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방명록에 질문을 올리셨어요. '취직을 하면서 타지에서 살게되었는데, 낯설고 말설은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나요?' 라고.
저는 일단 축하를 먼저 드립니다. 낯선 땅에서 살 수 있는 것도 복이거든요. 게다가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직장까지 잡으셨다니, 봉 잡으신 겁니다.
어려서 저는 꿈이 고향을 탈출하는 것이었어요. 고교 시절 내내 왕따였는데, 서울로 가면 나를 아는 사람이 없고, 나를 놀릴 사람도 없어, 드디어 행복한 세상이 오겠구나, 싶었거든요.
물론 처음 서울에 와서 살면서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죠. 사투리가 심해 소통이 어려울 때도 있었고,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롭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입주과외를 했어요. 학생을 가르치는 일로 숙식을 제공받는 일이죠. 한 시간 공부하면 꼭 아이가 나가서 쉬었다 들어오기에, 아이가 끈기가 없어서 그러나? 하면서, 저는 다음 단락 준비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날 잠깐 나가보니까, 아이 엄마가 아이를 안방에 불러 몰래 과일을 먹이더군요. 네, 매번 나갔던게 영양 보충하러 간거였어요. 그때 좀 서러웠어요. 타지에 와서 가난한 고학생 취급 받는구나. 그 아이, 과외는 열심히 시켰는데, 성적은 별로 안 올랐어요. 아이가 내가 시키는 충고에 별로 귀를 안 기울였거든요. 엄마가 저를 선생님으로 대접하지 않고, 집안 객식구로 취급하는데, 그 아이가 저를 선생으로 대접하겠습니까? 선생에 대한 권위가 안 서니, 결국 공부도 잘 될리가 없죠. (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뒷끝일 뿐입니다. ㅎㅎ)
갑자기, 울컥, 옛 생각이 나는군요. 네, 그때 많이 서러웠어요. 서울 온 첫 해, 집을 떠나 남의 집에서 눈치밥 먹으며 아이의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 괴로웠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에 실종 사건이 참 많은데, 그중 3분의 1은 자발적 실종이라는 얘기가 있어요. 자신의 괴로운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 실종을 가장하는 거죠. 경제적 이유도 있겠지만, 그만큼 살아온 환경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도 크다는 거겠죠? 많은 이들이 꿈꾸는 여행도 결국은 일상에서의 탈출 아닙니까?
남들은 굳이 돈 써가며 낯선 땅, 낯선 사람들을 찾아가는데, 낯선 땅에서 살아보며 돈도 버는 것, 좋지 않아요? 그리고, 인생은 어차피 혼자 가는 것이고, 세상은 어디나 정붙이고 살면 다 고향이더라고요.
저는 고향이 울산인데, 울산 안 가본지 10년 다 되어갑니다. 고향 친구를 만나도 부산으로 불러내어 해운대 바닷가에서 만나죠. 10년 후, 님의 직장이 있는 그곳이 제2의 고향이 될 거에요. 그 사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그곳이 아이에겐 고향이 되겠죠.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는 서울 사람들의 깍쟁이같은 인심도 싫고, 사투리만 쓰면 촌 사람으로 보는 시선도 싫었지만, 언젠가부터 이렇게 마음을 먹었어요. 내 고향은 경상도지만, 내 아이의 고향은 서울이 될 것인데, 아이의 고향을 미워할 수는 없지.
지금은 나이 마흔 다섯, 고향에서 20년 살았지만, 서울에서 25년을 살았으니, 서울이 더 친근합니다. 어려서 꿈이 서울 여자 만나 결혼하는 것이었는데, 꿈도 이뤘고요. ('남남북녀'라는 말에 늘 끌렸거든요.^^) 지금 당장은 고향이 좋고, 타지는 낯설겠지만, 인생 깁니다. 한번 타지 생활도 즐겨보세요.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요?
타지생활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곳에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드는 겁니다. 서점에 가면 각지역별로 문화유산답사기가 있거든요? 책 한 권 사서 주말이면 그 지역의 향토 유산과 유적을 찾아 답사 여행을 다녀보세요. 그럼 타지 생활이 즐거운 여행으로 바뀔 겁니다.
건승을 빕니다. 화이팅!
(다른 분들의 고민상담도 곧 답글로 올릴게요, 편하게 고향 선배에게 묻듯이 방명록에 글 남겨주세요. 시간이 나는대로 성심성의껏 답변해드리겠습니다. ^^)
(한번 더, 공지~)
내일 저녁, 이화여대 ECC에서 여는 미디어 페스티벌에 연사로 나갑니다.
시간 되시는 분, 놀러오세요. 21세기의 스토리텔링이란 무엇인가? 즐거운 수다를 떨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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