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15 아오리를 먹는 오후 (김봄 / 민음사)
'아오리를 먹는 오후'는 폭주족, 가출 청소년, 히키코모리 소년, 원조 교제를 하는 문제아 등이 나오는 소설집입니다. 주인공은 어른의 입장에서 공감하기 힘든 아이들이지요. 이런 아이들을 현실에서 만나면 이해가 안 갈 것 같아요. '얘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살까?'
얼마 전 자전거를 타고 양재천을 지나 백운호수까지 갔어요. 도중에 과천과학관을 지나가는데, 도로변에 고등학생 남자애들 셋이 앉아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평일 오전 10시에 쟤들은 학교 안 가고 뭘하는 거지?' 하다 '아!' 하고 깨달았어요. 학교에서 과학관에 체험 활동 온 겁니다. 과학에는 흥미가 없으니 몰래 빠져나와 핸드폰 게임으로 시간을 죽이는 거예요. 정말 안타까웠어요. 국립 과천과학관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입니다. 생물의 진화며 우주의 신비며 온갖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한 곳이지요. 천체투영관에 비스듬히 누워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볼 때면 거의 황홀경에 빠져들어요.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스크린을 통해 우주 비행을 체험할 수 있는데, 고작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화면에 코를 박고 있다니...
'아오리를 먹는 오후'를 읽으면 요즘 시대 아이들의 삶을 대리체험하게 됩니다. 하나하나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빠져들다보면, 그들의 처지가 보입니다. 좋은 소설은, 타자의 삶을 생생하게 구성하여 그들의 입장에 공감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좋은 작가는, 우리 시대 약자들의 목소리로 소리내어 이야기할 줄 알아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데에는 실질적으로 필연적인 이유도 없으며 그것이 곧 삶의 내용을 구성할 수는 없다. 막연한 강요와 규율에 의해 학습이 행해진다. (중략)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오히려 집 밖을 떠돌며, 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이야말로 진짜 반성을 하고 주체를 찾아가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이들은 주어진 환경과 역할이 아니라 자신이 찾은 고민과 갈등 가운데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세상이 이렇게 다른 궤도와 언어를 쓰는 아이들을 받아들이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략) 아이들의 어리광을 부모도, 학교도, 사회도, 법도 받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은 언제나 이 세상에 존재한다. 외면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들인 셈이다.'
(282쪽 작품해설 중)
책을 보고 느꼈어요. 이 아이들은 지금 맹렬하게, 자신들의 방식으로 세상과 싸우고 있구나. 동정없는 세상에서, 정말 치열하게 살고 있구나...
다시 과학관 앞 삼총사를 떠올려봅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와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비슷한 게 아닐까요?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현실을 벗어나 책 속의 타자가 됩니다. 게임을 하는 순간, 아이들은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기적을 행하지요. 제가 현실을 잊고자 허구의 세계로 망명하듯, 아이들도 게임속 가상현실로 유체이탈을 시도하는 거지요.
책을 읽고 난 후, 시야가 조금, 아주 조금 넓어졌어요. 고등학생 아이의 손에 들린 담배에 줌인했던 시선에서 다시 앵글을 키워, 그 아이가 살아가는 현실이 봅니다. 아이가 싸워야할 세상이 보이네요.
'응, 그래. 너도 많이 힘들구나. 우리 둘 다 서로 힘내자.'
우리 시대 가장 힘없고 약한 이들을 응원하는 작가님께 감사드려요. 덕분에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넓어졌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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