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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퀴즈왕이 된 인공지능

by 김민식pd 2016. 7. 4.

2016-152 왓슨 인간의 사고를 시작하다 (스티븐 베이커 / 이창희 / 세종서적)

 

한국은 알파고를 통해 인공지능의 위력을 실감했지만, 미국 사람들은 이미 2011년에 '왓슨'이라는 인공지능이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을 꺾었을 때 비슷한 충격에 빠졌어요.

 

1980년대 후반에 AFKN으로 '제퍼디'를 열심히 보았어요. 당시에는 TV에 자막이 없었는데, 제퍼디는 화면에 퀴즈가 영어 문장으로 나옵니다. 그걸 사회자가 읽어주지요. 영어 청취를 공부할 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물론 재미있기도 하구요.   


퀴즈 프로그램에 인공지능이 나가서 인간을 이기는 게 간단해보일 수 있습니다. 구글 검색으로 우리는 답을 찾으니까요. 하지만 책을 보면, 이게 절대 간단한 과제가 아닙니다. 인터넷 검색의 경우, 가장 많이 접근한 페이지를 수십만개 띄워주면, 그중 가장 빈도가 높은 페이지 중에서 답을 선택하는 것은 사람의 몫입니다. '왓슨'의 경우, 그 선택을 컴퓨터가 직접 합니다. 인터넷에서 맛집을 검색할 때, 무엇이 광고이고, 무엇이 진짜 블로그 글인지 알아내는 것도 인간의 지능으로 버거운데 말입니다. ^^

저자 스티브 베이커는 비즈니스위크의 기술부문 수석편집자에요. 최근 몇 달간 인공지능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이 책이 특히 재미있어요. 과학자의 시선이 아니라, 저널리스트의 시선에서 인공지능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거든요. 기자나 피디의 역할이 이런 것이죠. 어려운 전문 지식을 대중의 시선에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것. 앞으로 로봇 저널리즘이 본격화되면 단순 정보의 전달은 인공지능을 당하기 힘들 겁니다. 기자도 살아남으려면 스토리텔링에 주력해야합니다.

스티븐 베이커는 왓슨의 알고리즘을 설명하기보다, 왓슨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왓슨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IBM 기술팀 팀장 데이비드 페루치의 사연이 재미있어요.

 

'(20대 시절) 페루치는 의대 입학 자격시험을 치르기 위해 모의고사장에 갔다. "예과생들이 거기 다 모였죠. 한참 시험이 진행된 다음이었어요. 시험관이 '10쪽을 펴서 화학 문제에 답하라'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 난 의사가 되지 않을래!' 시험지를 덮고 시험관에게 이렇게 말했죠. '시험 보지 않겠습니다.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아요.' 그랬더니 '수험료 500달러는 환불해주지 않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상관없다'고 대답했어요.'

(위의 책 95쪽)

그러고 나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버지가 무척 화를 내셨다.'고 나옵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결국 이런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자신이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압니다. 의사의 길을 포기한 그는 IBM에 들어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때론 한 분야의 실패자가 새로운 분야의 개척자가 되기도 합니다. 1990년대 초반, 조슈아 데이비스라는 젊은 화가가 삽화 그리는 일을 얻으려고 출판사 몇 곳에 작품을 보냅니다. "고맙지만 사양하겠소. 그런데 당신 대체 뭐하는 사람이오?' 라는 냉담한 반응에도 낙담하지 않아요.

 

'얼마 후 학교 친구 한 사람이 데이비스를 디지털 세계 쪽으로 돌려 세웠다. "그 친구가 이러더군요. '걱정 마. 이제 완전 인터넷 세상이거든. 책은 죽은 거야."'

(위의 책 137쪽)

출판계 삽화일을 포기한 그는 컴퓨터 그래픽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남들은 캔버스 위의 그림을 붙잡고 있을 때, 데이비스는 모니터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요. 그래픽 부문의 선구자가 되어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 IBM에서 연락이 옵니다.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과 겨룰 컴퓨터의 얼굴을 만들어 달라고.  

 

'왓슨'을 만든 사람들의 사연이 소개되는 중에 잠깐 엑스트라가 한 명 끼어드는데, 그 이름이 낯익어요. 2010년 8월, 수백 명의 컴퓨터 과학자, 인지심리학자, 미래학자들이 한 곳에 모여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 회의를 합니다. 그 중에는 데미스 하사비스라는 34세의 영국 출신 신경과학자가 있어요. 13세때 하사비스는 그 연령대에서 세계 최고의 체스 선수가 됩니다. 그러나 그때 IBM의 딥 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을 꺾어버리죠. 자신의 비상한 두뇌를 기계가 곧 정복해저릴 분야에 파묻어둘 필요가 없다고 느낀 그는 10대 시절에 비디오 게임을 만들어 팝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인간의 뇌 기능을 연구하지요.

 

'하사비스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뇌의 편집 역량을 알고리즘의 형태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들은 컴퓨터에게 중요한 내용을 선정하고, 이를 반복 경험시킨 뒤 이로부터 개념을 끌어내라고 가르쳐야 한다. 이는 컴퓨터에서 인지 혁명을 일으키려는 수많은 접근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현재 어떤 것도 단기간 내에 성과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무지막지한 기술적 장벽을 뛰어넘어야 하는 데다 마법이라고나 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짜내서 컴퓨터에 적용해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하사비스는 이 작업이 5년쯤 걸릴 것으로 내다본다. "그때쯤이면 뭔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위의 책 215쪽)

책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온 몸에 전율이! 여기 나오는 하사비스가 바로 알파고의 아버지입니다. 책에서 설명한 개념이 바로 알파고의 핵심 원리인 딥 러닝이지요. 인터뷰를 하던 하사비스는 2010년에 이미 5년 후, 뭔가 결과가 나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2015년에 알파고를 만들어내지요. 우리가 좋건 싫건, 인공 지능 분야의 발전은 또박또박 이루어지고 있어요. 책을 쓰던 2011년 당시 저자는 하사비스가 말하는 개념이 기적에 가까운 성취라고 말하는데, 벌써 5년 만에 실현되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요? 머신 러닝의 핵심은 갈수록 점점 빨라진다는 건데 말이죠.

 

왓슨을 만든 전문가들은, 퀴즈 왕을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었어요. '제퍼디'는 지력과 담력을 동시에 요구하며, 베팅까지 해야하는 상당히 어려운 수준의 퀴즈입니다. 여기서 인간의 달인을 뛰어넘는 실력이라면, 다른 전문 분야에서도 믿을 만한 답을 낼 수 있지요. 척척박사 인공지능이 보조할 수 있는 역할은 의사, 법무사, 세무사 등 다양합니다. 방대한 의료 지식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환자의 상태를 입력하면 병명과 처방전이 나온다던지, 엄청난 분량의 법전을 다 기억해서 그 중에서 정확한 판례를 찾는다 든지, 이런 게 다 왓슨의 특기입니다. 

의사 변호사 세무사 등 현재 유망한 직종이 앞으로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좋아하는, 재미난 직업을 찾는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인공지능의 세상을 낙관합니다.

  

"똑똑한 컴퓨터에게 한 가지 효용이 있다면 노래하기, 수영하기, 사랑에 빠지기 등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무수한 일을 마음껏 즐기도록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다. 컴퓨터가 점점 똑똑해지면서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에 속해 있다는 사실로 인해 인간은 새로운 기회를 얻을 것이다."

(위의 책 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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