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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누가 감히 청년수당을 막는가?

by 김민식pd 2016. 10. 11.

2016-211 입에 풀칠도 못하게 하는 이들에게 고함 (김동춘, 김찬호, 정태인, 조국, 손아람 / 북콤마)

 

이 책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에서 기획하고, 다섯 명의 각계 인사들에게 민생의 의미를 물은 책입니다. '가짜 민생 vs 진짜 민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어요. 민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백성이 생업을 갖는 일입니다. 

"생업이 없으면서 착한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오직 선비라야 가능하다. 백성이 생업이 없으면 그로 인해 착한 마음이 없어진다." - 맹자


'인공지능의 시대, 노는 인간이 되자'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건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전지구적 위기입니다. 기업들의 생산은 늘어나도 고용은 늘어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기본소득의 도입도 필요합니다. 온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나눠주지 못해도 적어도 지금 당장은 모든 청년들에게 생계를 보장할 기본 수당을 지급해야합니다. 성남시의 청년배당이나 서울시의 청년수당 제도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은 좋은 제도입니다.

청년 수당에 대해 조국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이 든 분들 중에는 서울시와 성남시가 시행하려는 청년활동수당이나 청년배당 같은 청년 복지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많다. 청년이라면 마땅히 고생해야지 왜 국가가 지원을 해주냐며 거부감을 갖는 것이다. 자신들의 고생 경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노년층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청년들이 생존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장하성 교수는 현재의 청년 세대는 대한민국이 세워진 이래 처음으로 자신들의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건국 이래 모든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모든 면에서 소득이 올라갔는데, 지금 세대만 이전 세대보다 소득이 떨어지고 있다.

지금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했던 만큼의 고생을 이미 하고 있다. 그럼에도 처지가 나아지지 않는다. 눈을 낮출 만큼 낮추어도 일자리가 없다. 기성세대는 고생을 했지만 그 결과 처지가 나아졌다. 청년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이전 세대들이 경험하지 못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자신의 힘으로 노력해서 일자리를 얻고 그다음에 한 단계 계층 상승할 수 있는 기반이 무너진 상태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성세대가 한 것보다 더 큰 고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정을 다 무시한 채 젊은이들이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훈계하는 것은 사실관계부터 틀린 것이다.

이렇게 청년들의 처지가 잘못 알려진 것은 그들의 목소리가 국가와 사회의 의사 결정 구조에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통을 기성세대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고,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 법과 제도를 만들 힘도 미약하다. 그런 차원에서 정부와 정당, 시민사회단체가 청년들에게 적절한 제안을 하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청년들과의 소통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혁명가 체 게바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모든 아버지들은 장차 자식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들고픈 의지를 지녀야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가 되새길 말이다. 그리고 이것의 실천은 단지 자기 자식만 잘살게 하려는 방식이 아니라, 세상을 제도적으로 개혁하고 현실화하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위의 채 261쪽)

 

블로그 문을 연지 5년이 흘렀습니다. 가끔 초기에 쓴 글을 보면서 부끄러울 때가 많아요. 청춘들에게 연애를 권하고, 중년들에게 늦둥이를 권하면서 결혼과 육아의 즐거움을 이야기한 대목이 특히 그렇습니다. 제가 요즘 세상을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현실에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줄 잘 몰랐어요.

책을 읽으면서 자주 분노합니다.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을 읽으면서 알바 청년들이 겪는 감정 노동에 분노하고, 김민섭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읽으면서 문과 석사 연구원의 삶에 한숨짓습니다.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금 청년의 삶에 희망은 어디에 있는지, 출구가 있기는 한지, 갈수록 막막해집니다.  

'노후 파산' '노후 빈곤' '인구 절벽' '인공지능'... 앞으로 삶은 갈수록 힘들어질 겁니다. 평균 수명이 60이던 시절에는 부모님의 유산을 30대에 물려받아 주택을 마련하고 삶의 터전을 닦을 수 있었어요. 이제는 기대수명이 늘어나서 부모 세대는 은퇴 후 남은 재산을 끌어안고 죽을 때까지 버티고, 자식 세대는 홀로서기의 기회조차 없어 숨 죽이며 살아갈 겁니다. 

청년들이 생계 걱정없이, 부모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 이것이 국가가 해야할 최소한의 복지입니다. 부모 세대의 부담을 줄여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걸 하지 않으면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피할 수 없어요. 청년들의 출산 파업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생명체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절망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일입니다. 공동체로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청년 수당의 도입 확대가 시급합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을 찾아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자신의 재능과 적성을 찾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작가 손아람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참여연대: 어쨌든 경제적 약자에게도 자신들의 창조성과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기회마저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는 불평등이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이다.

손아람: 문화 산업 쪽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것은 일단 버티기가 어렵기 때문이에요. 입문자가 생계를 해결할 수준이 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거든요. 처음엔 어떻게든 버텨내려 합니다. 회사에 취업하면 승진 여부와 관계없이 생계를 유지할 돈이 나오는데 여기 문화 산업 쪽은 그것이 안 되거든요. 창작자에게는 10년 정도는 버텨야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만개할 시기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현실의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치까지 실험해보지 못한 채 도중에 포기해버리는 친구들이 부지기수예요.'

(위의 책 298쪽)

 

몇년 전, 여러 대학에서 PD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작가 교육원에서 작가 지망생들을 상대로 한 학기 동안 정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수강생들을 선생과 제자의 입장에서 종종 만납니다. 여러 해 동안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앞으로는 월급보다 인세야. 직장인 보다 문화 창작자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해.' 라고 매번 격려를 하지만, 당장 생활이 힘든 상태에서 얼마나 더 오래 버티라는 건지, 저 자신도 민망할 때가 많습니다.

청년 수당, 지금 이 시대,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입니다. 부디 미래 세대의 희망을 꺽는 어른이 되지는 맙시다.



책은 손아람의 '망국선언문'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저는 이 글이 우리 시대 최고의 명문장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소개합니다.

 

경향신문 특별기획 부들부들 청년 1부 우린 붕괴를 원한다.

손아람의 망국 선언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2312005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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