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모교에 가서 강연을 했습니다.
TED x 한양,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오늘은 그 강연 원고를 공개합니다.
안녕하세요, 한양대 92년도 졸업생 김민식입니다. 87년도에 한양대 산업공학과에 지원했는데요, 내신등급이 10등급에 5등급이라, 낮은 내신 탓에 1지망 떨어지고 2지망 합격했습니다. 원하던 전공도 아니라 공부에 의욕도 없어 학점은 바닥을 기었습니다.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영어를 공부했어요. 종합상사에 취업해서 세계를 무대로 주름잡으며 Made in Korea 제품을 파는 무역상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무역상사 7군데 원서를 냈는데 단 한 곳도 받아주지 않았어요. 무역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더군요. 전공을 살리지 않고 취업할 수 있는 길은 뭘까요? 영업사원을 하면 됩니다. 영업은 전공 불문이거든요. 외국계 회사에 입사해서 치과 외판 사원으로 일했는데요. 매일 같이 치과로 영업을 다녔습니다. 이가 아파서 울고 찡그린 환자들이 가득한 치과 대기실에 웃으며 들어갈 때마다 괴로웠어요. 직장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 사표를 쓰고 나왔습니다. 직장 생활이 맞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하면 될까요? 프리랜서를 하면 됩니다. 프리랜서 동시통역사가 될 생각으로 외대 통역대학원에 입학했는데요. 세미나 통역을 하며 느꼈어요. 난 남의 이야기를 옮기는 걸 즐기는 사람이 아니구나. 오히려 나의 이야기를 직접 하고 싶었어요. 심지어 영어 공부 삼아 보던 미국 시트콤에 빠져버렸어요. 이렇게 재미난 시트콤이 왜 한국에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 MBC에 PD로 입사했습니다. 통역사로 남의 말을 옮기기보다 피디가 되어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요.
제가 만들고 싶은 건 재미난 시트콤이었습니다. 제가 수습사원으로 일하는 동안 <남자 셋 여자 셋>이라는 새로운 시트콤이 생겼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조연출로 일하고 싶어 지원했지만 인사 발령에서 물을 먹고 엉뚱하게 <인기가요 베스트 50>이라는 프로그램의 조연출이 되었습니다. 신입 조연출로 제일 먼저 한 일은 순위 소개 코너를 촬영하는 일이었는데요. 가수를 일일 순위 소개 리포터로 기용해 촬영했습니다.
“이번 주 32위는 지난주에서 열 일곱 계단 상승한 알 이 에프의 ‘고요 속의 외침’입니다.” 하는 식으로요. 가수들은 이 코너를 찍는 걸 힘들어 했어요. 숫자로 소개되는 순위도 정확하게 외워야 하고요. 낯선 가수의 어려운 신곡 제목도 일일이 암기해야 하거든요. 하기는 싫은데 공중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무대에는 서야 하니까 제작진의 섭외에 싫다는 소리도 못하고 억지로 했어요. 심지어 제작비가 없어서 제대로 된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수 없어 MBC 건물 옥상에 파란 색 크로마키 천을 배경으로 찍어야 했어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옥상에서 최대한 발랄하고 유쾌하고 예쁘고 멋진 표정을 주문해야 하는 일은 정말 힘들었어요. 그때마다 시청률 잘 나오는 인기 시트콤에 발령이 나 배우들과 어울려 매일 재미나게 촬영하는 입사 동기가 무척 부러웠어요.
세월이 흘러 저도 오랜 세월 지망해온 청춘 시트콤의 연출이 되었어요. <뉴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을 만들게 되었는데요. 중간에 갑자기 배우가 빠지게 되었어요. 양동근이라는 배우와 한창 러브 라인을 진행하던 배우가 빠져 제작진은 난리가 났지요. 당장 다음 주부터 새로운 배역을 투입해야 하는데 오디션도 하고 드라마도 뒤져봤지만 딱히 눈에 띄는 신인 연기자가 없었어요. 토요일에도 회사에 나와 몇 시간을 회의를 했는데 답이 보이지 않아 다들 지쳤어요. 그때 누가 “밥 먹고 합시다!” 해서 다 같이 나가서 저녁을 먹었어요. 당시 여의도 MBC 인근 설렁탕집에 갔는데 마침 그 집에서 저녁 6시에 MBC를 틀었는데 제가 예전에 일했던 <인기가요 베스트 50>이 나왔어요.
마침 순위 소개 시간이기에 요즘은 어떻게 하나 TV 화면을 봤어요. 어떤 신인이 나와서 순위를 소개하는데, 귀엽고 깜찍하고 재밌는데 심지어 코믹 감도 뛰어나 웃기기까지 했어요. ‘오홀 저런 친구가 다 있네?’ 저녁 먹고 돌아와 담당 PD에게 연락을 했죠. 순위 소개하는 친구가 누구냐고. 그날 밤 11시에 바로 논스톱 회의실로 불러 오디션을 봤어요. 모든 작가와 연출진이 만장일치로 합격점을 줬고, 바로 그 다음 주부터 투입되었어요. 그게 바로 장나라였어요.
한 번도 연기 경험이 없는 장나라를 청춘 시트콤에서 전격 기용한 이유가 뭘까요? 저는 순위 소개하는 장면을 보고 느꼈어요. ‘아, 저 친구는 대본을 잘 외우나보다.’ 신인을 캐스팅하면 대사를 못 외워 속썩이는 친구가 많거든요. 장나라씨는 그럴 것 같지는 않았어요.
장나라 씨는 원래 대형 기획사에서 아이돌 그룹 데뷔를 하려고 했는데요. 멤버로 발탁되지 못했어요. 할 수 없이 작은 회사로 옮겨 솔로로 데뷔를 했지만, 음반 반응이 신통치 않아 고심하고 있었어요. 그때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순위 소개 코너 진행을 맡긴 거죠. 다른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팬들의 박수갈채 속에 노래를 할 때, 본인은 크로마키 천 앞에 서서 50곡의 순위와 가수 이름과 노래 제목을 일일이 외워 최대한 깜찍한 표정으로 연기를 해야 했어요. 아마 촬영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럼에도 장나라는 열심히 했어요. 그 순위 소개가 시트콤 출연으로 이어지고, 논스톱에서 재미난 연기를 선보인 덕에 가수로서의 경력도 성공궤도에 올랐어요. 지금은 가수로도, 배우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요. 배우가 되기 위해 순위 소개를 한 건 아니지만, 때로는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주기도 해요.
(2014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장나라. MBC 드라마 피디인 이동윤, 이상엽과 함께.
장나라 팬클럽인 PD 3인방 ^^)
시트콤을 열심히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 MBC에서 시트콤이 사라져버렸어요. 고민하다 드라마국으로 옮겼어요. 드라마 피디가 되어 로맨틱 코미디를 계속 만들고 싶었어요. 2011년 드라마 PD로 한창 일하고 있던 제게 노동조합에서 부위원장으로 일해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노동조합에서 예능과 드라마 피디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싶은데, 예능 피디도, 드라마 피디도 선뜻 노조 일을 맡는 사람은 없었어요. 마침 두 분야를 다 겪어본 제가 눈에 띄어 부위원장직을 제의한 거죠. 내키지는 않았지만 받아들였어요.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지요. 제가 MBC에 입사해서 즐겁게 일을 한 건, 노동조합이 강한 회사라 상부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거절할 수 있고 연출의 제작 자율성이 보장된 덕분이거든요. 그래서 부위원장이 되어 열심히 일했는데요, 하필 2012년에 파업이 시작됩니다. 집회를 쫓아다니며 가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난 코미디 피디인데, 왜 파업 집회에 나와서 이러고 있나? 난 누구인가, 또 여긴 어딘가?
기왕에 노조 집행부로서 일을 한다면, 예능 피디답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파업영상을 만들어도 더 기발하게 만들자. 파업 집회를 해도 콘서트 형식으로 더 즐겁게 만들자. 사장더러 나가라는 이야기를 해도, 혼자 목청 터져라 회사 앞에서 1인시위하며 구호를 외치기보다는 좀 더 재미나게 영상을 만들어보자. 피디답게 재미난 콘텐츠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각종 팟캐스트에도 나가고 유튜브에도 출연했더니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피디님이 연출한 드라마는 못 봤는데, 피디님이 출연한 영상은 봤어요.” 이거 드라마 피디한테 칭찬인가요?
노조 집행부로 일한 후, 7년간 제 이름으로 된 드라마를 한 편도 못 만들었어요. 2015년에는 심지어 편성국 주조정실로 발령이 났어요. MD라 하여 방송 송출 업무를 맡았는데요, 주로 하는 일은 연령 고지 숫자를 넣거나, 뉴스 예고 자막을 타이핑해서 송출하는 일이었어요. 교대근무로 일하며 하루 24시간 방송 송출의 최종 책임을 지는 일이에요. 저와는 상의도 없이, 아무런 언질도 없이 이뤄진 발령이었어요. 많이 힘들었지요.
하루하루 출근하는 게 정말 괴로웠어요. 어떻게 하면 출근길을 좀 더 즐겁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다 타고 다니던 차를 아내에게 주고 전철로 통근하기 시작했어요. 왕복 3시간 전철에서 매일 재미난 책을 찾아 읽었어요. 독서가 참 좋은 게요.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책을 펼치면 책 속 세상으로 바로 빨려 들어갈 수 있어요. 현실은 잊고 허구의 세상 속에 빠져 살 수 있지요.
하루는 옥수역에서 한남역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창밖으로 펼쳐진 한강을 보았어요. 그러다 한강 자전거 길을 보았어요. 출근하기 괴롭다면, 출근길이라도 즐거워야 하지 않을까? 새벽에 일어나 한강 자전거길을 달렸습니다. ‘지금은 한강을 달리고 있지만 언젠가 퇴직하면 유럽 자전거 일주를 할 거야.’ 매일 매일의 자전거 통근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어요. ‘나는 지금 유럽 대륙 자전거 일주를 위한 전지훈련을 하는 중이다.’ 그렇게 체력을 기른 덕에 지난 추석에는 자전거를 타고 열흘간 전국일주를 했어요. 4대강 자전거 길을 달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어요. 울진에서 속초 강릉 지나 고성까지 올라가는 동해안 자전거 길도 달리고요.
기왕에 유배지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유배 간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책을 쓰듯, 유배문학이라도 하자 싶었어요. 거창한 책은 아니고요. 매일 소소하게 블로그에 글 한 편 씩 올렸어요. 전날 읽은 책에 대해 리뷰를 쓰거나, 서울 근교 자전거 여행기, 혹은 20대에 독학으로 영어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글을 썼어요. 그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책을 냈지요. 유배지에서 쓴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는 14만 부가 넘게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요. 회사가 정상화된 지금은, 드라마도 만들고, 책도 쓰고, 강연도 다닙니다.
살다보면 그런 때가 와요. 난 누구인가, 또 여긴 어딘가? 기차를 잘못 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해요. 엉뚱한 기차를 탄 나 때문에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즐거운 여행의 동반자가 되는 거지요. 기왕에 잘못 탄 기차, 느긋하게 창밖 풍경을 감상하며 가는 편이 나을 지도 몰라요. 그 기차 여행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도 있고, 뜻밖의 풍경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검색의 시대, 정보 과잉의 시대를 삽니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도, 영화를 선택하는 것도, 항상 수많은 정보를 검색하고 리뷰를 통해 결정을 내려요. 마치 우리는 인생의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결정하며 산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은 사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십 몇 년을 공부해서 준비했는데 내가 가고 싶은 곳에서는 나를 받아주지도 않고요. 어쩌다 취직한 곳이 꿈의 직장이 아닐 수도 있어요. 딱히 달아날 곳도 없어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내야 할 때도 있고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줍니다. 이 기차가 아닌가봐 분노하는 대신, 기왕에 탄 열차, 즐겁게 여행이라도 즐기는 거지요.
매년 초가 되면 우리는 결심을 하지요. 올해는 영어 공부를 하겠어, 올해는 다이어트를 하겠어, 올해는 자격증을 따겠어. 저는 새해 목표를 따로 세우지 않습니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 그날 가장 하고 싶은 일을 가장 열심히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계속 하다보면 좋아하는 일이 잘 하는 일이 되고요.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은 언젠가 직업이 될 수도 있어요. 안 되면 또 어때요? 좋아하는 일을 실컷 했으니 그걸로 된 거죠. 인생은 대충 대충 삽니다. 대신 하루하루 열심히 알차게 살아요.
행복한 인생은 무엇일까요? 행복을 신경 쓰지 않는 삶입니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사는 겁니다. 이렇게 즐거운 하루하루가 이어져 언젠가는 행복한 삶으로 존재하기를 희망합니다.
배우가 되기 위해, 순위 소개를 하는 건 아니에요. 작가가 되기 위해 유배지 발령을 자원하는 사람도 없고요. 하지만 때로는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줍니다. 즐겁게 지낸 나의 하루가 언젠가 의미있는 인생이 될 거라 믿으며, 오늘 하루를 삽니다.
더욱 즐거운 한 해 맞으시고요. 올해에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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