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19 살아갑니다 (권성민 글 사진 그림 / 오마이북)
96년, 제가 MBC 입사했을 때, TV PD는 공통 직군으로 함께 뽑았습니다. 15명을 뽑아놓고 6개월간 교양 예능 드라마 3개 파트를 돌린 후, 수습이 끝날 때 각자의 희망 업무를 물었어요. 주위에서는 제가 교양 피디 지망인줄 알았어요. 분위기가 약간 골방 샌님같아서 그런가봐요. ^^
수습하면서 보니까, 예능국 선배들이 다 참 좋았어요. 한 사람 한 사람 개성이 강하고, 유쾌한 에너지가 넘쳤어요. 무엇보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있다보니, 타인의 개성도 존중하는 문화가 있어요. '난 이런데, 넌 그러냐?'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런지 다양한 취향이 존중받는 분위기. 이런 조직이라면 '나'라는 개인으로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예능국에 온 후에도, '너는 어쩐지 편성이나 교양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술담배나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지 않고, 혼자 책 읽는 걸 더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 저는 저같은 코미디 피디도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모든 예능 피디가 외향적이고 개방적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칩거형 딴따라도 있어야지요.
가끔 예능국 후배를 보면서, '저 녀석은 교양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권성민 피디가 그렇지요. 권성민을 처음 만난 건 2012년 MBC 파업이 끝나고 몇 달 후였어요. 당시 '정직 6개월' 징계중이라 노조 집행부 사무실로 출퇴근하고 있는데 어떤 신입 사원이 연락을 했어요. "선배님,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잘 생긴 청년 하나가 와서 고민 상담을 했어요. 파업 이후, 회사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다고. 뉴스나 제작 프로그램이나 너무 낯설다고. "제가 오고 싶었던 MBC는 이런 회사가 아닌데요, 선배님." 참 미안했어요. 저는 MBC가 좋았던 시절을 다 겪었는데, 이 친구는 입사하고 보니 이 상태인겁니다. "좋은 시절 보내고 나니, 이런 날도 오더라. 이런 날도 잘 버티면 또 좋은 시절이 오지 않을까?"
그 친구가 '오늘의 유머'에 글을 올리고('나는 엠병신 PD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만화로 그렸다가 (예능국 이야기)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어요. 입사 3년차에 졸지에 해직 피디가 된 권성민은 자비로 세월호 영상을 만들고 뉴스타파에서 슈퍼 히어로물을 연출했어요. 그를 보면서, 새로운 영상 세대의 도래를 느꼈어요. 저는 기껏해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후배는 웹툰으로, 영화로, 유튜브 영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미디어를 만들더군요. '이런 놀라운 신세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권성민의 에세이를 읽으며 궁금증을 풀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내 기억 속의 나는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한무더기씩 가져다주신 이면지를 쌓아 놓고, 버릇처럼 밥상을 끌어안고 앉아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게 무언가를 그려대곤 했다. 상상하고 싶은 게 많았다. 머릿속에는 늘 이야기로 가득했고, 어린 키만큼 쌓여 있던 이면지는 늘 부족했다.
자랄수록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이면지 시절부터 계속된, 버릇처럼 그린 만화는 어느새 친구들의 손을 타고 교실을 넘어 다니며 탐독되고 있었다.
인터넷을 처음 접한 즈음부터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설을 썼다. 아직 집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시간만 나면 PC방으로 달려갔다.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사용 시간이 1분씩 줄어드는 것을 보며 서둘러 한 편을 마무리 짓고는 했다. 내 소설을 읽은 사람들로부터 이메일을 받는 것이 좋았다. 내가 만든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시간을 들여 읽어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나의 만화와 소설은 재능 있는 다른 친구들을 만나 연극이 되고, 콘서트가 되고, 뮤지컬이 되고, 영화가 되었다. 내 머릿속, 내 손끝에서 나온 이야기에 울고 웃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한결같이 황홀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대학을 졸업하고 예능 PD가 되었다. 그리고 꼬박 3년을 채운 뒤에 그 이름을 빼앗겼다.'
(168~169쪽)
요즘의 2,30대들은 인터넷을 통해 미디어를 잘 갖고 놉니다. 그들이야말로 좋은 피디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재주 많은 세대가 하필 재수 없는 시대를 만났어요. 제가 피디가 된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지요. 제가 입사한 1996년에는 1년에 피디를 15명씩 뽑았어요. 98년 IMF가 터지고, 비정규직 바람이 일고, 신입 정규직 공채는 규모가 팍 줄었어요. 요즘은 아예 사라진 형국... 제가 피디가 된 비결은 딱 하나예요. IMF 터지기 전에 입사한 거...
운 좋게 좋은 회사에 들어와 20년 가까이 녹을 먹었으니, 저는 갚아야 할 게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노조 집행부도 하고 파업도 하고 그랬어요. 권성민은 한 해 2,3명 뽑는 시절에 힘들게 MBC 입사했습니다. 다닌지 3년도 안 된 친구가 이렇게 많이 갚을 줄 몰랐어요. 그의 책을 읽으면서
이런 친구에게 선배님이란 소리를 듣고 산다는 게 많이 부끄러웠어요.'오늘의 유머'에 그가 올린 글도 그랬어요. 많은 MBC 선배들을 부끄럽게 만든 글이지요. 그가 올린 글 뒤에 많은 선배들이 자신의 부끄러움을 숨겼어요. 그 어린 친구가 선배들을 대신해 사죄하고, 선배를 대신해 징계를 받았어요.
책의 부제가 '나를 버티게 하는 청춘의 조각들'입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어쩌다보니 후배의 문장으로 버티는 못난 선배가 되었군요. 아름다운 청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글 속에서 오늘 하루도 버팁니다.
'그저 나 즐거운 대로만 사는 건 재미가 좀 덜한 것 같고, 몸도 마음도 덜 가난한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산다. (중략)
이 책은 내 서른 젊음의 기록이자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말빚을 확인시키는 채무이행각서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생각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그 발자취를 기억하는 것과 잊어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는 날이 올까?(중략)
그냥 흘러가버리는 순간이 어디 있을까. 글 한 편 한 편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듯, 발끝만 보며 걷는 걸음걸음이 모여 어딘가에 이르듯,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조차 차곡차곡 쌓여 삶을 이루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또 하루를 그냥 힘껏 살아가는 것뿐이다.'
(위의 책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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