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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내 꿈의 놀이터, 공공도서관

by 김민식pd 2016. 10. 20.

2016-213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 (스가야 아키코 / 이진영 이기숙 옮김 / 지식여행)

 

나는 뉴욕을 좋아한다. PD인 내게 뉴욕은 최고의 놀이터다. 춤과 노래, 이야기와 무대가 어우러지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우리 시대 최고의 종합 엔터테인먼트다. 뉴욕에는 센트럴 파크, 자연사 박물관, 현대미술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소는 뉴욕 공공도서관이다.

 

맨하탄 5번가와 42번가가 크로스하는 교차점, 여기에 두 마리의 사자상이 지키는 웅장한 건물이 서 있다. 19세기 초반 보자르 양식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며 1911년 건설 당시 미국 최대의 총 대리석 건축으로 화제를 모은 곳. 나는 뉴욕에 갈 때마다 뉴욕 공공도서관을 찾는다. 무료 가이드 투어를 통해 열람실을 구경하고 도서관에 얽힌 역사와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강연회도 면면이 화려한데, 작년 가을에 방문했을 때는 작가 에리카 종의 저자와의 대화가 열렸다. 사전 접수 없이 도서관에 방문한 이들은 누구나 1층 로비에서 저자 강연회를 들을 수 있었다. 일정표를 보니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강연회도 잡혀있더라. 이런 행사가 무료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게 참으로 놀라웠다. 생각해보면 도서관은 모든 이들에게 무료로 지식을 나눠주는 최고의 놀이터다.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스가야 아키코 지음 / 이진영 이기숙 옮김 / 지식여행)은 원제가 ‘New York Public Library 뉴욕 공공 도서관이다. 뉴욕 공공 도서관에 대한 흥미롭고 재미난 이야기가 책 가득 펼쳐진다. 책의 첫 장에는 도서관에서 꿈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20세기 초반, 잡지 창간이 꿈이었던 가난한 한 청년이 뉴욕 공공도서관 간행물실에서 신문과 잡지를 읽었다. 1922년 약관 33세의 나이에 잡지 창간을 하게 된 그는 포켓 사이즈의 월간지에 일류 잡지에서 가려낸 기사나 읽을거리를 압축해 독자들에게 간편하고 손쉬운 독서의 재미를 제공했는데 그것이 바로 리더스 다이제스트. 잡지가 성공한 후, 그는 자신의 꿈을 키워준 도서관에 거액을 기부했고, 그 덕에 데이빗 월레스 정기 간행물실이 생겨났다.

 

꿈을 찾고 실현하는데 있어 도서관만한 곳도 없다. 스물두 살에 나는 꿈이 없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 공대를 다니며 방황 중이었고, 방위병으로 근무하며 삶의 낙도 없었다. 퇴근 후 울산시립 남부도서관을 다니며 책을 읽었다. 그 시절엔 독서가 내 삶의 전부였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전화가 왔다. 가을맞이 독서 주간에 다독자 시상을 하는데 내가 선정되었다고. 몇 권을 읽었냐고 물었더니, 1년간 도서관에서 200권의 책을 빌려 읽었다더라.

 

공대를 나와 영업 사원으로 일하다 어느 날 문득 방송사 PD 시험에 지원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적도, 미디어를 공부한 적도 없었지만, 면접에 들어가서 긴장하지 않았다. 1년에 책을 200권씩 읽고 나니 어떤 질문이 나와도 답을 할 자신감이 생기더라. 피디 전형의 논술과 면접에서 합격하게 된 비결은 다독으로 갈고 닦은 글쓰기와 말하기 실력 덕분이다. 어려서부터 틈만 나면 도서관에서 살았는데, 결국 꿈을 찾는 것도, 그 꿈을 이루는 것도 다 도서관 덕분에 가능했다.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은 미국의 공공 도서관 예찬론이다. 미국 전역에는 약 만5000여 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는데, 이 숫자는 미국을 대표하는 햄버거 체인점 맥도날드의 전미 점포 수 만2000개를 훨씬 상회한다. 2000년에는 연 114628만 명이 방문했으며, 171395만 점의 자료가 대출되었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무료 영어 교실은 이민자들을 위한 맞춤형 어학 공부를 제공한다. 각종 영화 DVD를 포함한 영상 자료 역시 풍부하기에 구어체 영어 청취를 연습하기에도 도서관은 최적의 공간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을 찾아온 이민자들에게 도서관은 꿈을 키우고 이뤄가는 곳이다.

 

디지털 시대라도 연구나 집필 작업을 하는 물리적 공간은 여전히 중요한데, 도서관은 사람과 공간을 연결함으로써 지식을 낳는 지원도 하고 있다.’

(위의 책 224)

아무리 인터넷 속 지식 체계가 방대해도 물리적 공간으로 도서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몇 달간 나는 영어 공부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데, 원고 작업을 주로 동네 도서관 디지털 자료실에서 한다. 창가 노트북 전용 좌석에 앉아 조용히 글을 쓴다. 열람실과 달리 이곳에서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다른 이의 독서를 방해하지 않는다. 모두들 컴퓨터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인터넷 강의를 듣고 문서 리포트 작업을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집에 서재가 있지만, 집중력을 필요로 할 때는 역시 도서관이 최고다. 평일에 회사로 출퇴근하듯이 휴일에는 도서관으로 출근하며 산다.

 

나이 마흔 아홉, 꿈을 찾는 이들이 가득한 동네 도서관 한구석에서, 재미난 이야기로 가득한 책들 틈에서, 오늘도 나는 행복을 꿈꾼다. 모두를 위한 공짜 놀이터, 공공도서관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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