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 다녀온 스리랑카 여행기, 이어갑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요. 창밖으로 차밭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스리랑카는 차의 나라에요. 우리가 아는 실론 티의 고장. 실론은 스리랑카의 옛이름이고요. 립톤 차도 여기서 만들어졌어요. 다만 저는 기차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차밭을 보며 조금 슬펐어요. 차는 기호식품이잖아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이 먹을 것을 기르지 않고, 영국 사람들이 마시는 차밭을 만들기 위해 저 산을 개간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요. 놀라운 풍광을 보면서 저는 제국주의의 착취 제도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답니다.
스리랑카의 기차는 느릿느릿 달려갑니다. 단선 철도라 맞은 편에서 기차가 오면 역에서 5분, 10분씩 기다렸다가 열차를 보내주고 다시 갑니다. 그래서 차로 가면 3시간 거리인데 기차로는 5시간씩 걸리고 그래요. 철도를 깐 건 영국의 식민주의자들이에요. 차를 수송하기 위해서 깐 침탈용 철도고요, 문제는 스리랑카의 경제 발전이 너무 늦어 100년 전 철도를 그대로 쓰고 있다는 거죠. 여러모로 안타까웠어요.
기차 안에서 한글로 된 전자책을 읽고 있었는데, 누가 말을 걸어요.
"사장님, 한국에서 오셨습니까?"
스리랑카 분인데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십니다. 여쭤보니 열여덟살에 한국에 가서 20년간 동두천 인쇄공장에서 일하다 오신 분이라고요. "돈 많이 버셨겠네요?" 했더니, "사장님 저 스리랑카 와서 방 8개짜리 호텔 지었습니다."라고 웃으십니다.
한국에서 20년 일하면 스리랑카에서는 건물주가 됩니다. 이분은 한국에서의 기억이 좋았나봐요. 그러니 이렇게 기차에서 만난 한국 사람에게도 인사를 건네지요.
차밭으로 유명한 캔디를 지나 엘라에 갔어요. 엘라에서 묵은 숙소입니다.
종일 비가 와서 베란다에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어요. 숙소 사장님이 우리말로 인사를 걸어오셨어요. 스리랑카에는 한국말 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요? 알고 보니, 이분도 한국으로 일하는 가는 게 꿈이랍니다. 그래서 열심히 한국어 시험 준비도 한다고요.
이렇게 빼곡이 적은 본인의 한글 연습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셨어요.
고용허가제 한국어 능력시험.
이런 문제를 푸는군요. 외국인에겐 어렵겠네요. 제가요, 20대에 독하게 영어를 공부하며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왜 나는 하필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영어를 공부하는 설움을 겪어야 하나... 이제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아시아인들이 많습니다. 한국이 그들에게는 희망의 나라인 거죠. 그리고 20대에 힘들게 배운 영어가 제게는 커다란 인생 밑천이 되었어요. 50대의 나이에 제가 한달씩 배낭여행을 다니는 것도 영어 덕분이고요. 역시 인생은... No pain, no gain. (너무 꼰대스러운가요?^^)
엘라는 높은 산에 위치한 지역이라 스리랑카이지만 날씨가 선선합니다. 1월초에 15도에서 20도. 같은 날 콜롬보는 30도였어요. 이곳은 라와나 폭포.
미리사 가는 길에 사파리 국립공원도 지나갑니다. 들르지는 않았어요. 그냥 지나가다 철책너머 코끼리만~ 코끼리야, 공짜 구경 시켜줘서 고마워!
이곳은 미리사 해변입니다. 인도양의 바다고요. 서핑의 성지로 유명하지요.
저는 그냥 동생이랑 해변 카페에서 빈둥거리며 놀았어요.
물가가 은근히 비싸요. 둘이 먹으면 5만원 정도 나옵니다. 임금은 한국의 20분의 1인데요. 여행자 물가는 한국보다 약간 저렴한 정도? 쉽게 말하면 바가지 요금이 심하다는 거죠. ㅠㅠ
스리랑카는 단골을 만들 생각이 없는 곳 같아요. 그냥 한번 온 여행자를 옴팡지게 털어서 그냥 보냅니다. 저는 베트남이 그리웠어요. 가성비가 뛰어나고 음식도 맛있는 베트남! 한번 가면 또 가고 싶은 베트남! 한번 가면 두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스리랑카... ㅠㅠ
아침 일찍 일어나 해변을 산책합니다.
아침에는 그나마 선선해서 걸을만 한데요. 한낮이 되면 30도가 넘어갑니다. 1월인데도.
지구를 표현할 때, 5대양 6대주라고 하지요. 5대양은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북극해, 남극해, 6대주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를 일컫습니다. 6대주는 다 가봤는데, 5대양 중 태평양과 대서양에 이어 인도양은 처음 갔습니다. 언젠가는 북극에 오로라를 보러, 남극에 펭귄을 보러 가려고요.
미리사 해변을 산책하다 본 광고판. '스노클링하며 거북이랑 수영을 즐기세요.' 저는 스노클링을 무척 좋아합니다. 가서 물어봤어요. 얼마인지. 3500루피, 우리돈 18000원입니다. 구명조끼, 스노클링 기어, 오리발 대여에 숙소 픽업까지 해주는데, 'No turtle, moneyback guarantee' 노 터틀, 머니 백 개런티, 거북이를 못보면 돈을 돌려준답니다. 대단한 자신감인데요? 작년 10월에 오키나와 토카시쿠 해변도 거북이를 볼 수 있다고 했지만, 정작 사흘동안 스노클링을 하면서 거북이는 못 봤거든요? 동생이랑 같이 갔어요.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로 걸어들어갑니다. 산호초가 많고 뾰족한 돌이 있어 가이드를 따라 가야합니다. 가이드가 저기 거북이가 있다고 해서 네다섯명이 몰려있는 곳까지 헤엄쳐 갔는데, 파도가 심해 마스크 속에 물이 들어왔어요. 고개를 물밖으로 빼고 물을 빼낸 후, 마스크를 쓰고 다시 바다속으로 들어가니 바로 코앞에 커다란 바다거북이가 있었어요. 어른 남자 몸통만한 크기의. 우와아앗! 이렇게 가까이서 볼 줄이야.
놀라서 거북이로부터 멀어지려고 팔로 저으려고보니, 제 옆에는 비키니를 입은 유럽 여성이 있었어요. 불필요한 신체 접촉으로 오해를 살 것 같아 얼른 팔을 오므렸는데요, 순간 파도가 쳐서 거북이가 내쪽으로 밀려왔어요. 거북이의 얼굴과 제 얼굴이 서로 툭 부딪혔어요. 마치 만원 전철 안에서 서로 밀고 밀리듯이. 어쩔 수 없이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둘이 계속 부딪혔어요.
'미안해, 거북아. ㅠㅠ 피할 도리가 없단다.'
커다란 거북이가 순한 눈으로 말하는 것 같았어요.
'괜찮아. 살다보면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뭐.'
이렇게 인도양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이제 스리랑카 여행 마지막 편으로 이어집니다. 빨리 대만 여행기로 가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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