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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이건 누구의 인생이지?

by 김민식pd 2016. 11. 3.

2016-221 데미지 (조세핀 하트 / 공경희 / 그책)

 

'모든 것을 가진 남자가 아들의 연인과 사랑에 빠지면서 파멸하는 이야기', 간단하면서도 강한 로그라인이지요. 영화를 보면 이 정도만 기억에 남습니다. 사랑의 이유도 주인공들의 비주얼을 통해 이해하지요. '그래, 줄리엣 비노쉬라면 끌릴 만 하지. 그래, 제레미 아이언스 정도 되는 중년 남자라면야, 뭐.' 소설을 읽고 나니 비로소 제대로 '데미지'라는 작품을 이해한 느낌입니다. 제레미 아이언스의 기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요.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거든요.

 

나이 들어 바람피우는 남자는 젊어서 바람둥이였을 거라 생각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어려서 모범생에 서울대를 나온 어떤 사람이 있어요. 지방에 있는 기업에 취직했는데, 회사 사장이 지방 유지의 딸을 소개해줍니다. 여자 쪽 집안이 워낙 좋고, 또 여자도 좋은 환경에서 잘 자란 규수였어요. 양가 집안에서도 좋아하니까 결혼을 했지요. 어느날 바람이 났대요.

"난 이제야 진짜 사랑을 알게 되었어." 

바른 생활 사나이가 뒤늦게 자신의 욕망에 눈을 뜨자, 그 바람은 막을 수가 없더군요. 사랑이 뭔지 10대 20대에는 모르다, 아들 낳고 살다가 뒤늦게 그걸 알게 되다니...  

 

내 야망은 모두 이루어졌다. 모두 나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 축복받은 삶이었다. 괜찮은 삶이었다. 그런데 이게 누구의 인생이지?’

(위의 책 13쪽)

책에서 주인공의 독백을 읽는 순간 느꼈어요. '아, 이 남자, 위험하구나...' 주위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착한 아들, 공부 잘하는 학생, 성실한 직장인으로 사는 건 이런 위험이 있어요. 정작 자신의 욕망이 뭔지 몰라요. 자신의 욕망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부모가 되어 자식도 똑같이 키웁니다. '니가 하고 싶은 거? 그건 나중에 대학 가면 해. 취직 하면 해. 자리 잡고 나면 해.' 그런 아들이 나이 40에 일탈을 저지르면, 황당해합니다. '난 저 아이를 저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자식은 크나큰 도박이다. 자식이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의 무력함은 커진다. 다른 일은 우리가 잘 알고 노력해서 모양을 잡아가지만, 자식들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들은 태어나면서 우리 삶의 중심이자, 존재의 위험한 가장자리가 된다.’

(15쪽)

요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고 있는데요, 정말 자식은 부모 뜻대로 안 되는 것 같아요. 중년 여성들이 갱년기를 겪으며 힘들어하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요? 아이가 독립을 하니 자신의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할지 모르겠다고 힘들어합니다. 아이나 일에 너무 올인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사는거지요. 아이도 그럴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요. 

아래는 소설 끝에 나오는 '옮긴이의 말'입니다.

 

나는 소설 작품에서 삶과 인간에 대한 성찰과 위로를 얻는다. 나와는 다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유형의 인간 군상이 소설 안에서 살아간다. 나라면 그렇게 살지 않을 삶을 사는 그들의 자취를 좇아가노라면, 어느덧 같이 아프고 같이 혼란스럽고 같이 절망하게 된다. 그 길의 끝에서 돌아보면 처음 번역을 시작했을 때 인물들과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던 나와는 다른 내가 여기 있다. 어떤 소설은 공감을, 어떤 소설은 연민을, 어떤 소설은 이해를 경험하게 한다. 소설을 통해 내 사고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정서의 폭도 넓어진다. 문학을 통해서 그런 풍요를 누리게 된다.’

(위의 책 275쪽)

 

김봉석 님의 '내 안의 음란마귀'를 읽다가 꽂혀서 찾아본 책입니다. 재미있네요. 역시 봉석님의 추천은 진리!

타인의 시선 속에 갇혀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며 사는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줍니다.  '내 안의 음란마귀', 잘 다스리고 볼 일입니다. ^^

2016/10/17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내 안의 음란 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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