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주 회사 로비에서 노숙 농성을 하면서, ‘아니 이렇게 좋은 봄날에, 나 지금 로비에서 노숙하는 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파업하면서 지친 심신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문득 떠났다.
금요일 새벽에 서울을 출발해 부안에 도착하니 오전 9시. 바닷가에서 간단한 요기를 했다. 대명 리조트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 사서 바닷가에 앉으니, 가난한 자의 Seaside Brunch는 이런 것이 아니더냐!
애마에 애마를 싣고 달렸다. SUV에 MTB를 싣고 간다. 길이 아닌 길, 오프로드를 달리는 재미. 인생에 정해진 길만 걷는다면, 그 또한 재미없지. 오늘 한번 미친 듯이 달려보자.
줄포 생태 공원, 걸어서 돌아보기에는 휑하니 크고, 자전거로 돌아보기에는 좀 작고... 그래도 여기저기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놨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세트장으로 쓰인 예쁜 집 앞에서 찰칵. 언젠가 다시 드라마 연출할 그 날을 기약하며, 주먹 불끈!
제주 올레길과 부산 갈매길에 이어 부안 마실길. 좋다. 전국에 도보 순례 여행 코스가 늘어나는구나. 지도를 보니 13코스까지 있는데, 딱 한 가지 아쉬운 점. 지도에 추천 코스가 없었다는 점. 나처럼 주말에 잠깐 시간내어 온 사람이 어디부터 공략하는 게 좋은지 알려줬으면...
격포항에서 출발해서 고사포 해수욕장까지 가는 3코스를 자전거로 달렸는데, 음....., 좋았다. 풍광으로 보나 길의 꾸밈으로 보나 제주 올레길에 뒤지지 않는다. 마실길이 곧 뜨리라는데 한 표!
자전거 여행 마니아에게는 변산반도 일주코스가 유명하다. 8시간짜리 코스인데, 몸 사리느라 구간 구간 나눠서 달렸다. 스무살 때 자전거 전국 일주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구간이 강원도 5번 국도였다. 산과 바다의 적절한 조화가 가장 아름답고 역동적인 자전거 코스를 만드는 비결이다. 숨이 턱밑까지 차도록 페달질을 해서 산을 오르면, 어느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 바닷바람 갯내음을 온 몸으로 받으며 달려가는 기분! 참고로 마실길 3코스에는 자전거 전용도로도 있다. 짧아서 아쉽긴 하지만.
간장게장 정식이 1인분에 8000원, 심지어 무한리필! 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갔는데, 1인상은 곤란하다신다. 쫄쫄이 스판 바지에 헬멧을 손에 들고, 혼자 자전거 여행중인 티를 팍팍 내었더니 이내 상을 차려주신다. 역시 불쌍한 연기는 내가 갑이야!
다음주부터 여의도에서 텐트치고 노숙 농성에 들어간다. 그래서 사전답사를 겸한 캠핑. 텐트 농성의 꿀꿀함은 서해바다 낙조의 추억으로 견딜 것이야! 모항 해수욕장, 아늑하고 경치도 좋다. 무엇보다 나같은 짠돌이 여행족에게 최고의 소식은, 야영장 이용료가 공짜라는 것!
새벽에 파도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좋구나~ 이제 부안 내소사를 찾아가자. 내소사 입구, 2킬로 전방에서 찜질방 발견. 몸이나 지지고 심기일전하고 가자. 새로 지은 시설이라 깨끗해서 좋은데 한가지 아쉬움은 탕이 없다는 것. 샤워로 몸을 씻어야한단다. 한증막에서 땀을 들이는걸로 대신... 주말에는 마실길 나들이꾼으로 좀 붐비겠구나. 평일 혼자 마실길 걷는 이라면 강추! 역시 공짜 걷기 여행의 최고 숙소는 찜질방~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권에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내소사 전나무 숲길... 토요일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없어 좋다. 한적한 길을 걸으며, 마음의 평화를... 구해야 하는데 어찌하면 김재철 사장을 치울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다. 역시 불자로서 난 아직 멀었구나. 산문의 사천왕상을 보면서도 ‘저들을 소환해 김재철 사장 잡아가라 할 방법은 없나?’ 하는 고민만 하고 있으니... ^^ 부처님에게도 사장님에게도 난 참 불손한 놈이로구나.
내소사 3층석탑과 대웅전. 수령이 1000년이 넘는다는 내소사 안뜰의 보호수를 보니 문득 ‘천년도 못사는 것이!’ 하고 호통치는 듯 하다. 그래, 언제 갈지 모르는 인생, 지금 현재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지. 내 마음 하나 못 다스리면서, 남의 마음까지 참견할 것이야! 그 분이 나가시든 말든, 나는 즐겁게 싸울 것이다. 나는 나의 도리만 한다.
대웅전 꽃살무늬. 역시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것은 비율과 디테일이다. 멀리서 보아 아름다운 것은 비율과 균형감각, 가까이서 보아 아름다운 것은 디테일한 세공. 드라마도 마찬가지. 전체를 꿰뚫는 이야기의 균형도 중요하고, 장면 하나 하나 현실감있는 디테일도 중요하다.
내소사 탐방객에게는 가능하면 내소사 뒷산 산행을 권한다. 바닷가 마실길 여행과는 또 다른 산행의 재미. 강화도 마니산을 올라 서해바다를 보는 것도 좋았는데, 변산반도는 말 그대로 3면이 바다라 산위에서 펼쳐지는 파노라마 전경이 예술이다. 단, 바위산이라 등산화 착용을 권한다.
3시간 정도 걸리는 오전 산행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곰소 젓갈 마을에 들렀다. 무슨 젓갈을 살까? 일단 젓갈 식당에 들러 젓갈 정식을 시켰다. 역시나 혼자 먹기에는 황송한 차림이다. 내 나이에 혼자 와서 밥을 시키니 사람들이 흘깃 흘깃 본다.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혼자 해야 제 맛이거든요?’ 기러기 아빠의 설움을 그들이 어찌 알랴. 하긴 아내와 딸들이 있어도 난 가끔 혼자 여행을 다닌다. 여행은 스스로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니까. 가족과 여행을 가면 그건... 음.... 봉사의 시간? ^^
부안 마실길, 다음에 시간을 내어 3코스는 꼭 다시 걸어보고 싶다. 해식 동굴, 채석강, 수성당, 용굴, 적벽강의 절경을 다시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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