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독서 일기

그 섬에 가고 싶다

by 김민식pd 2016. 10. 21.

2016-214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사진 글 김영갑 / 휴먼앤북스)

 

제주도 올레길을 좋아합니다. 3코스를 걷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들렀던 적이 있어요. 외곬수로 제주도에 틀어박혀 사진만 찍은 김영갑 선생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지요. 그의 사진을 보며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감탄하다가, 말년에 루게릭병으로 온 몸의 근육이 굳어가는 와중에도 폐교를 갤러리로 꾸몄다는 그의 노력에 , 정말 불꽃처럼 살다가는 사람도 있구나했어요. 저는 요즘 사람을 잘 만나지 않고 칩거모드로 지냅니다. 오로지 책을 읽고 길을 걷고 글을 쓰며 삽니다. 책을 보니 무언가에 미쳐서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인가 봐요. 

 

나는 사진 작업을 위해서 무리들과 어울려 지내지 않는다. 혼자 견뎌야하는 무료함과 지루함이 때론 우울하기도 하다. 그런 기분을 달래겠다고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마음이 혼란스러워진다. 사람들을 만나 무료함을 달래려면 시간과 돈이 든다. 금전적으로 궁색한 나는 혼자 지내며 사진만을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돈이 절약되는 것들만 찾아서 한다. 사진 찍는 사람에게는 사진만을 생각하는 것이 돈을 절약하는 길이다. 돈은 없고 시간이 많은 나는 늘 사진만을 생각한다.’

 

(위의 책 130)

 

짠돌이로 살면서 저 역시 돈을 쓰지 않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등산을 가고, 자전거를 탑니다. 돈 한 푼 더 벌기는 쉽지 않아도 돈 한 푼 아끼기는 이렇게 쉽습니다. 그렇게 용돈을 모아 언젠가 세계 일주를 떠나는 게 제 꿈입니다. 김영갑 작가는 20대에 어느날 훌쩍 제주도로 떠납니다. 산간 마을 허름한 집 부엌에서 잠자리를 꾸미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다 산자락 밭에서 고구마 감자로 허기를 채웁니다. 책의 1부는 섬에 홀려 사진에 미쳐라고, 제주도의 자연 풍광을 파노라마 사진에 담기 위한 작가의 노력을 그립니다. 책에 나오는 사진들이 기가 막힙니다. 작가의 요청에 따라 사진 비율을 그대로 살리려고 책의 판형도 바꿨다는군요.

 

 

책장을 넘기다 2조금은 더 머물러도 좋을 세상이라는 제목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작가의 투병기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구나. 주인공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왜 이리 마음이 찡할까요. 2부를 여는 글이 특히 마음을 울렸습니다.

 

 

한라산, 내 영혼의 고향

 

날마다 사진을 찍는 나는 날마다 사진만을 생각합니다.

사진 찍는 일에 몰입해 홀로 지내는 동안, 그리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내 존재가 잊혀져갈지라도 나의 사진 작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중략)

 

나에게 한라산은 온 산이 그대로 명상 센터입니다. 나는 어느 한곳에

머물지 않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사진을 핑계 삼아 명상을 합니다.

기다림은 매일매일 반복됩니다.

자연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통해 나의 내면도 성장했습니다.

변화를 거듭하는 동안 마음은 중심을 잡았고,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얻었습니다.

명상을 계속하는 동안 자연의 소식은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사진에 매달려 세월을 잊고 살다 보니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사진을 계속할 수 있는 한

나는 행복할 것입니다. 살아 있음에 끝없이 감사할 것입니다.

나의 사진 속에는 비틀거리며 흘려보낸 내 젊음의 흔적들이

비늘처럼 붙어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 좌절, 방황, 분노...

내 사진은 내 삶과 영혼의 기록입니다.‘

 

(위의 책 166)

 

이 글을 읽다가 문득 사진이라는 단어에 블로그를 대입해보았어요. , 이게 요즘 저의 삶이더군요.

블로그에 매달려 세월을 잊고 살다 보니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블로그를 계속할 수 있는 한 나는 행복할 것입니다. 살아 있음에 끝없이 감사할 것입니다. 나의 블로그 속에는 비틀거리며 흘려보낸 내 젊음의 흔적들이 비늘처럼 붙어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 좌절, 방황, 분노... 내 블로그는 내 삶과 영혼의 기록입니다.’

 

, 김영갑 작가님의 글이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군요. 이 글에서 사진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무언가가 여러분에게도 있나요? 그 글자 하나를 찾는 게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을 읽고나니 문득 김영갑 갤러리에 다시 찾아가고 싶어요. 작가의 삶이 담긴 사진과 공간을 보며 무언가에 미쳐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가려고 합니다. 3박4일 달리고 그 기록을 다시 블로그에 올릴 생각을 하니 가슴이 막 두근두근 쿵쾅거립니다. 네, 인생 별 것 있나요. 이렇게 살다 가고 싶어요. 그 섬에 가고 싶습니다. 김영갑 작가가 사랑한 그 섬에.

 

 

반응형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말엔 꿈꾸는 독서  (1) 2016.10.29
아오리를 먹는 오후  (1) 2016.10.28
내 꿈의 놀이터, 공공도서관  (6) 2016.10.20
내 안의 음란 마귀  (4) 2016.10.17
누가 감히 청년수당을 막는가?  (6) 201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