정신을 기려 "이사부길"이라 명명한다.'


87년 철조망의 아쉬움이 사라졌어요. 남북한 평화 모드와 함께 이것도 또한 반가운 변화입니다. 


조금 달리다보니 삼척해변이 나옵니다. 바닷가 해수욕장이 마치 동남아휴양지에 온 느낌입니다. 화려한 바닷가 모텔촌도 있고요. '아, 어젯밤 여기까지 왔어야했는데!' 하고 뒤늦게 이마를 칩니다. 어제 해 떨어질까봐 무서워서 삼척 터미널 근처에서 숙소를 잡았거든요. 오늘은 기필코 바닷가 모텔을 잡고, 내일 아침은 동해 해돋이를 방에서 볼 겁니다.


저는 철 지난 해수욕장에 와서 해변을 걷는 걸 참 좋아합니다. 여름 바다와 가을 바다는 느낌이 또 달라요. 화려함 대신 고즈넉함이 있지요. 


동해안 자전거 길 지도를 보면 인증센터 이름 중 하나가 '추암 촛대바위'입니다.


와서 보니 김홍도 화백이 그린 금강사군첩의 소재가 된 풍경입니다. 


파도가 만들어낸 기암괴석의 모습이 절경을 이룹니다. 추암 촛대바위, 처음 와 봤어요. 예전에 한번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에요. 경치가 좋아 자전거를 묶어 놓고 혼자 산책을 하며 한참을 쉬었다 갑니다. 이 좋은 곳을 왜 몰랐을까요?

나름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동해안에 올 때는 늘 자동차로 왔어요. 서울에서 오면, 양양 낙산사나 정동진, 속초, 강릉까지 왔다가 동해안 바다를 보고 돌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삼척까지 내려오거나 고성까지 올라갈 일이 없어요. 동해안 바다를 보는 순간, 끝, 하고 돌아간 거죠.


자전거로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니 샅샅이 훑고 가게 됩니다. 놓치는 풍광이 없어요. 자전거는 속도가 느려, 가다가 멋진 풍광이 보이면 바로 세울 수 있어요. 기차를 타거나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주변 풍광이 멋지다고 바로 멈출 수가 없잖아요? '야, 저기 좋은데?' 하는 순간 이미 지나가버린 후지요. 자전거는 '아, 좋은데?'하면 바로 세울 수 있어요. 느리지만 멈춤의 미학이 있어 좋은 자전거 여행.



한섬해변, 아무도 없고요. 아무런 시설도 없는 곳이에요. 해변에 낡은 평상 하나 있어요. 평상에 걸터앉아 잠시 쉬어갑니다.

이렇게 여행을 다니다보니 60대 자전거 여행 작가인 벨칙씨의 삶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이 납니다. 체력이며 정신력이 다 대단하세요. 그 나이에 낯선 나라에 자전거를 타고 와서 한적한 해변에 텐트치며 노숙하고 여행 다닌다는 게 보통이 아닌 것 같아요. 

금진해변에는 서퍼들이 파도를 타고 있었어요. 서핑 보드를 들고 바다로 걸어들어가는 한 여성의 모습에 문득 걱정이 되더군요. '아, 이렇게 싸늘한 날씨에!'

예전에 누가 나이 든 여자와 젊은 여자의 구분법을 말해준 적이 있어요.

추운 겨울에 누가 예쁜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온 걸 보고 드는 첫 생각이

"아이고 야야, 날도 추운데..." 하면 나이 든 여자고요.

"어디 꺼지? 예쁜데?" 하면 젊은 여자래요.


그런 점에서 저도 이제는 늙었나봐요. "아이고, 날도 추운데.... 파도를 탄다니..." 하면서 걱정이 앞서거든요. 30대의 저라면 "와, 서핑이라니, 재미있겠다. 나도 해볼까?" 했을 텐데 말이지요... 


하루 종일 바다 구경을 했더니 점심은 생선이 땡깁니다. 횟집에 들러 회덮밥을 먹었어요. 12000원. 

해변엔 카페가 많고요. 항구에는 횟집이 많아요. 배들이 늘어선 곳 주위엔 횟집이 있지요.


가을이라 황금들판이 펼쳐집니다.

안목해변을 지나갑니다.

오후 3시에 라이딩을 접고 강릉 경포 해수욕장 인근 게스트하우스에 입실합니다.

온돌방 독실이 4만원이에요. 도미토리가 3만원인데요. 자전거 여행 할 때는 독실을 선호합니다. 피곤해서 코를 골지도 몰라요. 민폐지요. 독실을 쓰면,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 책읽기도 편하지요.

이걸 저는 '만원의 행복'이라고 부릅니다. 만원 더 내고 독실 씁니다. 나이 50에 누리는 사치에요. 나이 들어 좋은 것도 있어요.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게스트하우스 꼭대기에 있는 카페에요. 오늘은 여기서 책을 읽습니다. 오늘 하루 이동거리는 60킬로로 짧은 편입니다. 자전거를 탄 시간은 4시간밖에 안되고요. 동해안 자전거 길에는 예쁜 해변이 많습니다. 중간에 자주 쉬고요. 바닷가에 앉아 멍때리는 시간도 많아요. 심지어 오후에는 일찍 접고 푹 쉽니다.


오후 3시에 방을 잡고, 해질 때까지 경포 해안에서 책도 읽고 산책도 하며 쉬었어요. 동해안 자전거 여행은 일정을 여유롭게 잡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녁도 회덮밥을 먹었어요. 15000원.


횟집에서 혼자 먹기엔 회덮밥이 최고지요.

하루 경비는 7만원 정도 들었군요. 

다음 날에도 아름다운 동해안 바다를 달릴 생각에 두근두근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