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23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 홍한별 / 반비)
1999년 4월 20일,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는 총과 폭탄으로 무장하고 콜럼바인 고등학교로 갑니다. 학생 열두 명과 교사 한 명을 살해하고, 스물네 명에게 부상을 입힌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요.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었어요. 딜런 클리볼드의 어머니가 이 책의 저자입니다. 읽기가 조금 힘이 듭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요. 그래도 끝까지 부여잡고 읽었어요.
영화로도 여러 편 만들어지고 ('엘리펀트', '볼링 포 콜럼바인'), 이후 유사한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원조격으로 언급되는 사건입니다. 도대체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요? 우리는 흔히 이런 사건의 가해자들이 가정 폭력의 피해자일거라 생각합니다. 가정에서 원인을 찾고자 하지요. 하지만 딜런의 부모는 자식을 학대하는 이들이 아니었어요. 딜런에게는 형이 있는데, 이름이 바이런이랍니다. 저는 그 대목에서 마음이 정말 아팠아요. 딜런과 바이런, 두 아들에게 영국의 음유시인 이름을 붙여준 부모들. 시를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하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가르친 엄마가, 자신의 아들이 살인마로 변하는 걸 막지도, 알아채지도 못해요. 책을 보고 느낀 점, 청소년기에 아이에게는 부모보다 친구가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에릭 해리스는 살인충동을 가진 사이코패스고, 딜런 클리볼드는 자살 충동을 느끼던 우울증 환자였어요. 이 둘의 만남이 비극을 가져옵니다. 살인마는 자신을 이해하는 지원군을 얻고, 자살을 꿈꾸던 아이는 자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떠밀려가니까요.
수 클리볼드는 아들의 사후, 아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우울증과 자살 징후를 뒤늦게 발견합니다. '나는 왜 딜런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을까?' 수는 정말 좋은 엄마거든요. 이때 한 여자가 편지를 보냅니다. 그는 학창 시절, 따돌림을 당하고, 강간을 당한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어요. 심지어 가해자인 축구부 선수는 '그애의 못생긴 얼굴만 아니었다면 더 나았을 거야' 하고 떠벌리고 다닙니다. 육체적 정신적 폭행이 거듭되는 순간에도 주위에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본인이 알릴 생각도 못하고요. 그 이유를 편지에 씁니다.
'나는 괴롭힘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엄청난 수치심을 느꼈어요. 제가 직접 경험해보아 아는데 아이들은 자기가 겪는 고통을 자기 탓으로 돌려요. 나도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건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엄마 아빠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랐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면 부모님도 내가 보는 내 모습으로 나를 보시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문제가 있고 못생긴 아이로요.'
(181쪽)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그녀는 좋은 친구를 만납니다.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니 탓이 아니야'라고 위로해 주고 그 품에서 펑펑 울 수 있었던 사려깊은 친구. 그를 만나면서 비로소 자살 충동에서 벗어나요.
'딜런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어야 해요. 친구나 동지가 옆에 있어줬어야 했는데, 분노와 우울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달래줄 친구요.
이건 아셔야 해요. 부모님은 그 친구가 되어줄 수 없다는 걸요. 형 바이런도 마찬가지고요. 성장과 분리 과정에 있기 때문에 감추어왔던 고통스러운 문제를 부모나 형제자매에게 털어놓기는 극히 힘듭니다.'
(182쪽)
아들 딜런이 콜럼바인고등학교 학살을 일으키고 2년 후, 수 클리볼드는 2001년 발렌타인 데이에 유방암 진단을 받습니다. 놀라지도 않아요. 아들이 열 네명의 친구와 선생님을 죽인 후, 자살했어요. 엄마의 속은 그날 이후 말그대로 썩어갔어요. 사건 이후, 동네에서 직장에서 비난의 눈길에 시달리던 남편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차라리 딜런이 우리도 죽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살아가는 부모. 수는 암진단을 받고 그걸로 아들의 죄에 대한 속죄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지요. 결국 치료를 통해 암을 이기고 일어납니다.
'나 자신을 희생해서 많은 사람들을 구할 기회가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공상을 했다. 죽으면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내 비참한 생에도 의미가 생길 테니까.
유방암을 이기고 나자 내 삶을 선물이라고 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그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내 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 선물을 의미 있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386쪽)
읽기 불편한 책이지만 끝까지 붙잡고 읽은 이유는, 수 클리볼드가 우리에게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상사가 힘들게 하면 상사를 미워하면 되고, 정치가가 잘못을 하면 욕을 하면 되는데, 집에서 아이가 힘들게 할 땐 답이 없어요. 아이를 미워할 순 없잖아요. 아이의 잘못은 부모 탓이 아니랍니다. 아이가 사춘기를 맞이하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요. 좋은 친구,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빌어주는 것 말고는... 좋은 친구와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더 좋은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진정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좋은 사회를 만드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이 책은 그 진리를 일깨워준다. 어둠이 깔린 시대를 보지 않는 맹목적 양육에 대해 성찰하는 독서가 되길 바란다.'
(추천사, 조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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