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20 청년 백수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 (류시성 송혜경 외 13인의 청년백수 지음 / 북드라망)
우리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능력을 키워 일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취업이 공부의 목적이라면, 취업 불가의 시대에 공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옛날 선비들에게 공부는 입신양면의 기회이자 수신의 방편이었습니다. 글을 읽고 몸을 다듬는 것, 그 자체로 정신수양의 의미가 있지요. 취업을 강요하기보다 공부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편이 우리 시대에 더 필요한 가르침 아닐까요?
'세상에 이런 책 한 권은 있어야 한다. 청년백수가 어떻게 자립하면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책. 이 과정에서 온갖 고난을 겪는 이야기. 백수들로 넘쳐나는 시대에 이런 책 한 권 없다면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한데 놀랍게도(!) 그런 책은 거의 없다. 대신 백수가 정규직이 되는 방법, 재테크로 한몫 잡은 백수이야기, 그게 아니면 백수의 현실을 암울하게 진단하는 책들만 가득하다. 여기에 저항하는 책이 한 권도 없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불행일 것이다.'
(7쪽)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이 계시는 감이당에서는 '청년 백수들의 공부 자립 프로그램-백수다'를 운영합니다. 청년백수들에게 고전 공부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와 정신적 기반을 제공하지요. 예전에 소개한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가 고미숙 선생님의 이론서라면, 이 책은 스승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해본 청년들의 실전 매뉴얼입니다. 읽으면서 감탄했어요. '스승의 글을 삶으로 체화하며 사는 젊은이들이 많구나!' 책을 백날 읽어도, 삶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허무한 공부지요. 강연을 즐겨 듣지만, 때로는 강연에서 받는 달콤한 위로와 힐링을 경계합니다. 실천이 없는 지식은 공허하거든요.
'좋은 말을 백 날 듣기만 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그것이 자기 삶이 되지 않는 한 그것은 일종의 마약과도 같다. 주기적으로 가서 우울할 때마다 좋은 말을 듣고 돌아와 다시 며칠 지나면 또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패턴. 이게 중독이 아니고 무엇인가. 불안과 우울의 인과를 알지 못하면서 그저 단기망각만으로는 결코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위의 책 27쪽)
감이당의 '공자-공부로 자립하기' 프로그램, 그 일과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는 청년들은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보왕삼매론' 낭송을 하고, 108배를 합니다. 감이당 근처 남산을 산책하거나 요가를 하기도 하고 연구실에서 '논어'를 낭송합니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건물 청소를 합니다. 10시부터 개인 공부를 하는데 고전 필사와 낭송이 주를 이룹니다.
(감이당 선생님들이 펴낸 낭송 시리즈. 가끔 아이에게 판소리 토끼전이나 심청전을 읽어줍니다. 아이가 재미있어 해요. 마음이 산란할 때는 금강경이나 도덕경을 소리내어 읽습니다. 마음 공부로 최고니까요.)
남이당에 모인 청년백수들은 자신의 삶의 모토를 공부로 정합니다. 세미나를 하고 발제를 하며 공부하는 짬짬이 알바도 합니다. 알바를 하며 한달에 90만원을 벌고, 100만원도 법니다. 공동 취사에 공동 거주를 하면 그 돈으로도 충분히 자립할 수 있어요. 알바인생 11년차라는 어떤 친구가 쓴 글이 인상적입니다.
'한 알바 전문 포털사이트가 공개한 2014년 신규 가입자의 연령별 증가율을 보면 노년기에 접어든 60대 이상의 노년층 가입 증가율이 전년대비 6배를 넘었다고 한다. 굳이 이런 수치들을 보지 않아도 알바 시장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은 이미 느끼고 있을 것이다. (중략) 예전에는 2030세대들이 가벼운 용돈벌이로, 정식으로 취업하기 전 스쳐 지나가는 벌이에 지나지 않았다면 지금은 알바가 자기 한 몸을 보살펴야 하는 생계형 직업이 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위의 책 209)
정규직을 갖는 것이 힘들어졌어요. 그런데 지난 몇십년 사이, 자본주의는 수만년간 이어져온 인류의 공동체 개념을 무너뜨려버렸지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정작 공동체의 유대관계는 그 고리가 느슨해졌어요. 가정이 싸고 안정적인 노동력의 공급원이 되면서 맞벌이와 핵가족화가 진행되었지만, 정작 실업 상태에 놓인 노인과 젊은 세대를 사회가 챙겨주진 않습니다. 예전에는 청년과 노인이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노동을 하고 공동 생산을 할 수 있었어요. 이제 1인 가구가 늘면서 각자도생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 결과로 노인과 청년이 알바 시장에서 일자리를 놓고 취업 경쟁을 합니다.
'공동체의 가치를 어떻게 복원할것인가.' 그것이 우리 사회에 주어진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감이당 '청년 백수'들의 공동체 실험을 응원합니다. 퇴직 후, 함께 하고 싶은 공동체가 두 곳 있습니다. 공부 공동체인 '감이당'과 수행 공동체인 '정토회'. 퇴직 후 수십년간 백수로 살아야하는데, 노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아요. 공부와 수행을 일삼아 하며 즐겁게 늙어가고 싶습니다.
공부를 놀이처럼 즐기는 것, 그것이 인공지능의 시대 백수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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