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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

불효가 곧 효도다

by 김민식pd 2014. 3. 9.

딸과 함께 네팔 배낭여행 갔을 때 일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하는 도중, 한국에서 온 여대생을 만났다. 이렇게 혼자 여행하는 친구를 만나면 꼭 말을 걸어 사귀어본다. 딸에게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이다. '너도 나중에 대학생이 되면 이 언니처럼 혼자 히말라야에 오고 그러는 거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친해져서 물어봤다. 졸업 후 꿈이 뭐냐고. 

"얼른 취업해서 돈 벌어 부모님 해외 여행 시켜드리고 싶어요."

이런 기특한 학생을 봤나! 당연히 칭찬해줘야하는데, 난 좀 삐딱한 어른인지라 이렇게 말했다.

"워, 워, 워~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그러지말고 졸업하면 취직하기 전에 먼저 부모님께 돈을 타서 그 돈으로 해외 여행을 다니세요."

 

진짜 효도는 부모님께 더 잘 해드리는 것보다, 내가 아들로서 더 멋진 어른이 되고, 더 즐겁게 인생을 사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자식이 주는 돈 받아 해외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건 자식이 배낭여행 가서 인생을 사는 진취적 기상을 배워오는 것이다. 갸우뚱한 표정을 짓는 학생을 설득했다.

 

"부모님께 가서 돈 좀 달라고 하세요. 어차피 돌아가시면 유산 남겨주실 거잖아요. 그 돈에서 미리 오백만원만 가불해달라는 거죠. 부모님 90에 돌아가신다면, 내 나이 60에 돈 오백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에요. 아니 오히려 그 나이에 그 돈은 내 돈이기보다 내 자식들 돈이거나 남편 돈이기 쉽죠. 하지만 꽃다운 나이 20대 청춘 시절에 돈 오백은? 이후의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엄청난 밑천이죠. 어차피 물려주실 돈이라면 내 인생에 더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는 시기, 즉 20대에 물려주시는 게 낫잖아요."

 

3년전 인도 네팔 배낭여행하다 대학생들을 많이 만났는데, 100만원으로 2달간 인도에서 사는 친구가 있더라. 하긴 나도 한달 동안 100만원으로 버텼는데 정말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내가 20대 청춘이라면 단 돈 500만원이면 세계일주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고, 다시 육로로 베트남으로, 다시 캄보디아 라오스로 올라가는 거다. 거기서 메콩 강 슬로보트를 타고 태국에 갔다가 다시 네팔로 인도로... 이런 식으로 여행하다 돈 떨어지면 호주 농장에 가서 양털깎아 돈 벌면 되고 스페인에 가서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주로 한다는 올리브 수확 일이나 거들면 되고.

 

사람이 무엇을 배우는데 있어 최고 좋은 경험은 여행이다. 심지어 나는 배낭을 꾸리면서도 배운다. 한 달 이상 장기여행을 떠나도 내 배낭은 7킬로가 넘지 않는다. 비결은 배낭을 꾸린 후 몇번을 반복해서 짐을 덜어내는 데 있다. 나중에 단촐해진 가방을 보면, 인생을 사는데 꼭 필요한 게 알고보면 참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의 즐거움은 가벼운 배낭에서 온다.  

 

난 딸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세계 일주를 권할 생각이다. 1학년 마치면 1년 휴학을 시키고 3달 동안 직접 일을 해서 돈을 모으라고 해야지. 직접 알바도 뛰고 일터에서 구박도 당해봐야 세상 무서운 걸, 그리고 돈 귀한 걸 안다. 자신이 알바한 돈으로 항공권을 사면 500만원 들려주고 떠나라고 하는 거다. 500만원이면 중국, 인도, 동남아 등지에서 5개월을 버틸 수 있는 돈이다. 돈 떨어지면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은 내가 사줘야지. 그동안 어디까지 가는 지는 오로지 딸의 근검절약에 달려있다. 어쩌면 12년간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1년간의 배낭여행에서 배워올지 모른다.

 

돈을 벌어 부모님께 여행을 시켜드려봤자 늙어서 다니는 건 다 효도 관광이다. 나이 60에 세계를 본다고 인생관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이 20에 인도에 가서 거지로 살아보는 것은 인생에 아주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작게 효도하지 말고, 크게 효도하시라. 

돈 없이도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더 멋진 사람이 되는 게, 부모에게는 진짜 효도다.

 

 

아이랑 안나푸르나 3200미터 고지까지 갔다고 하면 다들 신기해하는데, 알고보면 정말 간단하다. 어떤 산이든 오르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니까. 오른 발 앞에 왼 발을 갖다둔다. 그런 다음 다시 왼 발 앞에 오른발을 옮긴다. 그걸 계속 반복하다보면 어느 산이든 오를 수 있다.

 

여행, 가보면 정말 쉽다. 인도에 가보면 수백만명의 거지도 굶어죽지 않고 잘만 산다. 그냥 하루하루 그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버티는 게 여행이다. 알고보면 인생도 그렇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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