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문화대학에서 메일이 왔어요. 신입생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달라는 청탁이었어요. 살짝 고민이 됩니다. 저는 학교나 기업 강연보다 도서관 강연을 좋아합니다. 싫어도 억지로 듣는 사람과, 스스로 시간을 내어 달려온 사람은 반응이 다르거든요. 평일 낮에 지방에 가려면 하루 연차를 쓰는데요. 그렇게 갔다가 학생들이 강연 도중 잠을 자거나 수다를 떨면 유리 멘탈에 상처를 입죠. 그런데 메일을 읽다가 '음, 여기에는 가야겠군.'했어요. 메일을 쓰신 대학 실무자께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읽고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을 사서 60강까지 외우셨다고 하더군요. 제 책을 읽고 나니 학생들에게도 꼭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요. 선생님의 글에 감동을 받아 넙죽, 가겠다고 했어요. 다만 이럴 때, 저는 안전장치를 답니다. 막상 강연에서 학생들에게는 상처를 받을 수 있어요. 소중한 하루를 날린 기분이 들지요. 저의 안전장치는 여행을 겸한 출장을 가는 겁니다. 한국전통대학을 네이버 지도에서 검색하고, 근처에서 여행지를 찾아봤어요.   

남부터미널에서 8시 10분 버스를 타니 9시 50분에 충남 부여군 터미널에 도착했어요. 

터미널에서 걸어나오니 근처에 부여 중앙시장이 있어요. '백제 담은 중앙 시장', 백제의 도읍지다운 문구네요.

터미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정림사지입니다.

6세기 중엽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정림사지 5층 석탑. 백제는 불교 문화가 융성했던 곳이지요. 일본으로 불교를 전수한 나라이기도 하고요.

정림사지 박물관에 들러 탑의 유래와 제작 과정을 살펴봅니다.

다양한 자료를 통해 탑의 건립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도보 여행하듯 느긋이 박물관을 거닐며 구경합니다.

나와보니 5층석탑 앞에서 어린 학생들이 무술 시범을 보이고 있었어요.

이제 다시 걸음을 옮겨 부소산성으로 향합니다. 1킬로 거리라 천천히 걸어가면 됩니다.

부소산성 입구에 특이한 건물이 있어 뭔가 하고 보니 가상체험관이에요.

3D 영화, VR 비행 체험, 백제 문양 그리기 등 부여의 유적을 설명하는 다양한 콘텐츠로 가득한 곳입니다. 신기하면서도 즐거웠어요. 전통 문화 유산을 최신 영상 콘텐츠로 소개한다는 게 참 신선한 시도네요. 

아이들이 좋아할 공간이에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민서랑 같이 오고 싶습니다.

부소산성 산책에 나섭니다.

멋진 정자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는데요.

이곳이 백제 패망의 슬픈 역사를 담은 낙화암입니다. 절벽에서 뛰어내린 궁인들의 모습이 꽃이 지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낙화암 아래에 있는 고란사. 그렇죠, 슬픈 역사 뒤에는 그들의 넋을 기리는 절이 있어야죠. 

사비길,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이 길도 걷고 싶네요. 이제는 지역에 가면 어디든 도보 여행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어 좋아요.

경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신라 시대 유적지는 친근한데, 정작 백제 유적지는 처음 온 것 같아요. 한국 내에서도 봐야 할 게 이렇게 많은데 말이죠.

2시간 반 정도 걸으며 부여를 돌아본 후, 강연하러 갑니다. 다행히 그날 강연은 반응이 좋아, 학생들도, 저도 모두 즐거웠어요. 강연은 쌍방향 소통인지라, 청중의 분위기가 꽤 큰 몫을 하거든요. 

제가 꿈꾸는 노후입니다. 일과 놀이와 공부의 삼위일체. 평소에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요. 불러주시는 곳이 있으면 달려가 일을 하고요. 그러면서 근처에서 여행을 즐깁니다. 하루 휴가를 내어 퇴직 후의 삶을 예행연습삼아 살아보니 참 즐겁네요. 이렇게 또 여행자로 사는 하루가 저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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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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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리랑 2019.03.12 0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삶이 훌륭한 컨텐츠가 되니 축하축하합니당~♡ 20년 넘게 한해 수차례씩 공주부여 옆을 지나다니며, 아쉬워 하면서도 한번도 들른 적이 없네요ㅠ 안전장치가 있는 삶~ 캬~~

  2. 아리아리짱 2019.03.12 0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PD님 아리아리!

    부여!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역시김피디님의 눈을 통해 보는 부여는 또 의미가 주어집니다.

    일과 놀이와 공부의 삼위일체,
    우리 모두는 지구별의 여행자 입니다. ^^

  3. 꿈트리숲 2019.03.12 07: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전 공주, 부여를 백제 문화 탐방이라
    생각하고 갔었는데, 막상 볼거리가 너무
    없어 실망을 했었어요. 지인들도 그러시고
    오늘 피디님 글에서도 느껴지는게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네요.
    다시 한번 백제 문화 탐방길에 나서야 할까봐요.

    강의와 여행을 콜라보 한 아이디어 아주 좋네요.
    삶의 안전 장치는 플랜 B를 마련해두는 것만
    생각했는데, 다소 거리가 있는 걸 묶는 것도
    좋은 방법이군요.^^
    덕분에 백제 여행 잘 했습니다.~~

  4. 은하수 2019.03.12 0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여? 나도 갔었던 것 같은데...
    정림사지,부소산성...
    아! 낙화암과 바로 그 밑에 자리한 조금 특이한 이름의 고란사 절 사진을 보고
    맞아! 10년도 훨씬 전에 하루 여행을 갔었구나 하는 기억이 떠오릅니다.
    현대식으로 백제문화 체험하는 시설은 새로 생긴 것 같아요.
    그때 블로그를 했다면 그날의 추억이 블로그 페이지 하나를 장식하고 있을텐데요.
    그날 찍은 사진들은 다 어디 갔을까요?
    다시 한번 블로그 기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안전장치ㅋ
    안전장치라는 말씀에 키득 웃었습니다.
    역시 pd님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연 전에 일찌감치 가서 여유롭게 여행지를 둘러보시며 담아가시는 모습이 오늘의 저의 삶도 일깨워주십니다.
    저도 언제 아이와 함께 백제의 부여 길을 걷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5. 한성희 2019.03.12 0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강연을 직접 찾아가서 들어본 1인입니다.
    너무 집중해서 들었었지요^^~~

  6. 샬롬 2019.03.12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과 놀이와 공부의 삼위일체 !!
    어록입니다 ^^
    오늘도 아프고 느슨한 마음을 pd님의 글을 통해 다독여 봅니다.

  7. 알 수 없는 사용자 2019.03.12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은 시간이 우선이시군요 ㅋㅋ
    저도 강연 직접 듣고 싶어요~~
    그러나 달달 외워야만 만날수 있는 전제 조건이 있기에
    외웁니다.흐흐..

    글구..
    드디어 티스토리로 댓글을 달게 되었어요 오예~

  8. 김현영 2019.03.12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정 삶을 즐길 줄 아시는 피디님....
    일하러 가시면서 효도 하시고 좋아 하시는 사람들과의 만남(강연).
    느릿느릿 걸으면서 느끼는 삶의 여유.....

    은퇴 후 삶을 차근 차근 준비해 가시는 피디님 뵈면서 많은 반성이 됩니다.
    저도 오늘부터 1일차!
    은퇴 후 삶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을 보색해 봐야겠습니다!

  9. 그리움 2019.03.12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역시 이런 삶을 꿈 꿉니다. 안전장치 참 좋습니다.^^ 일하러 가는 김에 여행도 하고요.

  10. 알 수 없는 사용자 2019.03.12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과 놀이와 공부의 삼위일체. 평소에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요. 불러주시는 곳이 있으면 달려가 일을 하고요. 그러면서 근처에서 여행을 즐깁니다. "

    너무너무 공감되는 삶입니다. 저도 이런 삶을 꿈꾸어 봅니다~~~^^

  11. 섭섭이짱 2019.03.12 19: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부. 부지런한 피디님
    여. 여행(놀이)과 강연(일)과 공부를 함께 하시고 오셨군요.
    걷. 걷고 싶었으나 그 동안 춥고 미세먼지 때문에 못 다녔는데 드디어
    기.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오네요
    여.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행. 행복한 여행자로의 삶 꿈꿔봅니다. 피디님처럼







  12. 지네 2019.03.12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이 너무 멋있어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작가님의 강연을 꼭 듣고 싶습니다. 작가님이 찍은 멋있는 사진을 보니 저도 홀로 부여 여행을 떠나볼까 생각하게 되네요ㅎㅎ

    좋은 것을 봤을 때,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던데 민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잘 느껴지네요^^

  13. 샘이깊은물 2019.03.12 2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디 멀리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훌쩍 낯선 곳으로 몸을 실었을 때 번졌던 잔잔한 설렘이 문득 떠올라요. 맞아, 그랬던 때가 있었지..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같이 우리 나라 이곳저곳을 다니고 싶어요. 낯선 곳에서 함께 보고 느끼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일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집니다.
    꿈꾸시는 ‘일과 놀이와 공부의 삼위일체’, 참 근사해요. 저도 배움과 유희와 생산적인 일이 조화롭게 충만한 노후를 그립니다.^^

  14. 미쓰크리스탈 2019.03.14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편 고향서천을 가는길에 잠깐씩 보았던 부여~
    피디님 글로보니 또 다르게 보이네요.
    4월엔 남편 환갑기념 남도여행을 준비중인데 갑자기 든 생각이 올라오는길에 시아버님 산소에 들러 감사인사도 드리고 부여도 한번 돌아보고 와야겠네요.
    피디님 책,글 잘보고있습니다~^^
    매일 쓰려고 노력하는중입니다~
    응원합니다~
    감사해요~^^

  15. 토토짱 2019.03.15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주 부여 가고싶다는 마음만 가졌는데,
    피디님이 와~~ 가봐라! 이리 잘 담아주시네요.
    봄날 아들과 남편 꼬드겨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영어한번.. 잘 읽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