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교보문고에서 저자와 독자가 만나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는데요. 오늘은 그 후기를 공유합니다. 모임을 잘 정리해주신 블로그 기자님, 고맙습니다!


다른 독자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회초년생이다 보니 이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개인이 조직에 꼭 적응해야 할까? 애초에 개인에게 맞는 조직이 있기는 할까?” ‘나’라는 울타리를 떠나 세상에 발을 디뎌본 무수한 사회인들이 통과의례처럼 거쳐 갔을 고민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 궁금했다. “개인을 조직에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의 욕망에 아주 충실하게 삽니다. 다만 나의 욕망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은, 나의 욕망만큼이나 타인의 욕망도 긍정해줘야 돼요. 그리고 ‘과연 나는 옳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져봐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 저는 책을 많이 읽으려 해요. 혹시라도 제가 그릇된 판단을 내리고 잘못된 길로 가면서 고집을 세우는 건 좋은 길이 아니잖아요.” 


이 모든 것을 헤아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민하고, 거기에 주위 상황까지 살피다 보면 생각이 깊어져 선뜻 행동하기 어려울 때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김민식 작가는 “때로는 다 볼 필요 없어요. 집중해서 보는 거예요”라는 말을 던졌다. “저도 학교에 강의 가보면 자는 애들 많거든요(웃음). 그런데 그 와중에 눈이 반짝반짝하는 애들이 있어요. 그 아이들에게는 제가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또 제가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겠죠. 그러면 그것만 보고 가는 거예요.” 숲 전체를 돌보기가 벅차다면, 숲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내려놓고 한 그루 나무에 정성을 쏟는 방법이랄까. 


그렇다고 김민식 작가가 숲을 포기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워낙에 큰 인기를 끌고 화제가 되는 시트콤을 만들어왔던 그인지라, 트렌드를 읽어내는 눈이 밝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 독자가 그에게 대중의 관심을 파악하는 비결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조금은 의외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세상을 연구하는 게 별로 의미가 없더라고요. 저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 거라고 예측했던 게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걸 다 했어요.” 그러면서 한 가지 예를 들었다. “만약 엄마아빠가 앞으로는 부동산이 주류라고 해서 공인중개사가 됐다고 칩시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나빠지면, 좋아하지도 않는 걸 열심히 한 게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세상의 흐름을 좇아가는 건 이렇듯 허망할 수 있어요. 그래서 세상의 흐름을 보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나를 보는 일입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운 사람인지를요.”  


만약에 어떤 사람을 하나의 도구에 비유한다면, 김민식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짚어내는 나침반일 것 같았다. 세상을 탐색할 때도, 재미있는 것을 물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재미있는 것을 찾느냐는 질문에 그는 “일단 스스로 해보는 편”이라고 답했다. 춤만 해도 그렇다. 작가의 중고등학교 시절, 나이트클럽은 불량 학생들이 가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컸다. “그런데 87년도에 나이트에 처음 가보니까, 조명은 막 돌아가고, 음악은 둠둠 하는 게 심장이 같이 뛰는 것 같고. ‘여기는 천국이 아닌가? 이렇게 좋은 걸 엄마아빠는 왜 못 가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때부터 당연히 재미의 여부는 타인의 잣대가 아니라 직접 해보고 나서 판단할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뭐든 스스로 겪어본다는 그의 신조 덕분인지, 김민식 작가는 여러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다. 방송국 피디라는 한 가지 일만 해도 충분히 바쁠 텐데, 저서를 내기도 하고 또 꾸준히 블로그를 운영하는 등 손에서 펜을 놓지 않는다. 한 독자는 지금은 의사로 일하고 있지만, 동시에 작가로서 글도 쓰고 싶다며 조언을 구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1퍼센트가 되고 싶어 하잖아요. 사실 요즘은 경쟁이 치열해서, 어느 한 분야에서 상위 1퍼센트가 되기란 정말 어려워요. 자 그런데, 목표를 상위 30퍼센트로 잡는 거죠. 왠지 그 정도면 노력해 볼 수 있을 거 같지 않아요? 자, 봐요. 먼저 상위 30퍼센트의 의사가 된다고 합시다. 그리고 책을 써요. 근데 꼭 베스트셀러를 쓰겠다고 마음먹지 말고, 한 30퍼센트 정도 안에 들어가는, 적당히 팔리는 책을 써보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이 교집합을 생각해 봐요. 대한민국에서 책을 쓰는 의사는 1퍼센트밖에 없단 말이죠. 그게 요즘 제 전략이에요. 맨 처음에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썼을 때가 그랬어요. 그 많은 피디들 중에서 통역사는 없으니까. 통역사는 많은데, 그중에서 시트콤 피디는 저밖에 없으니까. 그 교점에서 저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위치를 찾아냈던 거죠. 심지어 나이를 먹어가면서, 교집합을 이루는 원을 하나씩 더 만들어갈 수 있어요. 내가 있는 곳에서 저 위로 올라가려고 할 게 아니라, 옆에 어떤 원을 하나 더 만들 수 있을까를 궁리하면 됩니다.” 


[출처] 김민식 작가와의 점심, 교보문고 보라런치|작성자 VORA


도서관 강연을 가면, 질의응답 시간이 가장 즐거우면서도 어려워요. 이게 즐거운 건, 내가 준비한 이야기만 반복하면 지루할 수 있는데,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게 어려운 건, 내가 정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세상에는 정답이 없어요. 사람마다 더 잘 맞는 답이 있을 뿐... 그럼에도 누군가 질문을 던지면, 그걸 단서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죠. 독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저는 세상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요. 내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게 됩니다. 추운 날씨에, 찾아와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전체 소식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https://blog.naver.com/vora_kyobobook/221437209503


2000년 '논스톱' 시트콤 사랑 정모에서 나눠드린 대본을 가져오신 이상화님, 반가웠어요!

피디로 일하면서 꾸준히 다음 카페나 블로그에 글을 올렸어요.

그 덕분에 작가라는 직업도 얻고,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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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가오 2019.01.24 0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를 먹어가면서 위로 올라가려고 할 게 아니라 옆에 교집합을 이루는 원을 하나씩 만틀려고 궁리한다~너무 멋진 말이네요~^^

  2. 섭섭이짱 2019.01.25 06: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보리런치 궁금했는데... 즐거운 시간보내셨군요.^^
    그러고보니 피디님과 식사할 그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네요. ^^

    근데 자꾸 논스톱 대본에 눈길이 가네요
    나도 드라마 대본
    갖고싶다~~ 갖고싶다~~~ ㅋㅋㅋ

    p.s) 피디님 보시고 싶은 분들은 공개강연이 있으니 신청 하세요 자세한 신청방법은 아래 사이트에서

    일시 : 3/23(토) 오후 2시
    장소 : 광화문 교보빌딩

    https://www.vora.co.kr/feed/post.asp?idx=13963

  3. 꿈트리숲 2019.01.25 06: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보문고에서 보라쇼 테마 코너를 따로 마련하고
    작가님과 독자의 만남 사진을 전시해 두었더라구요.
    보라런치 당첨되지 못한 아쉬움을 대리 만족으로
    잘 달랬습니다.ㅎㅎ

    후기글을 읽어보니 질문을 벼리고 벼리고 나오셨는지
    질문 수준이 깊고 깊어요. 사회 초년생 뿐만아니라
    중년을 향해 달리고 있는 저도 아직 속 시원히 풀지
    못한 고민들인데, 작가님 말씀에 그 해답이 있네요.

    숲 전체를 보기가 벅차다면 나무 한그루에 집중!!!

    저도 마음 속 질문 하나를 벼리고 있는 중이에요.
    작가와의 점심때 풀어 볼 요량으로요.~~^^

  4. 아리아리짱 2019.01.25 0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아리아리!
    중요한건 '잘해요'가 아니라,'좋아해요'라고 얘기하는거예요!^^

  5. 보리보리 2019.01.25 0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의 교집합은 영어, 몸건강, 마음건강. 어느 하나 제대로이지 못하지만 셋다 너무 좋아하는 일이고 늘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에 만족~ A Late Bloomer

  6. 김수정 2019.01.25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꾸 위로 올라가려고 하기 보다는
    교집합을 만들 수 있는 원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라는 말씀.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자꾸 위만 올려다보느라 목 아픈 요즘이었는데
    제게 단비와 같은 해법이네요^^

  7. kuaile 2019.01.25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그것 말고 더 중헌게 있을까요?
    내 삶에 의미를 만드는 건 내 느낌인데, 그걸 무시하고 밖에서 정답을 찾으려 애썼던 과거의 저를 애도합니다^^!

  8. 게리롭 2019.01.25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지니어스!!!
    교집합에서 나의 자리를 잡아가기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것같습니다

  9. 샘이깊은물 2019.01.25 14: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때로는 숲 전체, 때로는 나무 한 그루! 완벽을 고집하다 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 같아요. 시간을 타고 물처럼 흐르며 스스로 조금씩 알아가는 수밖에 없겠지요.
    ‘교집합을 이루는 원을 만들어가는 것’은 내 삶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멋진 방법이네요! 어마어마한 포부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 쉬 지치지 않는 길인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삶의 양식을 정립해 나가는 기쁨도 느낄 수 있고요. 조바심이 날 때도 있지만, 지금 그 과정 속에 있는 나를 격려하고 위로할래요.

  10. 2019.01.25 1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년부터 들른 독자로서
    피디님께서 '교집합을 이루는 원' 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들을 보았는데요
    베스트셀러 작가가 목표가 아닌 매일 블로그에 글 한편 올리는 게 목표였던 피디님은
    책 값 안아까운 가성비 갑인 책을 벌써 세권이나 내셨네요
    초반에 읽는 사람 별로 없을땐 진짜 피디님이 친숙하게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ㅎㅎ
    오래전에 무대위에서 분위기 띄운다고 가수들 사이에서 사랑의 트위스트를 제일 열심히 췄던 조연출 시절 영상 올리신 적 있었어요
    그땐 팬심도 없었는데도 희귀한 광경이고 또 흥겨워서 계속 돌려보곤 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