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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해상강국 네덜란드 여행기

by 김민식pd 2025. 3. 13.

암스테르담에서 free walking tour를 신청했어요. 왈리라는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네덜란드의 역사 이야기를 듣습니다.

네덜란드, 이름이 늘 헷갈려요. 영어로 Holland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 나라 사람은 정작 Dutch라고 불러요. 도이칠란드(독일)라는 나라는 따로 있는데 말이지요. 정작 도이칠란드 사람은 '젊은이'라고 불려요. Germany. (아재 개그, 죄송합니다.) German이라고 불립니다. 게르만족 사람이란 뜻이지요.

네덜란드의 영토는 평균 해수면보다 2미터가 낮습니다. '낮은 땅'이라고 Low land 로우랜드라고 불렀는데요. 습지에 있는 물을 빼냈어요. 물빼고 아무것도 없는 습지를 Hollow land '텅빈 땅'이라고 부르다 이게 Holland가 되었어요. (이건 아재 개그 아닙니다. 왈리한테 들은 이야기입니다.)

습지에서 물 빼내는데 풍차를 이용하지요. 네덜란드하면 떠오르는 건 풍차잖아요. 습지에 집을 지으려니 땅속에 수십미터씩 나무 말뚝을 박아 기초공사를 했습니다. 안 그러면 지반이 내려앉으니까요. 자연스레 목재 가공 산업이 발달하고요. 풍부한 목재를 이용해 상선을 만들었습니다. 1만 척의 상선은 유사시 함대가 됩니다. 거기서 해상제국 네덜란드의 역사가 시작해요. 

인도네시아, 수리남, 스리랑카, 타이완, 어딜 가나 해상 강국 네덜란드의 식민지나 영토가 있었어요.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네덜란드 식민지였고요. 1578년 당시 네덜란드를 지배하던 스페인 왕으로부터 독립전쟁을 시작하고요. 성당을 개신교 교회로 바꿉니다. 1630년 독립전쟁에 승리하고 공화국을 선포합니다. 

당시 다른 나라는 여전히 왕정국가였는데요. 네덜란드는 공화국이 되었어요. 유럽의 이웃 나라에서 식민지 개척은 왕실이 주도하는 사업이었어요. 식민지에서 벌어들인 황금은 왕가의 소유가 되었지요. 네덜란드는 달랐어요. 동인도회사라는 최초의 주식회사를 세우고, 이윤을 모두가 나눠가졌습니다. 이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고요, 너도나도 식민지 개척을 위해 항해를 떠납니다.  향신료 무역 시절 당시 후추는 검은 황금이라고 불렸어요. 

습지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나무기둥을 깊게 박아 집을 지었고, 그 과정에서 목재 제조업이 발달하고, 이는 선박제조로 이어지고, 수많은 상선은 함대를 이루게 됩니다. 약점을 힘들게 극복하니 경쟁력이 되었던 거죠. 

그런데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는 너무 빨리 끝났어요. 영국과 프랑스 양대 대국의 견제를 받고요. 동인도 주식회사가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막대한 이윤을 거두자 그 안에서 이권다툼이 심해진 거죠.

이 사진을 찍어주던 가이드 왈리, 갑자기 옆사람에게 내 폰을 맡기더니 같이 찍자며 들어옵니다. 내 포즈가 너무 재밌다며 따라하네요.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 가이드 왈리와 함께. 

암스테르담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며

다양한 건물에 얽힌 이야기를 듣습니다. 1940년 2차 대전 중 로테르담의 나치 폭격 후 바로 항복합니다. 그덕에 암스테르담은 온전한 모양으로 도시를 보존할 수 있었다고요. 그렇죠. 때로는 살아남아서 훗날을 도모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가이드 투어가 끝날 무렵, 왈리에게 물어봤어요. 네덜란드의 역사에 대해 더 알고싶다면 어디를 방문하면 좋을까? 해양박물관을 추천해줬어요. 그래서 오후에 해양박물관을 찾아갔어요. 

해양박물관의 볼거리 중 하나는 암스테르담 호입니다. 동인도회사 소속 배를 재현한 건데요. 안을 둘러보며 당시의 선박 생활을 엿볼 수 있어요.

배 내부를 박물관처럼 꾸몄어요.

선원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데요. 인도네시아에 있는 식민지까지 가는데 배타고 8개월이 걸립니다. 선원의 15~20퍼센트는 항해 중 사망했다고요. <향신료 전쟁>이라는 책을 보면요, 최초로 인도 항로를 개척한 바스쿠 다 가마의 경우, 함선 4척에 170명의 인원으로 출항했는데 2년 후 귀국할 때는 2척의 배와 생존자 55명 뿐이었다고요. 그렇게 위험한 일에 나선 이들은 누구였을까요?

가난하고 교육 받지 못한 이들이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말에 지원했다고요. 

배의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출항할 땐 바닥에 벽돌을 싣고가서 올 땐 향신료나 도자기 등을 싣고 돌아왔답니다. 그렇게 가져간 벽돌은 현지 정착지에서 건물을 짓는데 쓰였다고요. 

제가 지난달 (2025년 2월)에 대만 여행을 갔는데요. 타이난에 있는 안핑구바오(질란디아 요새)에 갔어요. 

1624년 네덜란드가 타이완을 점령한 후 지은 첫 번째 군사 요새입니다. 1600년대의 건축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웅장한 외관이 잘 보존되어 있어요.

이 벽돌을 보는 순간, 문득 2년 전 암스테르담 해양 박물관에서 본 설명이 떠올랐어요. 배에 벽돌을 싣고 가서 현지에서 요새를 만들었다! 갑자기 머리속에서 2년의 시간이 아우러지면서 수백년된 역사가 내 곁에 짠하고 다시 찾아온 기분이었어요. 

지난 1월에 간 스리랑카 갈레에서도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의 요새를 볼 수 있었어요. 어떻게 그 시절에 네덜란드는 이렇게 잘 나갈 수 있었을까요? 향신료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노예 무역도 했어요. 식민지 노예 무역으로 100만명 넘게 팔려갔답니다. 

네덜란드 해양 박물관에는 식민지 노예 무역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했던 네덜란드 노예상들의 흑역사도 소개합니다. 그렇죠. 역사란 건요. 과거의 영광만 재현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절의 과오도 돌아보고 반성도 필요한 작업입니다. 성찰 속에 성장이 있거든요. 

지브롤터 해협에서 스페인 함대를 격파한 네덜란드 독립군. 당시 이 지역의 지배자는 스페인 국왕이었는데요. 그는 정교일치를 주장했어요. 즉 정치와 종교가 한몸이었지요. 가톨릭 국왕이 네덜란드 지역의 신교도를 박해하자 공동의 적을 상대로 싸우며 지역들이 단결합니다. 그 결과 네덜란드라는 공화국이 탄생하고요. 다른 나라가 왕정일 때 공화국이 되며 더 빨리 경제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어요. 역시 어떤 정치 체계를 갖느냐는 경제 발전의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해양박물관 앞 kras haring이라는 노점상을 찾아갑니다. 

청어절임이 3.5유로에 오징어튀김이 2.5 유로.

합이 6유로니 저같은 배낭여행자에게는 가성비 최고의 식사입니다. 어려서부터 짠돌이 생활이 몸에 익어서요. 근검절약하는 습관 덕에 직업의 자유를 얻었다고 믿습니다. 경제적 자유가 인생의 자유를 가져옵니다. 

이제 다음 여행기로 돌아올게요. 고민이에요. 스리랑카 골레 이야기를 할까, 대만 타이난 이야기를 할까. 둘 다 과거 네덜란드의 식민지 시절 유적지를 가진 도시거든요. 

역사 공부와 함께 은퇴자의 세계일주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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