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여행기 마지막 편입니다. 갈레에 갔어요. 이곳에는 네덜란드 식민주의 시대에 만든 요새가 있습니다.
가보면 장벽의 규모가 어마어마 합니다.
요새의 문.
1월에도 스리랑카 갈레는 낮에 많이 덥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뜰 무렵이나 해질 무렵 요새의 성벽을 걸었어요.
요새의 성벽을 따라 걸어도 30분 가까이 걸립니다. 엄청 큰 요새입니다.
요새로 가는 길에 조각상이 있어요.
갈레의 상징인 수탉입니다. 1600년대 유럽에서 향신료 무역을 위해 해상 항로를 개척하는 선원들은 망망대해를 배를 타고 헤맵니다. 새벽에 바다에 안개가 자욱해서 한치 앞도 안 보입니다. 배에 실은 물도, 식량도 떨어져갑니다. 빨리 육지를 발견해야 하는데... 그때 저 안개 넘어 "꼬기오~~~~" 우렁찬 닭울음 소리가 들려요.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닭이 있다는 건 가까운 곳에 육지가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렇게 스리랑카의 인도양 해변 갈레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이곳에 요새를 짓고 실론섬을 식민지화합니다.
갈레가 스리랑카에서 인기 관광지인 이유.
작은 유럽의 도시 같아요. 이 안에 교회, 우체국, 창고 등 중세 시대 유럽의 건축양식이 다 있습니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의 교회 건물.
심지어 1832년에 지어진 도서관도 있어요. 외국인에게는 입장료 500원을 받습니다.
요새 도시 답게 망루를 겸한 시계탑도 있습니다.
강화도에 가면 초지진이나 덕진진같은 해안 요새가 있어요. 그곳의 대포들은 다 바다를 향하고 있지요. 바다 건너 오는 적함을 요격하기 위한 용도인데요. 이곳 갈레 요새의 포문은 내륙을 향하고 있어요. 이곳이 식민지 점령군의 요새라는 걸 보여주는 모습이지요. 남의 땅을 차지한 점령군은 내륙에서 현지인들의 군대가 오는 걸 두려워했어요.
스리랑카는 인도양, 인도 대륙 바로 아래에 있어 유럽의 나라들이 탐을 내는 해양 무역의 요지였어요. 그래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서로 뺏고 뺏기는 악순환을 겪습니다.
성벽의 높이는 두려움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항로를 찾아 너른 바다를 헤매던 이들이, 육지를 발견한 후에는 성벽을 쌓아 요새에 스스로 갇히는 걸 선택합니다.
방랑과 방어, 두가지 모드를 오가는 게 인간의 숙명입니다. 내가 지닌 것을 지키려고만 하기보다, 세상밖으로 나가서 나의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특히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저는 스무살에 서울에 와서 깨달았어요. 나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제부터 무엇을 얻든 지금의 나보다는 더 나아지겠구나.
저에게 여행은 꾸준히 삶의 영역을 넓혀가는 활동입니다. 탐험가로 살고 싶어요.
갈레에는 예수회 성당이 있는데요.
부속건물인 제수이트 레지던스에서 묵었어요.
1박에 15,000원. 방에 편의 시설은 별로 없지만, 저는 300년 전의 수도사가 된 기분으로 이 검소한 방에서 며칠을 묵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묵상을 했어요. 이게 제가 꿈꾸는 노후이지요.
이제 귀국을 앞두고 콜롬보 시내에서 공항 가는 교통편을 검색합니다. 올 때는 공항에서 픽업하는 택시를 30달러 5만원에 빌렸는데요. 밤 비행기로 도착해 편하게 오려고 그랬어요. 갈 때는 저녁 출발편이니 느긋하게 버스로 갑니다. 2020년에 올라온 블로그를 보니, 공항버스는 150루피 750원, 택시는 2500루피 12500원인데요.
서울집에서 김포공항 가는 거리 35킬로, 1시간 소요니 콜롬보 시내에서 공항 가는 거랑 거리가 비슷합니다. 서울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2000원, 택시를 타면 3만원이 듭니다.
2025년 1월에 저는 5만원을 택시비로 냈으니, 5년새 스리랑카 택시비는 3배가 올랐고요, 심지어 한국의 1.5배입니다. 최저임금은 20분의 1인데 말이지요. 이게 스리랑카 여행의 현실입니다. 여행지로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여행자 물가가 너무 비싸요.
산책하다 강가에 정박한 배를 봤어요.
Such is life.
제 인생의 새로운 모토가 되겠군요. 그런 게 인생이에요. 투덜거려봐야 의미가 없죠. 여기는 그런 거예요.
미리싸에서 해변을 산책하다 툭툭을 탔어요. 기사님이 한국말을 잘해요. 알고보니 이분도 한국에서 일하셨네요. 포항에서 대게잡이배를 탔는데, 주위에 스리랑카 사람이 없어 많이 외로웠다고요. 그러다 제주도 광어 양식장으로 일터를 옮겼는데, 스리랑카인 동료가 많아 좋았다고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분들 덕에 내가 저렴하게 해산물을 즐기는구나...
순박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스리랑카.
이 나라가 조금 더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에 여행자로 다니며 마음이 조금 불편했는데요.
다음 여행지, 대만으로 갑니다. 그곳은 마음이 편해요. 잘 사는 나라니까요.
그러면서도 물가는 한국보다 저렴해서 마음 편하게 배낭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
대만 여행기로 다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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